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자연사 박물관
오랫만에 찾은 런던 자연사 박물관은 여전히 위용이 대단했다. 건물의 규모와 화려함이 정말 압도적이고, 이 곳을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선 사람들의 입장줄도 압도적이었다.
자연사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방문 날짜와 시간을 미리 예약하고 가니, 박물관 앞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되어서 입장 할때의 효능감이 아주 컸다.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예약 시간은 별도로 확인하지 않아서 무조건 미리 예약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실내 전시는 약 20년 전 첫 런던 여행에서의 가물거리는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시품과 디오라마, 설명 패널 등이 많이 낡았고, 전시실마다 사람들이 넘쳐나서 밀려다녀야 할 지경이었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하이라이트인 고래뼈가 매달려있는 홀은 정말 멋있었는데, 그 큰 홀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우리 잠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까?"
박물관 주변을 둘러 새롭게 조성된 정원은 모든 수식어를 다 동원해서 찬사를 보내고 싶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 내 유휴부지 6천여 평 정도가 ‘도시 자연 프로젝트 Urban Nature Project’를 통해서 멋진 정원으로 탈바꿈했는데, 이 자연 공간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연구소’로 도시속 자연 자원을 보존하고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정원 디자인의 컨셉은 정말 기가 막혔다.
이 곳이 지구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자연사박물관의 정원이다!를 한 눈에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여러 컬러의 석재를 붙여 만든 벽은 시대별 대표적 암석들로 조성했는데, 지질시대에 따라 1m 길이씩 암석을 잘라 붙여 지구의 5백만 년에 해당하는 시간이 벽을 따라 흐르도록 디자인하였다.
27억년 전 지구를 이루었던 루이스 편마암, 대륙의 형성과 해체로 인한 지각의 거대한 움직임을 알려주는 화강암, 얕은 열대 바다에서 형성되어 화석으로 가득한 석회암 등, 캄브리아기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타임 라인이 벽을 따라 흘러간다.
식재된 식물 역시 시대적 흐름을 보여준다. 에볼루션 가든이라는 이름의 정원 입구에는 오르도비스기시대의 이끼와 간풀, 고대 석탄 숲의 대형 양치 식물이 식재되어 있으며, 데이지과 풀과 꽃은 신생대 초원의 확산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양치 식물들 사이로 공룡 뼈모형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어 시대적 현장감을 더하고 있다. 고생대부터 지구의 일부였던 풍성한 식물들이 만들어 주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 있으면, 거대한 지구와 자연의 시간 속에서 미미하지만 또 대단한 인류의 존재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정원에는 기존의 연못을 더 크게 조성된 연못이 있는데, 기존 정원에서 서식하는 동물종, 식물종, 균류종의 수는 약 3,500종이었다고 한다. 런던의 도심지 가운데 있는 정원임에도 이렇게 다양한 생물종들이 있음이 놀라웠다. 기존 연못의 생물들은 보존하기 위해서 공사하는 동안 연못 물과 함께 임시 연못에 따로 보존했다가 공사가 끝난 뒤 그대로 다시 옮겨왔다. 이렇게 더 커진 새 연못에는 개구리, 도롱뇽, 잠자리, 원앙 등 새로운 식구들이 더해져 새로운 터전을 꾸렸다.
연못의 생태계를 이루는 식물과 곤충,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현미경과 돋보기 카메라를 준비해 놓고, 관찰을 도와주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생물들을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곳곳에 설치된 요소들은 예술에 가까웠다. 묵직한 황동으로 만든 조각, 연못 속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스피커 등을 통해 생태 감수성을 즐겁게 키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또 정원 식물들을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료들이 준비되어 있다.
Peering at plants/ Seeds and fruit 과 같은 교육 자료를 들고, 정원을 돌아다니며 식물들을 찾는 재미가 컸다. 우리집 아이는 제주에서도 제밤(잣밤: 도토리처럼 생겼는데 밤에 가까운 맛이 나는 열매. 제주에서 흔하게 볼 수 있고, 가을에 열매가 떨어지면 그냥 먹기도 하고, 후라이팬에 구워먹기도 한다)을 주워 먹고, 친구들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대신 제밤을 5개, 10개씩 받는 아이인데, 열매가 가득 달린 정원에서 그 어느 곳보다 신나버렸다. 로즈힙, 도토리 등 책자를 보며 같은 열매를 찾아보고, 이름도 알게 되는 그 어떤 구경거리보다 좋아했다.
도시 속 잘 연결된 녹지 공간으로 생물 다양성을 높이며 그 속에서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활동과 과학 연구가 가능한, 사람에게도 야생 생물에게도 꼭 필요한 소중한 공간인 것 같다. 전날 방문했었던 런던 디자인뮤지엄과 일맥상통하게 정원가꾸기에 진심인 런던에서 지속가능한 도시 생태 정원 만들기의 실험 현장 최전선을 보는 것 같았다.
한참을 외부에서 바람을 쐬며 자연속에서 놀다 몇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제 실내전시를 보고 싶다고 한다. 오후시간이 되니 전시장 안이 좀 한가해 진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자연사박물관에서 5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