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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Oct 14. 2024

『산티아고 순례길 인문기행』
 8. 공짜 포도주 꼭지

              

(제 6일 차 / 에스테야 ~ 로스아르코스)


♧ 오늘의 코스  


   오늘(9.29)은 에스테야(Estella)에서 출발하여 이라체 와인 샘(lrache Fuente de Vino) ▷ 아스케타(Azqueta) ▷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Villamayor de Monjardin) ▷ 로스 아르코스(Los Arcos)까지 21.3 km를 약 5시간 동안 걸었고 종일 4만 3천 보를  걸었다. 중간쯤 오르막길이라, 마지막 10km는 그늘이 없어서 걷기가 힘들었다.  


 

   아침 호스텔 식당 원형테이블에서 7명이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미국에서 왔다는 두 쌍의 부부, 독일에서 온 장년의 여인, 우리 부부가 전부였다. 그중 독일 중년 여성이 다리를 다쳐 중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내년에 다시 올 것이라며 의연한 표정으로 우리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헤어졌다. 

   

   새벽에 플래시를 켜고 순례길을 걸으면 길에 밤새 거미들이 쳐놓은 거미줄을 치우며 지나가야 한다. 청소부가 낙엽을 치우듯이 순례자 중에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 거미줄을 거덜내며 갇는다. 그들은 거미 입장에서 보면 무법자! 하지만 나는 무법자가 아니다.  나는 이 길을 가장 먼저 지나갈 위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순례자들은 거미가 밤새 지어놓은 그물망을 허물고 지나간 뒤 나는 마름질을 하며 걷는다. 거미의 생계의 터전을 외래종들이 박살을 내고 제 갈 길을 무표정하게 지나간다. 거미한테는 엄청 미안하기 짝이 없다. 


울퉁불퉁한 자갈길로 접어들자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  이동 도중에 등산 양말 한 켤레를 더 끼워 신었더니  발바닥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불편해서 신경이 쓰인다. 

  

 ♧ 이라체 와인 분수


   ‘보데가스 이라체’는 1891년부터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순례자들에게 와인 한 잔을 대접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이라체 와인 분수’는 1991년에 다시 개장했는데 그 후 많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 ‘가이드 북’이나, 인터넷에 빠짐없이 소개되는 명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프랑스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이라체의 포도주 수도꼭지’를 놓치지 말라는 입소문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적을 달리 하는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포도주를 공짜로 마시고 지나갔다. 순례자들의 목마름을 해소해 주기 위해서 건물벽면에 두 개의 꼭지를 만들었다. 왼쪽 꼭지에서는 포도주가 나오고, 오른쪽 꼭지에서는 찬 맹물이 나온다. 왼쪽 꼭지가 순례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순례길에서 식사 때마다 포도주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서양 순례자들이 마른 목을 축이며 휴식하는 명소가 되었다.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내 앞에서 포도주가 고갈되면 어쩌나?라는 조바심이 나를 괴롭힌다. 하루에 100리터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평소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나에게 포도주 한잔을 챙겨 주지 않는 주님은 주님도 아니다. 

 

이라체 와인 분수 꼭지

   이 무슨 망발인가? 포도주를 받아 마실 그릇이 없는 순례자들은 포도주가 나오는 꼭지에 입을 대고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포도주가 흘러내려 티셔츠가 보라색 물에 젖기도 한다. 때가 때인지라 코로나19에 감염이 우려되어 포도주를 마시는 행사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군중심리에 휩쓸려 이판사판. '못 먹어도 고! ' 라고 해야 하고, '먹어도 고!' 라고 해야 한다면 '먹고 보자 포도주! '

설레는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린다. 모르긴 몰라도 나는 양잿물로 술을 만들었다 해도 목마름을 덜기 위해서 포도주를 마실지도 모른다. 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공짜 포도주라고 해서 2리터짜리 플라스틱 병에 가득 담아 가는 바보 같은 순례자는 없었다. 어느 누구도 배낭에 2리터를 보태서 순례할 바보들이 아닌 가 보다. 스페인에서 저녁마다 레스토랑에서 마신 포도주가 그 얼마이던가? 포도주에 대한 사랑은 시작되었다. 그것을 배낭에 담아 가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고 있으니까.  


   나는 제2의 직장 때문에 충북 영동에서 5년 간 살았다. 그곳에서 해마다 포도축제가 열리는데 그곳에서 지독한 서울깍쟁이들을 보았다. 와인 열차를 타고 내려온 그들은 와이너리나 마을의 부스마다 들려서 맛 뵈기로 내놓은 포도를 송이를 거두어 배낭을 채워 가는 몰염치한 사람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포도 농가의 부스에서는 맛보기용 포도는 낱알 포도로 바뀌게 되었다.  포도주 한잔을 쭉 마시고 그 옆에 있는 포도주 박물관에 들려 포도주에 관련된 지식과 소양을 만땅 충전하고 순례길에 올랐다.  


♧ 산초의 군대와 로스 아르코스의 폭우


   이라체에서 5km쯤 걸어가면 몬하르딘 성(Castillo de Monjardín)이 나온다. 이 성은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Villamayor de Monjardín)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성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는 성인데 원래 무어인이 이 지역의 전략적 거점으로 가꾸었다. 이 땅을 되찾기로 결심한 산초 가르세스 1세는 성을 포위했다.  산초의 군대는 요새를 구축하여 저항하는 무어 수비대를 공략해야 했다. 여러 차례 성벽을 공략하려고 시도했지만 난공불락이었다. 산초 가르세스 1세가 ‘성 앤드류’의 환상을 보고 승리를 약속받음을 계기로 상황이 역전되었다. 환상에 용기백배한 산초는 성에 대한 공격을 다시 감행했다. 그의 군대는 성벽을 기어 올라가 무어 수비대를 압도함으로써 성은 함락되어 기독교 왕국으로 탈환되었다. 신의 개입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초는 승리의 영광을 '성 앤드류'에게 바치고 성 안에 그를 기리는 교회를 건설하였다. 


  오늘의 목적지인 ‘로스 아르코스’에는 고딕과 르네상스 건축의 놀라운 사례인 ‘산타 마리아’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중세 시대에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이 마을을 지나가는 주민과 순례자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들판이 벌겋게 말라붙었고, 샘들이 물이 말라버려서 마을 사람들은 물의 구호를 절실하게 원했다. 마을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산타 마리아 교회에 모여 비를 내려달라고 열렬하게 기도했다. 비 소식이 없자 그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어느날 교회에 밝은 빛이 나타나 성모 마리아 동상을 비췄다. 이 빛은 그녀의 중재에 대한 신성한 표시였다. 이윽고 로스 아르코스에 어두운 구름이 몰려들었고 폭우가 쏟아져 가뭄은 일시에 끝나고 메마른 대지가 되살아났다. 이 마을 주민들은 이 비를 성모 마리아의 은총이라고 믿었으며 "빛의 기적"으로 후세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연례 행렬과 특별 미사를 열었고 그녀의 신성한 도움에 대한 감사를 표시했다. 

산타마리아 데 로스 아르코스 성당

♣ 순례자들의 반복되는 일상


   순례자의 하루가 쌓이고 쌓여 33일이 쌓이면 완주가 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으리라. 일주일 정도 순례길을 걷다 보니 거의 정해진 순서대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매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는 불상사가 생기거나 잠자리를 구하지 못해 노숙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때문이리라. 


   오늘 아침은 어제 아침과는 다르며, 순례길도 어제와 같지 않기에 규칙적인 페이스를 유지해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리라. 


   아침 6시에 기상해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빠르게 립스틱이 아닌 ‘선크림을 얼굴에 짙게 바르고’ 부랴부랴 떠날 채비를 한다. 배낭을 배달회사에 의뢰해야 한다. 매일 배달 의뢰 봉투에 5∼7€(정가에 맞추어)를 넣어 숙소의 지정된 장소에 놓는다.  처음에는 수수료 봉투를 매달아 놓으면 현금을 누가 빼 가면 어쩌나? 배달사고가 생긴다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지만 그런 사고는 아직까지는 발생하지 않았기에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알베르게는 8시까지는 체크아웃해야 된다. 피곤해도 하루 이상은 더 머무를 수 없으므로 밀려나게 된다. 몸무게의 10% 미만의 작은 배낭만 챙겨 숙소를 떠난다. 순례길의 이정표를 따라 발걸음을 시작하며 오늘 만나는 순례길에 새로운 희망을 걸면서 발걸음을 시작한다. 투박하게 그려놓은 이정표를 따라 일방통행을 하다 보면 마을의 지도, 알베르게(숙소)와 카페나, 바, 레스토랑의 광고판에 순례자는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이끌려간다. 공식적인 이정표나 투박한 화살표와 늘 동행해야 한다.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못한 경우에는 거리에 있는 바(Bar)에서 간단하게 음료수와 빵과 차를 조합하여 의무처럼 때운다. 순례 코스는 일방통행이므로 단순해서 길 찾기는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마을 안 길을 벗어나면 주변에 광활한 농지나 숲으로 난 3∼4미터 폭의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내 어렸을 때 초등학교 다니던 비포장 신작로 같았다. 좋은 학교라고 먼 길을 외롭게 걷었던 어린 시절을 돌이키면서 그리 낯설지 않은 길을 걷는다. 비포장 흙길이라도 농사용 트랙터가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폭을 유지한다. 차도 옆으로 난 소로나 차도의 갓길을 걸어야 할 구간도 꽤 있다. 숲 속으로 난 순례길은 그야말로 오솔길이다. 숲의 바닷속으로 자유형으로 헤엄치며 이동하는 순례자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으면 피로를 덜어 낼 수 있다. 하루에 대여섯 개의 마을 안 길을 통과하면서 하루 평균 25km를 걸어야 한다. 발길이 머무는 도처에서 여권에 세요(스탬프)를 찍어주거나 스스로 찍을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며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순례자들과 어울린다. 그런대로 즐길 만하다.  

   나와 아내는 종종 자연스럽게 동행을 포기한다. 나는 유튜브 동영상을 위한 사진 촬영 때문에 아내와 보조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와 거리가 떨어지면 나는 배낭을 멘 채로 뛰어가서 따라잡는다. 10km쯤 걷다가 간식을 하는 시간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길을 걷는 동안 물을 마셔야 하는데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마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음수대에서 나오는 물을 거침없이 마시고 물병에 물을 채워 비상시에 대비한다. 하지만 나는 주변 환경으로 판단해 볼 때 목장의 쇠똥이 빗물에 젖어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음수대의 물이 오염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마트에서 생수를 사서 가지고 다닌다.  배낭에 물병을 넣고 행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거움은 피할 수 없는 질곡이나 다름이 없다. 누군가는 ‘바보 같은 행진’이라고 비웃었는지 모르지만 나 같은 바보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행진은 즐겁지만 괴롭다.  

   15km쯤 걸으면 마땅한 레스토랑을 찾아 점심식사를 한다.  그런 목적의 레스토랑은 지난밤에 가이드 북이나 인터넷에서 추천받은 ‘맛집’을 찾아 캡처해 둔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점심 식사 메뉴는 아침식사를 간단히 때운 날은 ‘순례자 메뉴’를 주문하여 주린 배를 차곡차곡 채운다. 배가 심하게 고프지 않으면 자기 취향에 따라 음료수와 빵을 조합해서 먹는다. 


   순례자들은 대체로 점심은 가볍게, 저녁 식사는 무겁게 하는 경향이 있다.  순례길을 걷노라면 이정표, 숲, 산, 벌판, 마을이나 도시들을 만난다. 성당, 경당, 수도원, 수녀원, 알베르게 간판, 자치주의 경계 판, 광고판, 레스토랑, 바, 푸드 트럭, 성벽, 교회종탑, 위험 경고판, 도로표지판, 순례자들이 만든 조형물, 그래비티 등을 만난다. 


   순례길을 따라 걷는데 집중하다 보면 도무지 옆을 볼 여유가 없다. 갈 길이 바쁘고 피곤하기 때문에 앞사람의 배낭에 매달린 가리비 껍데기만 쳐다보고 전진하는 무아지경에 빠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웅성거리는 바나 휴게소에서 제정신이 든다. 그곳에서 간식을 사 먹거나 가져온 음식을 다른 순례자들과 나눠먹는다. 많은 순례여행기 책들에서 “느긋하게 걸기”를 충고하고 있지만, 느긋하게 걷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어 ‘느긋’ 모드가 ‘빨리’ 모드로 시시각각 전환된다. 지친 몸이지만 느긋하게 걷는 것은 우리 국민성에는 맞지 않는다. 순례길에서 체력이 감당할 수 있는 한  ‘빨리빨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느긋하게 걸으려면 목표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마냥 스페인 촌동네에서 노닥거릴 수야 없기 때문이다.  충분히 쉬면서 걸을 수 있는 여정이 필요하지만 언감생심이다.     

 

  오후 2시쯤 그날 목적지 마을에 도착하게 되는데 2시 전에 도착하면 알베르게 체크인 시간인 2시까지 열 번 이상 시계를 보며 기다려야 한다. 찾아간 숙소가 마음에 들건 안들 건 침대나 방이 남아 있으면 그래도 다행이다. 더운밥, 찬밥 가릴 계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침대나 방이 없으면 최대 5km 이상을 더 걸어가거나 오던 길을 후진하기도 한다. 앞으로 더 이동하는 것은 억울하지 않지만, 지나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은 너무 피곤해서 택시를 타고 전진하는 순례자들이 많다. 

   

   숙소를 찾아 순례자 여권을 제시하고 체크인한다. 배낭이 배달되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운 좋게 공립 알베르게에 체크인하는 날이면 흐뭇하다. 침대를 배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행위에  나는 행운의 꽃으로 마음에 안식을 느낀다. 어떤 날은 그들이 행운을 잡고 나는 불운을 곱씹어야 한다. 


   개인용 베개닛과 침대 시트를 배당받는다. 배정받은 번호의 침대를 찾아가서 침대매트리스에 종이옷을 입히고 짐을 푼다. 동전을 사용하는 락카에 귀중품을 넣는다. 속옷을 갈아입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다음 종일 수고한 몸에 경의를 표하러 간다. 그 의식으로는 사워가 제일이다. 그날 입은 옷가지를 빨아야 하기 때문에 샤워장이나 빨래터의 상황을 파악하여 우선순위를 선택해야 한다. 그날 입었던  옷가지와 양말을 빨래한다. 숙소에 있는 세탁기를 사용하려면 동전 4€를 지불해야 한다. 건조기까지는 3€를 더 내고 이용하면 무지 간단하다. 다만, 나는 세탁기 사용법을 아내로부터 이미 전수한 기능 보유자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지만 다른 동양남자들은 쑥스러워하거나 서툴기 짝이 없다. 하지만 나도 빨래 실수를 할까 봐 은근히 걱정은 한다. 왜냐? 나는 세탁소 사장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나는 카메라로 비추어 번역해서 세탁기 사용법과 주의 사항을 체크해서 아내와 합동으로 세탁기를 사용을 착수한다. 휴대폰 번역기가 가끔 치매에 걸려 헛소리를 할 때도 있다.   불행한 사태가 벌어져 옷가지가 상하게 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두서너 벌만 가져온 나는 자의에 반하여 벌거벗은 임금님이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 스페인 사람들과 같은 세탁기를 공동으로 사용하되 사용료를 분담하면 용꿈을 꾼 날의 횡재가 아닐 수 없으리라. 


   하지만 불행하게도 알베르게 중에는 세탁기가 없는 숙소가 더 많다. 혹은 세탁기는 있어도 건조기가 없는 숙소도 많다. 어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서는 수수료를 내면 자원 봉사하는 사람들이 빨래를 세탁해서 건조해서 객실까지 배달해 주는 친절한 숙소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마을에 있는 빨래방을 찾아가 세탁기 빨래를 해야 한다. 숙소에 세탁기도 없고 빨래방이 없는 마을이면 부득이 손빨래를 해야 한다, 

  

   먼저, 휴대한 가루비누를 물에 풀어 세탁물을 손으로 빨아서 꽉 짠 다음에 마른 수건에 세탁된 빨래를 말아서 발로 지근지근 밟아 물기를 최대한 짜내야 한다. 빨래를 털고 또 털어서 빨래 줄에 말린다. 알베르게에 투숙한 순례자들이 일시에 빨래를 하기 때문에 세탁기와 빨랫줄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미안하지만 여기서도 선착순이다. 빨래를 집게로 집어서 널지 않으면 소중한 빨래가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준비해 간 빨랫줄이 있으면 창문이나 벽에 고정해서 말리기도 한다. 빨래 줄이 없으면 침대 주변이나 베란다에 널어 말려야 한다. 이튿날 아침까지 마르지 않은 빨래가 있으면 숙소에 비치되어 있는 머리털 말리는 드라이어의 더운 바람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덜 마른빨래가 있을 때는 휴대용 배낭에 빨래를 매달고 다니면서 말려야 한다.


  시간이 생기면 목적지 마을 시찰에 나선다. 견시관찰(見視觀察) 4단계 기법(?)을 동원한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기웃거리는 것은 견(見)이요, 관심이 가는 것을 챙겨보면 시(視) 요, 깊이 있게 보는 것이 관(觀)이며, 사물의 이치와 관련하여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는 것은 찰(察)이라 한다. 보는 강도가 가장 약한 것이 ‘견’이고 가장 강한 것이 ‘찰’이다. 마을을 순회하다가 슈퍼마킷을 만나면 방앗간을 지나치지 않는 참새처럼 무조건 들려 필요한 것을 찾아서 사두면 향후 이 삼일은 편하다.  내일 목적지까지 걷는데 필요한 물건이나 간식거리와 생수 등을 준비하는 것은 필수사항이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숙소를 찾아 예약한다. 숙소가 예약되면 배낭을 배달할 곳의 주소를 찾아 배달 봉투를 만들어 둔다.  


  저녁 식사는 레스토랑에서 사 먹거나 숙소(알베르게, 펜션, 호텔, 아파트)에서 조리를 해서 먹을 수도 있다. 레스토랑에서 ‘순례자 메뉴’로 식사를 부담스럽게 싼 가격으로 알차게 먹어두면 두 가지 이득이 있다. 하나는 아내와 나는 서로 다른 요리를 선택하기 때문에 6개의 음식을 두루 맛볼 수 있어서 미니 부페 식당에 온 기분이라 행복하다. 

   식사에 딸려 나오는 포도주는 대체로 무한 리필(?)이므로 진탕으로 마실 수 있어서 행복하다. 여독을 푸는데 포도주보다 더 나은 보약은 없다. 둘 다 순례자 메뉴를 시키면 한국 사람의 양에는 벅찰 경우가 많아 음식을 다 먹지 못한다. 이때 남은 음식은 싸 달라해서 이튿날 아침으로 대용하면 새마을 운동의 기수나 환경보호론자로 거듭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녁식사를 알베르게나 레스토랑에서 하면서 다른 순례자들과 어울려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런 날은 유엔 총회장을 방불케 한다. 각기 나라의 대표가 되어 자기 나라 자랑을 빠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평소에 자기소개 1분, 나라 자랑 2분 영어 스피치를 준비해 두면 영어 잘하는 사람대접을 받는다. 문제는 내가 영어를 잘하는 줄로 착각하고 저희들이 영어를 빨리 말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초래될 수도 있다. 그럴 때도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못 알아들어도 추임새만 적당히 해주면 금방 친구가 된다. 그러나 그 자리에 오래 있으면 안 된다. 영어 실력이 들통이 나기 때문이다. 바쁜척하고 그 자리를 피하면 존재감은 찾을 수 있다.

           

   식사가 끝나면 알베르게나 숙소 로비나 휴게실에 앉아서 가져온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휴대폰으로 뉴스를 섭렵한다. 순례길 친구들과 수다를 떨어 그날의 피로를 풀어버린다. 몸이 심하게 아프면 병원을 찾아가고, 약이 필요하면 슈퍼나 약방에 가서 약을 살 수 있으나 둘 다 안 되는 상황이라면 순례자들로부터 비상약을 구걸할 수도 있다. 

  밤 10시에는 예외없이 침대에 들어야 하고,  잠을 청하고 5분 이 지나면 ‘코 골기 대회’에 자의에 반하여 출전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를 기쁘고 행복에 빠지게 됨을 무한 감사하며 잠든다. 이것으로 하루 일상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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