런던의 향을 담은 향수 만들기
우리의 첫 번째 런던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캐롤린은 런던 시내 킹스크로스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패션을 가르치는 패션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손녀가 있는 할머니임에도 패션 센스가 정말 놀라웠다. 어떤 날은 가죽 바지와 재킷, 어떤 날은 벨벳 재킷에 화려한 브로치를 달고 나타났다. 몸매는 물론 머릿결도 아름다워 금색 웨이브가 풍성하다.
부엌에서 캐롤린을 만난 어느 날, 유난히 블링 블링 화사해서 칭찬을 건넸다. 그날의 패션 컨셉은 골드였는데, 목에는 여러 겹의 목걸이를 두르고 샴페인컬러의 새틴 스커트를 입은 모습은 디올 향수병을 떠올리게 했다. 캐롤린은 치마에 묻은 얼룩을 지우고 있었는데, 어린이들과 향수 만드는 수업을 하던 중 학생이 오일병을 쏟았다고 했다. 향수 만드는 수업도 하세요? 물어보니, 패션 스쿨에서 한 번씩 특강으로 향수를 만드는 수업도 진행한다고 했다.
어린이를 위한 향수 만들기? 너무 재밌겠다!!
다음 수업은 언제야? 가능하다면 꼭 참여해보고 싶어!
정해진 수업 시간은 앞으로 없는데,
원한다면 여기 집에서 간단히 해볼 수 있어.
너와 귀여운 딸을 위한 선물로 말이야.
너무 좋지!
고마워!!
그럼 수요일 오전 11시에 여기 부엌에서 다시 만나자.
그날 우리 일정은 V&A뮤지엄이었다.
캐롤린에게 줄 선물로 세잔의 정물화 그림이 그려진 티타월을 하나 샀다.
약속한 시간에 부엌으로 내려갔다.
캐롤린은 하얀 가운을 입고, 어린이를 위한 가운도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는 박스 가득 챙겨 온 에션셜 오일을 테이블 위로 늘어놓았다.
이렇게나 많아?!!
스튜디오에 가면 더 많아!
가장 인기 있는 향들만 골라 온 거야.
한국으로 돌아가서 런던을 떠 올 릴 수 있는 향을 만들면 좋겠다!
20~30여 가지의 에션셜 오일 중에서 탑노트, 미들노트, 베이스 노트를 담당할 향을 세 가지씩 골랐다.
시향지에 오일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향의 이름을 적어놓는다. 이름을 적을 때 담율이가 그림도 같이 그려 넣었다. 캐롤린이 혹시 엄마, 아빠 직업이 어떻게 되냐고 묻는다. 디자이너라고 하니, 담율이가 그림을 그리는 걸 보고 그럴 것 같았다고. 엄마, 아빠가 하는 일들이 고스란히 아이한테 전달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담율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빨리 잘 찾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담율이는 호불호가 강해 원하는 향을 빨리 골랐다. 레몬, 체리 블라섬, 유칼립투스. 향수의 이름은 "레몬 블라썸"이라고 했다. 싱그럽고 상쾌한 양이 너무 좋았다. 메리포핀스 리턴즈에서 가족들이 사는 집이 위치한 체리블라썸 로드가 떠올랐다.
나는 진저, 로즈, 화이트 머스크를 선택했다.
영국 사람들의 장미 사랑은 정말 특별하다. 우리는 이미 역사 시간에 교과서에서 배운 '장미 전쟁'으로 영국과 장미를 서로 연관 지어 떠올리는 데 익숙하다. 영국 왕실의 상징도 장미이며, 그림, 상징, 동전, 엠블럼 등 다양하게 등장한다. 이에 더해 정원 문화가 활발한 영국에서 장미는 길을 걷다가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다채로운 컬러, 크기 등 그 다양성에 놀라게 된다. 영국은 큐가든을 통해 19세기부터 유럽, 아시아, 중동을 돌며 야생 장미 종을 수집해 왔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 장미 품종 개발의 과학적 토대를 만든 곳이기도 하다.
홀랜드파크에 갔을 때, 다양한 컬러의 장미가 가득 펴있는 정원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영국 왕실 식물원인 큐가든의 장미가든은 또 어떻고. 색, 형태, 향기까지 이렇게 완벽한 꽃이라니.
그렇다! 내게 런던의 향을 고르라면 나는 꼭 장미향을 넣어야겠어!
캐롤린이 준비한 장미 에션셜 오일은 세 가지나 있었다. 그중에서 싱그러운 장미향이 나는 것으로 골랐다. 이걸 뿌리는 순간, 홀란드 파크의 장미 정원, 잔디밭에서 뛰어놀던 담율이의 웃음소리. 따뜻하고 감미롭게 런던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담율이는 알콜을 섞어 스프레이형식의 향수를 만들고,
나는 포도씨 오일과 섞어 롤온 타입의 향수를 만들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칙! 뿌릴 때마다 우리는 런던을 기억한다.
캐롤린, 런던, 공원, 정원, 장미, 붉은 벽돌집이 이어진 길거리, 그리고 담율이의 웃음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