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드로잉 클래스.

파리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_데이비드 호크니 25 전시

by 풸롱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작품- 파리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


이번 파리 여행 기간에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에서 역대 최대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의 마지막 날인 8월 31일에는 전시와 연계한 어린이 드로잉 클래스가 열렸다. 프랑스어 진행 수업은 이미 모두 솔드아웃인데 영어 수업만 간간히 자리가 남아있어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정말 많이 기대가 되는 일정 중 하나였다.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 (Foundation Louis Vuitton)은 파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볼로뉴 숲 속에 위치하고 있다. 2014년에 개관했음에도 그동안 짧은 일정으로만 파리에 갔던 터라 낮은 접근성과 루브르, 오르셰, 오랑주리 등에 항상 우선순위가 밀려 아직 가보지 못했다.


루이비통으로 잘 알려진 LVMH그룹(루이뷔통 모에 헤네시, Louis Vuitton Monet Hennessy)은 그동안 프랑스와 전 세계의 문화 예술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후원해 왔다. 그 일환으로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을 설립하여 재단 미술관 소장품과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고, 다양한 기획전등을 운영한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미술관 건물은 건축물 자체가 거대한 조형 예술로 느껴질 정도로 독특하고 압도적인 조형감을 자랑한다. 12개의 돛을 단 거대한 배 모양으로, 이러한 디자인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서 건물 주변으로 계단식 수변 공간에 물이 콸콸 시원하게 쏟아져 내려간다. 배의 갑판 부분에 해당하는 최상층으로 올라가면 주변을 둘러싼 아클리마티시옹 공원(Jardin d’Acclimatation)을 파노라마처럼 내려다볼 수 있고, 멀리 에펠탑까지 보인다. (미술관 관람 후 아클리마티시옹 놀이 공원에 무료로 입장을 할 수도 있다.) 시공자가 골머리를 앓았을 형태와 디테일들이 건물 곳곳에 가득하지만 전시 관람 동선은 명확하다. 지하 1층에서 출발해 루프탑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외부 루프탑 공간도 높낮이가 다른 층들이 중첩되어 있어 탁 트여있지만 프라이빗한 공간들을 찾을 수 있다. 전날 밤, 새벽에 잠을 깨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 스마트폰을 열어버린 탓에 나는 수면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화단 옆 턱에 자리 잡고 누웠다. 햇볕이 뜨거워 얼굴에는 팸플릿으로 덮었다. 바람이 살랑거렸다. 그렇게 십분, 그 어떤 비타민보다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데 탁월한 낮잠을 맛있게 잤다.


2007년, 스페인 빌바오에 프랭크 게리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이곳은 빌바오라는 도시 자체를 다시 살아나게 만든 촉매제 역할을 할 정도로 성공적인 도시 재생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간 빌바오에는 볼거리라고는 정말 구겐하임만 있었다. 이렇게 전 세계에서 사람들을 이끌 정도의 임팩트가 있는 건물은 그 자체가 예술 작품임이 분명하다.


오늘, 이 예술 작품 속에서 짧고 강렬한 낮잠은

‘여행’하면 떠오를 손에 꼽힐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어린이를 위한 드로잉 클래스, 엄마를 위한 전시 관람


우리가 방문한 날은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미술관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체감 상 모든 전시실이 루브르의 모나리자 전시실 정도로 붐비는 것 같았다.

어린이 워크숍을 예약해 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미술관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매우 길었지만, 워크숍 줄은 다른 통로로 일찍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혼잡한 곳에서 인파를 헤치며 아이와 같이 관람했으면 서로 더 지쳤을 것 같은데, 어린이가 드로잉 수업에 참여하는 동안 혼자서 집중해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았다.


어린이 드로잉 클래스는 로비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지하 워크숍 교실에서 열렸다. 벽에 붙은 다양한 작가의 풍경화를 보며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고흐, 모네, 세잔, 호크니, 등의 그림을 보고, 공통적으로 풍경을 그렸지만, 화가들만의 색채와 붓터치가 다름을 설명해 주셨는데, 아이들이 제법 그림의 특징으로 잘 구별해 냈다. ‘잘 보는 법’을 훈련하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어린이들은 본격적으로 페인팅을 하기 위한 옷으로 갈아입었고, 어른들은 자유 관람을 하고 12시 45분까지 교실로 돌아오라고 했다. 같이 수업에 참가하는 줄 알고 왔다가 갑자기 생긴 자유시간이라 당황했지만, 지금까지 호크니의 전시 중에서 세계 최대라고 하는 전시를 혼자서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호크니의 그림은 화보집으로 봐도 색감이 좋았지만, 실제로 보니 크기와 질감, 색감이 주는 감동은 압도적이었다. 특히 지하 공간에 큰 사이즈로 작업한 풍경화 쪽이 좋았다. 호크니만의 컬러 팔레트와 조형감으로 해석된 그림 옆에는 호크니가 담은 그림의 원래 풍경 사진과 스케치가 같이 전시되어 있다.

“이 풍경을 그린다고?”라고 의아할 정도로 큰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 풍경이었다. 특징 없어 보이는 일상의 풍경에서도 예술적 영감을 발견해 내는 것이 훈련된 예술가의 눈일까. 한 편의 풍경화를 완성하기 전에 무수히 많은 스케치를 해 보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결국 성실함과 꾸준함이 섬세한 시선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지하층에서 관람을 시작하여 점점 위층으로 올라가도록 동선이 계획되어 있는데, 드로잉, 수채화, 유화, 아크릴화, 영상, 3D, 아이패드 드로잉 등 거의 모든 회화의 방식을 사용한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호크니는 피카소의 작업을 보며 자신이 하나의 스타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최근 작업에 속하는 아이패드 드로잉은 아무래도 마티에르가 부족해서 나는 좀 심심하게 느껴졌다. 무심하게 그린 듯 하지만 특징을 잘 표현한 초상화들도 좋았다.


다시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아무래도 호크니의 작품을 이렇게 대규모로 직접 볼 수 있을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한 번이라도 눈에 더 담아둬야지.


그의 유명한 작품, ‘더 큰 첨벙’ 그림이 반가웠다.

그랜드 캐년 그림은 붉은 절벽이 압도적이었다.

보라색으로 채색한 나무 더미들이 특히 좋았다.


압도적으로 거대했던 그랜드캐년


혼잡한 와중에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컬러풀한 니트와 재킷, 안경, 넥타이 차림의 관람객들이 간간이 보여 재미가 좋았다.


전시를 둘러보다 보니 아이패드 드로잉 층에서 아이들이 워크숍을 하고 있었다. 큰 그림 앞에 모두 모여 앉아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수첩에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기도 했다.

결혼 전 해외여행에서 미술관 관람할 때, 어린아이들이 명화 앞에서 모여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때가 있었다.

‘와, 이곳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미술관에서 오리지널 작품을 보며 이런 교육을 받는다면 예술적 감수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겠어’

이 아이들이 겪는 풍부한 문화적 기회와 환경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약 20년이 흘러 내 딸이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과 데이비드 호크니 그림 앞에 앉아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날의 기억들이 떠오르며 약간 벅찬? 감정들이 몰려왔다. (비록 설명의 대부분은 못 알아듣고, 의견을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이 없더라도....) 오늘, 이러한 경험들이 아이의 풍부한 감수성과 깊은 취향의 바탕이 되지 않을까?


아이들의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어 아이들 워크숍에 다시 찾아갔더니 수업이 거의 마무리 중이었다. 아이들의 모든 그림이 파란색 바탕이어서 왜 그런 건지 물어보니 그림 바탕을 모두 파란색을 칠해놓고, 관람을 하며 설명을 들었고, 아이디어 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그다음 돌아와서 각자 나름의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어떤 아이는 모네의 그림같이 연꽃이 떠 있는 연못, 어떤 아이는 고흐의 아몬드나무 그림이 떠오르는 나무를, 또 무지개를 좋아하는 담율이는 노을 지는 하늘을 표현해 놓았다. 같은 블루 바탕이어도 저마다의 표현 방식으로 풍경화를 완성해 놓았다. 맑은 파랑, 짙은 파랑, 그라데이션 파랑. 파랑을 칠하는 방법도 다 제각각이었다. 수업을 같이 들은 아이들이 서로 다른 표현 방법으로 각자의 작품을 완성해 내는 과정이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담율이는 그림을 고이고이 잘 보관해 한국까지 가져왔다.

예술의 기운이 충만한 파리에서 드로잉 수업은 엄마도 아이도 만족한 행복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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