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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Oct 16. 2024

『산티아고 순례길 인문기행』
10. 초대받지 않은 손님

                (제8일 차 /  로그로뇨 ~ 나헤라)


♧ 오늘의 코스 


   오늘(22.10.01)은 순례길 33개 구간 중에서 가장 장거리인 29.4km 코스이다. 로그로뇨(Logrono)를 출발하여 ▷ 그라헤라 호수(Pantano de la Grajrera) ▷ 나바레테(Navarrete) ▷ 벤토사(Ventosa) ▷ 나헤라(Najera)까지 29km를 7시간 동안 걸었고 종일 4만 8천 보 가까이 걸었다. 걷는 거리가 멀어서 힘든 날이었다.   

   해가 뜨기 전에 로그로뇨 숙소인 펜션을 출발하였는데 새벽녘 시내에서는 순례길 노란색 화살표가 자주 숨바꼭질을 하려고 들었다. 마을 중심지에 불 켜진 제과점을 찾아 빵과 우유로 아침 식사를 때웠다. 아침저녁으로 살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을을 완전히 빠져나온 후, 솔밭 길을 지나니 이제 밀밭과 포도밭이 불규칙하게 번갈아 나타났지만 밋밋하고 지루한 순례길이다. 장거리를 연이틀 걸은 탓에 아물어가던 발가락에 다시 물집이 잡히는 조짐을 보여 여간 불편하지 않다. 순례길목에 이름 모를 주황빛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순례자들의 눈요기를 시켜 주고 있었다. 충북 제천시에 있는 ‘의림지’를 연상케 하는 저수지가 나타났다. 그라헤라 호수 속에서 아침 해를 볼 수 있었다. 호수의 구석에 오리 열댓 마리가 물놀이를 하고 있다. 이런 정도의 호수야 우리나라도 없지 않지만 ‘라 리오하’의 포도원의 생물 다양성 시범공원이란 간판이 서 있다. 


(좌) 그라헤라 호수       (우) 호수 속의 오리들


♧ 침묵하는 포도나무들  


    10월이 시작하는 날. 순례길을 품고 있는 포도밭 평원은 끝없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검푸른 포도송이들은 영글어 가고 있지만 나무가지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이 언듯 보인다. 요한복음 15장 5절을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으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하였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의 중요성과 그로 인한 영적인 결실을 강조하고 있다. 순례자들은 예수님이 지휘하는 방향을 따르면 포도들처럼 송이를 이루게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순례길 포도나무들이 좌우로 도열하여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스페인에서 이름난 포도의 고장 ‘리오하’ 답게 나이를 과식한 포도나무들의 잎사귀들이 햇빛에 주눅이 들어 축 늘어져 있다. 일 년 내내 스페인 태양을 머리에 이고 사는 포도나무들의 운명 또한 너무 가엽다는 생각은 기우일거다. 포도나무는 나보다는 햇빛을 더 좋아하니까! 순례길목에서 만나는 포도밭들은 엄청나게 광활하다. 10여 년 전에 미국 여행 때  들렸던 캘리포니아 오렌지 농장만큼이나 넓었다. 


나 바레떼 포도밭 

오렌지 나무는 포도나무보다 키가 커서 수확하려면 작은 사다리를 놓고 나무에 올라가 하나하나 따야 했기에 기계화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포도밭이 규모가 가로 세로 100m 이상으로 넓어서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고생깨나 할 것 같다.

 

   프랑스 포도주의 본고장인 보르도에서 왔다는 장년의 멋있는 순례자는 포도 농사를 하면서 와이너리를 갖고 있는 농부라며 자기를 소개했다.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포도주가 맘에 들어 전업을 했다고 실토했다. 포도수확 철이라 바쁠 텐데 왜 순례길을 걷느냐고 물었더니 리호아 지방만 일주일 다니면서 포도를 계약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포도 수확은 거의 차량에 탐재된 기계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운전기사가 돈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들도 농민이라는 거다. 포도 수확 차량으로 포도나무 숲을 훑고 지나가면서 포도송이를 기계로 따서 잎사귀와 꺾어진 줄기를 제거하고 열매만 선별해서 덤프트럭에 실어 발효 탱크로 가져간다는 거다.  포도 밭은 포도 추수 작업을 차량으로 할 수 있도록 줄 간격을 충분히 떼어 놓고 식재했기 때문에 포도나무 숲에는 좁은 골목 같은 차도가 포도나무 대열과 나란하게 나있었다. 포도나무 간격이 이토록 넓어서 햇빛을 고루 받기 때문에 양질의 포도가 생산된다고 설명했다. 포도 수확차량이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포도나무의 키를 조정하는 것 같아서 부자연스럽다. 


   내가 제1직장을 퇴직한 후에 5년간 살았던 영동군은 전국 포도 생산량의 약 13%를 차지하여 ‘와인 특구’로 지정된 고장이다. 연간 포도생산량은 3만 3천 여 톤 정도라는데, 이를 포도송이로 계산하면 1억 송이나 되는 물량이라고 한다. 영동의 포도농사는 규모가 작아서 기계 영농을 하지 못하고 하루 일당이 10만 원~15만 원이나 나가는 비싼 동남아 노동자들을 대전에서 모셔 오기 때문에 생산비가 비싸게 치이다 보니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아우성을 수차 들어왔다.  외국산 포도와는 가격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엄살이려니 했지만 막상 포도의 왕국인 스페인에 와서 직접 보니 우리 포도농가가 경쟁력을 갖기가 쉽지 않음을 실감했다. 영동에서는 포도나무가 수지가 안 맞는다고 10년 전부터 포도나무를 베어내고 ‘블루베리’나 ‘아로니아’를 심는 농가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지방에서는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한나절에 불과한 내 관찰이 현실을 모르는 판단일지도 모른다.  

  

  프랑스 농부 순례자에 의하면 이 지역의 포도 농사는 프랑스 보르도 사람들이 질병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하여 척박한 자갈밭에 포도나무를 심고 농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스페인의 포도 경작면적은 세계에서 제일 넓지만 땅이 척박한 관계로 그 생산량은 세계 4위라고 한다. 이 지방의 포도주를 ‘리오하 와인 비노’라는 이름을 붙여 나이와 공정에 따라 세 종류로 만들어 시장에 출하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토속 막걸리처럼 상대적으로 브랜드화가 덜 된 포도주들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순례자들의 식탁에 올라 여독을 풀어주는데 기여하고 있었다.       


    포도밭 중에는 순례길 쪽에만 간이 울타리가 있는 곳은 드물고 울타리가 없는 포도밭이 훨씬 많다. 밭이 하도 크고 넓어서 간이 울타리를 만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포기한 것 아닐까 싶다. 포도밭 크기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은 우리네 포도밭에는 울타리가 있음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작은 것이 더 소중하다는 얘기인가?


   울타리가 없는 포도밭의 포도송이에 순례자의 손길이 스쳐간 흔적이 도처에 남아 있었다. 길옆에 있는 나무에 매달린 포도송이들은 순례자들의 손을 탄 것이 많았다. 포도 서리를 해 가는 스릴을 느끼고 싶었을까? 아니면 정말 배가 고팠거나 목이 말랐을까? 

순례자들의 손을 탄 포도밭

순례자의 유튜브나 여행기에서 포도서리하는 장면을 찍어서 내보내는 것을 보면 낭만적인 절도(?)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포도서리를 죄의식을 갖지 않고 자행하는 것 같아 마음이 개운치 않다. 그렇다고 “포도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라든가? "포도밭에 방울뱀 조심하세요!"라는 팻말을 밭에 세워두지도 않았다. 그런 류의 경고문 팻말을 붙여 놓은 밭은 보이지 않았다. 바(Bar)나 레스토랑에서 포도주를 공짜로 제공하는 것처럼, 포도밭 주인들은 포도로 순례자들에게 적선을 베푸는 것을 선행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제주도 올레길을 개발했던 주역으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가 있다.  


   올레길을 걸을 때 마주하는 농작물에 손을 대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올레길 주변에 사는 농민들은 애써 가꾼 과일이나 채소 등 농작물을 외지인들이 무단으로 채취해 가기 때문에 민원이 많이 접수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올레길 주변 농부들이 농작물 훼손에 대한 배상을 해 주던지 올레길을 폐쇄하라는 요구가 많단다. 우리나라 유명한 강산에 유행처럼 만들어진 둘레길을 걷는 타관 사람들의 노략질 때문에 현지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매일 거의 같은 장소에 이르면 목이 마르면 포도밭에서 포도 서리를 하게 되기 때문에 피해 농가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목이 마를 때를 대비하여 준비한 음료수로 목마름을 해결하지 않고 농부들이 애써 가꾼 포도를 따먹는 행위는 절도가 아닐 수 없다. 본인은 낭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매일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낭만을 즐긴다면 포도 농가의 피해는 누가 배상할 것인가? 

  다시 어머니의 아이디어가 각난다. 서울로 올라와서 남새밭이 없어서 상추나 고추를 군부대 울타리 밑 공터에 심고 물을 주고 잘 가꾸었는데 등산객들이 그것을 따가기 때문에 실망이 컸다. 이듬해부터는 잘 가꾼 농작물에 밀가루를 뿌려놓고 농약 살포중이라고 써 붙여 놓았더니 고추를 따가는 사람이 없었다며 즐거워 하셨다.       


   무심코 던진 돌이 개구리의 목숨을 앗아 가는 것처럼 포도농가는 재산상의 피해를 입게 된다. 생각해 보면 순례길 포도밭의 포도들은 농약으로 목욕을 하지 않으면 저렇게 영글지 않을 것이다. 함부로 따 먹으면 농약을 스스로 마시는 것이므로 몸에도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섶 가까이 포도송이들은 반 토막이 되어 매달려 있다. 쥐가 뜯어먹은 모양이라서 흉하게 보인다. 포도송이 채로 꺾어 가서 상처를 입은 나무들도 보였지만 그것들은 싫다 좋다 말이 없다.  

 

   순례자 중에는 자기 죄를 사면 받거나, 또는 영적인 성장을 도모하고자 순례길을 걸어가면서 길가에 있는 포도를 따먹는다면 또 다른 죄가 짓게 된다.  과거 순례자들은 도둑이나 강도들에게 당했지만, 현재의 일부 순례자들은 도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바레테 마을의 왕궁터를 지나자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포도주 공장 앞에 있는 광고판이 보였다. “산티아고”라는 말과 같은 뜻인 ‘야고보’라는 이름을 포도주 상품 이름으로 쓰고 있었다. 왠지 정다워서 사진을 찍고 이 포도주 공장의 홈페이지를 휴대폰으로 찾아보았다. 자기네 와인은 농약을 쓰지 않은 포도로 빚어낸 유기농 와인이라고 선전하고 있었다.       


♧ 결혼파티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

 

  어디쯤인가 성당이 있어서 기웃거렸더니 마침 결혼미사를 끝내고 하객들이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레스토랑에는 결혼식 하객들로 붐벼서 점심 식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다른 바를 찾아 가려다 스페인 결혼 피로연 파티가 보고 싶었다.  

화려한 흰색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깔끔한 턱시도를 입은 신랑이 시종 즐거운 표정으로 축하객들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신부가 하객들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피로연 파티를 하고 있었다. 하객들도  선남선녀처럼 한껏 예쁜 옷을 차려입고 참석했다.  


신부는 신랑의 팔에 매달려 스스럼없는 키스를 주고받으며 서로 얼굴에 바른 화장품을 닦아내고 있었다. 하객들은 물론이고 새 출발하는 한 쌍을 처음 보는 순례자들도 박수로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 준다. 신랑신부는  우리 순례자들에게도 손을 흔들어 주는 여유를 보였다. 하지만 하객들은 땀에 젖은 순례자들을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후줄근한 복장에 땀 냄새와 거무튀튀한 얼굴의 순례자들이 그들의 파티에 오래  끼어들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눈빛을 감지했다.


♧ 이혼을 쉽게 하려거든 스페인으로 가라.


   나는 예비신자로 교리를 한 달간 배우다가 한 달 반 가량 휴학(?)하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 가톨릭 교회에서 혼인은 성사(Sacrament)로 여겨지며, 이는 매우 중요하고 신성한 제도라고 들었다.  가톨릭 신앙에 따르면, 결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며, 이를 통해 부부는 하나로 결합되고, 이 결합은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 혼인 성사는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함께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다. 결혼은 하느님에 의해 두 사람이 결합된 것이므로 인간은 이를 깨트릴 수 없다. 따라서 이혼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특별한 경우에만 혼인무효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결혼은 부부가 자유 의지로 서로가 합의하여 이루어짐을 기본으로 한다. 강압이나 속임수 없이 진정한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합의가 필요하다. 결혼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일이라, 가톨릭교회는 부부가 하느님의 선물로서 자녀를 환영하고, 그들을 신앙 안에서 올바르게 양육할 책임을 져야 한다.

   가톨릭교회는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서로를 위한 헌신과 희생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살도록 격려하며 요구한다. 가톨릭교회에서 결혼은 단순한 사회적 계약이 아니라, 하느님과 부부 사이의 신성한 약속이므로, 이는 평생 동안 지속되어야 하는 영적 여정으로 인식한다. 

 

   스페인은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인데도 불구하고 통계에 따르면 스페인의 이혼율은 55%로 세계 평균 수준보다도 훨씬 높다. 유럽 국가인 스웨덴과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의 이혼율은 40%를 넘고, 이탈리아, 프랑스와 같은 국가는 일반적으로 30% ~ 40% 범위로 이혼율을 보이고 있으므로 유럽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스페인의 이혼율은 여러 선진국에서 공히 관찰되는 추세를 앞서 가고 있다. 스페인의 이혼비율이 높은 배경에는 2005년 이혼법률의 개정으로 이혼 사유를 가리지 않으며, 이혼절차를 간소화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있다. 

  

   이혼에 대한 보수적인 가톨릭 입장을 고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에서는 스 페인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변화가 세계적으로 높은 이혼율을 기록하게 만들었다는 분석 했다. 

결혼을 쉽고 싸게 하려면 라스베이거스로 가야 하고, 이혼을 쉽게 빨리 하려면 스페인으로 가라는 말을 라스베가스 시청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들었다.   


♧ 나헤라의 사슴 


  나바라테를 지나 성 니콜라스의 기적의 샘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벤토사를 지나가게 되었다. 옛날에 순례자 한 명이 벤토사 마을에 도착했다. 그는 오랜 여행과 더위로 인해 매우 지치고 탈진한 상태였다. 그는 마을 근처에 도착했을 때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어져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성 니콜라스에게 도움을 청하며 기도했다. 그 순간, 눈앞에 갑자기 샘이 나타났다. 샘물은 맑고 차가웠다. 그 물을 마시고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 기적에 감사를 드리며 순례를 계속 이어나갔다. 이 샘은 이후로도 많은 순례자들에게 휴식과 치유의 장소가 되었으며, 성 니콜라스의 은혜를 기리는 상징이 되었다. 


   순례자들은 벤토사에서 샘을 찾아 물을 마시며 피로를 풀었다. 10 여분 후에 산허리를 잘라 만든 고속도로를 내려다보면서 순례길을 걷는다. 순례자의 안전을 위해 철조망을 설치했는데 거기에 순례자들은 자기의 흔적을 남기고 지나갔다. 

   나뭇가지를 꺾어 만든 크고 작은 엉성한 십자가를 만들어 철조망에 걸어놓았다. 그 거리가 거의 100m 미터는 넘을 것 같다. 


   순례길목에 세워둔 간판은 라 리오하(La Rioja) 주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려주며 나헤라가 우리를 맞이한다.  나헤라 입구에 있는 건물벽에 붙여진 사진에 "산티아고 순례자"라는 시가  적혀있다. 스페인어를 모르니 그 의미를 알 수 없다. (귀국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신앙심이 깊은 신부가 어느 문학대회에서 입상한 작품이라 한다. 이 책의 가장 끝에서 인용했다)  


  나헤라는 9세기와 10세기에 걸쳐 나헤라-팜플로나 왕국의 수도로 번영했으며, 이후 카스티야 왕국과의 통합으로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혜라는 923년 나바르 왕 산초 1세와 레온 왕 오르드뇨 2세의 연합군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냈고, 산초 1세의 아들 가르시아 산체스에게 이 지역을 통치하게 하였다.

    

   11세기 초 산초 3세 대왕은 나헤라를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 도시를 지나게 하면서 자치권을 선포하였다. 이 도시에는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María la Real)이 있다.  옛날 나바라테의 왕이었던 가르시아 산체스 3세(García Sánchez III)가 사냥을 나갔다. 왕은 사냥 중에 길을 잃고 숲 속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신비로운 사슴 한 마리를 발견하고 그 사슴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왕이 사슴을 따라가다 보니 백합으로 가득한 동굴에 이르게 되었는데 동굴 안에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의 형상이 있었다.

  

나혜라 왕립 산타 마리아 수도원 앞

 왕은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과 함께 성 십자가와 성모의 신발을 발견했다. 이 놀라운 발견 이후에 가르시아 왕(산초 3세의 아들)은 이 장소에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수도원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건립된 것이 바로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이란다.  



#$@  이 글은 “11. 갈색 밀밭 길을 가는 나그네” https://brunch.co.kr/@96e291d8614c4ec/64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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