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09.28.)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를 출발하여 ▷ 마네루(Maneru) ▷ 시라우키(Cirauqui) ▷ 로르카(Lorca) ▷ 비야투에르타(Villatuerta) ▷ 에스테야(Estella)까지 21.6km를 5시간 동안 4만 5천 보를 걸었다. 이 코스는 표고 400미터에서 시작해서 표고 425미터인 에스테야까지 걷는 코스이기 때문에 별로 힘들지 않았다.
♧ 천지 삐깔인 복분자 산딸기
남들보다 한 시간이나 늦은 아침 8시 30분에 출발했다. 발가락에 생긴 물집이 때문에 걷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배낭을 택배회사에 의뢰하고 점심으로 대용할 빵과 과자를 담은 작은 배낭만 메고 순례를 시작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순례길을 걸어야 한다. 비가 원수 같다. 어디선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절대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왕의 다리를 지나 고속도로를 건너가 좁은 비포장도로를 지나면 계곡의 끝자락으로 말려들어간다. 마을 골목에서 불쑥불쑥 나타난 순례자들과 아침 인사를 주고받는다. 국적은 다르지만 부부, 모녀, 부자, 친구들의 그룹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통성명을 하노라면 이내 순례자 공동체가 형성되며 용기를 충전하고 피로를 가시게 한다.
부산에서 온 모녀는 둘이 다툰 모양인데 엄마가 딸에게 밀린 모양새였지만 엄마 의견이 옳은 것 같아 살짝 응원을 보낸다. 청주에서 왔다는 엄마와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도 대견스럽다며 립서비스로 박수를 보낸다. 모두 그동안의 경로와 앞으로의 순례에 대한 여정을 주고받으며 오늘의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집중한다. 순례길목에는 우리나라 둘레길이나 등산로에서는 볼 수 없는 복분자의 원료로 믿어지는 딸기가 천대를 받으며 지천으로 널려있다.
가을의 정취를 한결 더 느끼게 해 준다. 복분자 술을 마시고 오줌을 누면 요강이 깨진다는 복분자 술을 만드는 원료인 ‘산딸기’가 가시나무에 매달려 가을 햇볕에 마냥 말라가고 있다. 들녘을 날아다니는 새들조차도 먹거리로 쳐주지 않는 모양이다. 천지 삐깔인 산딸기로 복분자 술을 만들어 한국에 수출하면 나는 물론이고 한국의 요강회사들은 대박이 날 것 같다. 한국에서는 꽤 비싼 술의 원료를 순례길 들목에서는 공짜로 얻을 수 있으니까 대박을 터뜨릴 게 틀림없다. 대박의 꿈을 아내에게 피력했더니 전혀 공감을 하지 않는다.
아내는 내 농담에는 거의 냉소적이고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 아내 왈, 복분자의 고향 고창에는 전봉준 후예들인 농민들이 당신을 두고 보지는 않을 걸요. 크크.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데 그런 모험을 고생스럽게 왜 하냐고, 돈 욕심에서 벗어나라고 일침을 놓는다. 아내는 이 할배는 아무도 못 말린다는 표정이다. 하던 일도 접어야 할 나이에 낯선 땅에서 낯선 일로 돈을 벌려는 꿈을 꾸는 내 남편이 맞냐고 다시 보잔다.
수많은 은퇴전문가들의 충고를 무시하는 무모한 창업이므로 꿈도 꾸지 말라고 말린다. 꼭 내일부터 사업을 착수하려는 사람을 말리는 말투 같다. 노털 꼰대들은 농담도 못하나?
일본에서 여자 친구와 함께 온 청년이 덜 마른 산딸기를 서너 알을 따서 입에 넣고 살짝 씹어 본다. 맛이 떫은지 미간을 약간 찌푸린다. 어릴 때 고향에서 따먹은 추억이 있어서 시식을 했더니 ‘옛날 맛’이 아니란다. 나도 옛 추억을 되살리려 몇 알 따 먹어 보았더니 역시 떫은맛이라 별로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작심하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허무맹랑한 탐욕을 꿈꾼다고 지청구를 듣고 말았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세간에 떠도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내 나이는 사고 치면 절대 안 되는 나이라고 아내가 핀잔을 준다.
내 나이에 돈 벌 생각을 하는 것만도 죄가 된다는 아내의 충고를 듣고 탐욕의 늪에서 앗 뜨거워하면서 재빨리 빠져나오는 체해야 했다. 늙은이의 생각조차 낡은 것으로 홀대받은 세상에 살고 있는 내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앞으로 생각의 자유는 가슴에 품지만 입에는 올리지 말아야 본전을 유지할 것 같다.
결론은 산딸기와 블랙베리로 사업을 꿈꾸는 생각은 이쯤에서 접기로 한다. 불쌍하고 측은한 블랙베리와 산딸기여 안녕!
♧ 올리브 나무에 파란 손수건을 매달다.
순례길에 대규모 올리브 농장이 우리를 부른다. 올리브는 지중해에서 많이 재배하는 열대식물로 알고 있었는데 순례길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올리브 열매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실이 약간 다이어트한 정도의 크기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올리브 나무를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단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올리브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더랬는데 현역 시절에 지중해 이스탐불, 아테네, 로마 등을 여행하면서 일찍부터 안면을 트기는 했다. 그리 서먹서먹한 사이는 아니다. 그곳에서 올리브 열매를 기계로 타작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트랙터로 올리브 나무를 털어서 열매를 수확해서 트랙터에서 고르기를 자동으로 해서 시장으로 출하하였다. 올리브는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오래 사는 나무라서 ‘신의 선물’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열매로는 기름을 짜서 서양요리에는 감초처럼 들어가는 식재료라고 한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콤비네이션 피자 위에 올라가는 블랙 올리브 토핑이란다. 올리브 씨를 빼고 저미기 때문에 가운데 구멍이 뚫린 링 형태로 식탁에서 볼 수 있다고 아내가 말했다.
순례자들이 올리브 나무 가지에 무언가 매달아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고 지나간 모양이다. 몇몇 그루의 올리브 나무 가지에는 우리네 당산나무에 울긋불긋한 소원을 담은 리본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올리브 열매들은 아직 덜 익은 채로 주렁주렁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며 괴로운 그네뛰기를 하고 있다. 순례길 올리브 농장에서는 나무 그늘에 10개 남짓의 낮은 의자를 가져다 놓고 순례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했다. 나무 밑에 자리 잡은 순례자들은 지나가는 길동무들을 불러 앉혔다. 낯익은 순례자들은 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간식을 들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도 깃발을 달고 싶었지만 헝겊이 없다. 대신 파랑 손수건에 매직펜을 빌려서 멋있는 문장이 생각나지 않아 노털 같은 문구를 썼다.
올리브 농장
“영원한 동반자! 우리 행복하게 살자꾸나.”라고 써서 올리브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내 행동거지를 눈여겨본 영국 청년이 나에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죽을 때까지 친구로 행복하게 살자”(Let's live happily as friends until we die)는 뜻이라고 풀어서 설명한다.
그가 되묻는다. Are you two friends? You look like a couple to me.(너희 둘은 친구냐? 내 눈에는 부부같이 보이는데)라고. 젠장 아저씨! 팥으로 말해도 콩으로 알아들어야지! 그가 농담을 한 것이기 때문에 부연 설명을 하지 않고 웃어주었다.
어디선가 ‘미스터 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크게 들려서 흠칫 놀랐다. 내가 아무리 조선시대에는 왕족이었지만 스페인 농촌 마을 올리브 농장에서 나를 알아보는 그는 누굴까? 혹시나 스페인 국왕이나 왕자는 아닐까? 날쎄게 돌아본다. 어젯밤에 알베르게 2층 침대에서 옆에서 동침(?)했던 호주 친구 제임스가 나를 불러 내 발바닥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자기가 가져온 의료용품으로 내 발가락에 잡힌 물집을 과감하게 폭파한(?) 후에 물집에 약을 바르고 붕대로 내 발가락을 동여 매 준 친구가 아닌가?
나보다 열댓 살 어린 그 친구에게 맥주 한 캔을 사서 건네며 엊저녁 그의 친절에 감사를 표시했다. 올리브 숲 속 몇 개의 테이블에는 순례자 봉사단체에서 운영하는 무료 음식들을 챙겨서 요기를 하게 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까지 주시다니요.
나도 두세 개의 동전을 기부하고 벌레 먹은 사과 두 개를 챙겨서 순례길을 다시 걸었다.
♧ 에스테야의 두 성당
오늘의 목적지인 에스테야 마을 입구에서 ‘산토 세플크로 성당’이 우리를 맞았다. 성당의 출입문은 세월의 더께로 꺼무칙칙한 고딕양식이 존재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전면의 상단 벽에는 열두 명의 사도상이 조각되어 있다. 정문 바로 위에는 예수님의 일생을 주제로 한 조각이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첫 번째 단에는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가 보이는데 십자가 바로 양 측면에 군사들이, 각 군사의 왼편에는 성모님, 오른편에는 사도 요한의 부조가 서 있다. 중간 단의 왼편부터 오른편으로 이어가면서 천사가 현현한 그리스도의 무덤을 방문한 막달라 마리아 일행, 지옥에서 영원을 구원하는 예수님, 부활한 예수님의 모습이, 가장 아래 칸에는 최후의 만찬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산토 세플크로 성당
정문의 왼편에는 순례자 복장을 하고 있는 산티아고의 상이, 오른편에는 루르의 산마르틴 상이 수문장처럼 떠억 서있다.
에스테야 전설은 우리를 11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목동들이 마을의 부지를 내려다보는 언덕인 몬테 퓌에서 양 떼를 돌보고 있었다. 그들은 언덕에서 나오는 신비한 빛을 발견했고, 그것이 특이하고 흥미로웠다. 호기심이 생겨서 그들은 빛의 근원을 찾아갔더니 성모 마리아의 동상이 있었다. 주민들은 이것을 신의 징조라고 믿고, 동상을 보관할 예배당을 지었다. 예배당과 나중에 더 큰 산 페드로 데 라 루아 교회는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퓌의 성모는 마을과 사람들의 수호자로 여겨졌으며, 많은 기적이 그녀의 중재로 인해 일어났다고 전한다. 이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에스텔라 사람들은 퓌의 성모에게 구제를 기도로 부탁했다. 동상이 있던 자리에 기적적으로 샘이 생겨 마을에 필요한 물을 공급했을 때 그들의 기도에 응답된 것이다. 에스떼야의 가장 상징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인 ‘산 페드로 데 라 루아’ 교회는 기적이 일어난 곳이다.
13세기에 교회 일부가 무너진 사건이 발생했다. 퓌의 성모는 회중을 보호하여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했다. 에스테야를 다스린 나바르 왕들의 궁전과 산 마르틴 광장 사이 길로 들어가면 이 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성당인 ‘산 페드로 데 라 루아 성당’이 나타난다.
중세 때는 순례자들의 묘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성당 옆으로 올라가면 매우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조각을 가진 건물이 나타나는데 그 이름은 ‘산 안드레스 경당’이란다. 1270년경, 그리스 서쪽 도시인 ‘파트라스’의 주교는 순례 길에 오르면서 선물로 파트라스에서 순교한 성 안드레아의 어깨뼈를 모시고 갔다고 한다. 성 안드레아(Saint Andrew)는 기독교 성인 중 한 명으로, 성 베드로의 형제이다. 중세 스페인에서는 성 안드레아가 중요한 성인으로 여겨져 많은 교회에서 그를 모셔서 순례자들은 그를 경배하며 지나간다. 그는 종종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그가 이 십자가에서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주교는 순례를 계속하다가 지병이 악화되어 자신이 가져온 선물을 품에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났다. 교인들은 그를 산 패드로 성당 수도원에 묻었는데 무덤 주위에 신비한 빛이 떠돌았다. 성당의 사제가 그 이유를 알고자 무덤을 파서 확인하자 주교의 품속에서 작은 상자가 발견되었다. 그 안에는 안드레아의 유해와 그를 증명하는 문서가 들어있었다. 이를 계기로 성 안드레아는 이 도시 에스테야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