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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Oct 17. 2024

『산티아고 순례길 인문기행』
11. 닭을 키우는 대성당

(제9일 차 / 나헤라 ~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

♧ 오늘의 코스

오늘(22.10.02) 순례 구간은 나헤라(Naiera)를 출발하여 ▷- 아소프라(Azoira) ▷ 시류에냐(Ciruena) ▷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까지 21km를 5시간 동안 3만 9천 보 가까이 걸었다. 그늘이 전혀 없었지만 사진 찍기 좋은 포도밭이 널려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헤라에서 아소프라까지 5.8km를 걷는 동안 아침식사를 먹을 레스토랑이 별로 없다고 해서 시내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 산토도밍고의 헌신적인 삶

마을 외곽에 있는 햇빛 가림막이 없는 순례자용 벤치에서 준비해 간 바게트와 바나나 두 개로 식사를 겨우 때웠다. 시루에나를 빠져나오자 오르막길을 야간 올라가자 오하강을 만나면서 오늘의 목적지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 도착했다.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를 세운 도밍고 성인은 1019년 이곳에서 멀지 않은 ‘빌로리아 데 리오하’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양치기였는데 젊은 날 수도원에 들어가고자 애를 썼지만 배운 게 없다 보니 두 번씩이나 거절당한다. 도밍고는 1040년경 오하강 둑에 있는 숲 속에서 자연인으로 살아간다. 여기서 강을 건너느라 고생하는 순례자들을 돕는다. 순례자들은 깊은 산길에서는 강도를 만나기 일쑤고, 좁고 험한 길은 유실되기도 했으며, 물이 불어난 강물은 순례자들에게 커다란 위험을 안겨주었다. 이에 도밍고는 좁은 길을 넓히고 정비하여 안전을 도모하고, 강에는 다리를 세웠으며 순례자를 위한 숙소도 마련하였다.

1106년에는 마침내 카스티아 왕 알폰소 6세로부터 땅을 하사 받아 성당을 지었는데 12세기말에는 그 자리에 카테드랄을 세웠다(홍사영, 2015, 전게서, 90쪽). 산토도밍고 데라 칼사다 대성당(캐테드랄)은 12세기에 세워졌지만 그 후 여러 번 증축과 보수를 거쳤다. 천장을 덮은 궁륭과 도밍고 성인의 영묘, 주제단화를 완성하였다. 15세기의 기적에서 유래한 암탉과 수탉을 키우고 있다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 통닭이 살아나다.

14세기쯤 독일에서 온 젊은 순례자가 부모와 함께 순례를 왔다가 한 숙소에 머물렀다. 그런데 숙소 주인의 딸이 청년에게 한눈에 반한 나머지, 청년에게 구애를 했지만 거절당했다. 화가 난 그녀는 자기 집의 은잔을 청년의 가방에 감추고 이를 도난 신고를 하였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의 본거지가 여기인 것 같다. 청년의 가방에서 은잔이 발견되면서 그는 절도죄로 교수형이 처해졌다. 나처럼 여자 말을 잘 들어야 신간이 편해진다는 진리를 알턱이 없는 청년은 너무 억울해서 환장할 노릇할 일이다. 슬픔에 잠긴 청년의 부모는 기도하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순례길을 걸었다. 순례길을 다 걷고 돌아오는 길에 나무 교수대에 다시 들렸더니 아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들의 다리 밑을 ‘산토도밍고’가 받치고 있었기 때문에 교수대의 청년이 목숨을 연장할 수 있었다. 청년의 부모는 지방 재판관을 찾아가서 이 사실을 고하며 아들을 살려달라고 통사정했다. 통닭 요리로 식사를 하고 있던 재판관은 “당신의 아들이 살아있다면 여기 식탁의 통닭도 살아날 것이다.”라고 빈정거렸다. 바로 그때 식탁에 있던 한 쌍의 구운 통닭이 접시에서 뛰쳐나와 큰 소리로 울었더란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따로 없다. 이를 본 지방 재판관은 청년을 풀어주었다. 재판관은 판결을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밧줄을 목에 매고 재판을 하였다고 전한다.

15세기 중반 산토도밍고의 기적을 기리기 위해 대성당(캐테드랄) 안에 살아 있는 닭을 키울 수 있도록 닭장을 만들었다. 닭장 위쪽에는 교수대로 사용됐던 나무 조각이 걸려 있고 아래쪽에는 이 전설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붙여놓고 있다. 이런 전설 때문에 중세에 순례자들은 여행 중에 수탉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성당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밤에는 울지 않는 닭의 생리를 잘 알기에 서 내일 새벽 미사 때 다시 오기로 하고 철수했다.

한 처녀의 무고한 모함이 한 청년의 생명을 앗아가는 비극을 초래할 위기를 맞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것은 권리일 수 있지만 사랑받는 것은 의무가 아니고 사랑을 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짝사랑은 죄가 아니지만 한 청년의 생명을 빼앗은 처녀는 죄로 처벌받아도 싼데 이 처녀가 어떻게 회개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그녀는 지옥에서 벌을 받았을 것 같다. 사랑을 받아 주지 않는다고 삐친 여자의 보복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애매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생명을 끊게 하거나 단축시키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종교적으로는 아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순례를 다녀온 부모의 신앙심에 하느님이 은혜를 베푸신 거다. 그에 도밍고 성인의 자비가 한몫하였을 것이다. 성당에서 도밍고 성인이 잠들어있는 무덤 부분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다듬었고, 기적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탁자는 고딕양식이며, 소 성당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좌)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 성당 주제단 (우) 닭의 기적 전설의 그림

♣ 베드레이스 중단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느긋하게 걸으라는 충고는 우리 배달민족에게는 실로 무리한 주문이다. 지난 40년간 우리 국민들의 머리에 박힌 구호는 “빨리빨리” 였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가시오”라는 성경 말씀이 있지만 신자들의 순례길에서 평화가 사라지고, 숙소 차지 경쟁만 넘쳐나고 있다. 값싼 숙소를 차지하려는 순례자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남을 위해 양보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어차피 사람은 자유의지 대로 살아가는 존재이고, 세상은 적자생존이라고 생각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의 숙소 시스템에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다. 목적지에 한 발이라도 일찍 도착해서 좋은 알베르게에 입성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괴테는 “여행을 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라 했다.”라고 말했다. 이층 침대보다는 일층을 침대를 차지하려는 욕심도 잠재되어 있다. 남이 편안하게 지내도록 양보할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순례길은 배려와 감사가 깃든 사랑을 실천하는 도장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순례자들은 선착순 경쟁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숙박료가 상대적으로 싼 알베르게보다는 안락한 숙소가 필요했다. 혼자서 느긋하게 걸으면서 사색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저녁에 노숙을 하지 않으려면 숙소를 배정받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나를 무한대로 서둘게 만들었다. 방을 구하지 못하면 노숙을 하거나 널빤지나 매트리스 바닥에서 하룻밤을 자야 한다. 너도 나도 아침 일찍 일어나 플래시를 켜고 별을 보며 어둠의 길을 걸어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다. 새벽에 지나온 마을의 유적이나 전설의 고향은 눈팅 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치지 않을 수 없다.

걷기 대회 참가해서 선착순으로 침대를 배정받으려고 일찍 도착한다 해도 2시까지는 기다려야 체크인을 할 수 있다. 사람 대신 배낭들이 태양의 횡포를 견디며 줄을 대신 서고 있지만 누가 새치기할까 봐 멀리 가지도 못하고 가까운 그늘 밑에서 배낭을 지켜보다가 졸기도 한다. 내 앞에 도착한 누군가가 차례를 포기하고 떠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이게 기독교의 사랑의 실천인가? 시계를 수십 번 들여다보며 알베르게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순례자들의 마음은 느긋함과는 담을 싸는 순례를 하고 있다.

어렵사리 도미터리 침대를 배정받아도 즐겁지 않다. 좁은 샤워실이나 순례자들의 몸이나 신발은 악취 공장이다. 지저분한 화장실도 나를 슬프게 한다. 순례자들의 땀 냄새, 끙끙대는 신음 소리, 코 고는 소리, 낄낄대는 소리, 잠꼬대 소리, 꿈속에서 싸우는 소리조차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산티아고 순례자가 800Km를 33일간 완주하려면 33개의 각기 다른 숙소를 준비해야 한다. 순례길에서 숙소의 선택은 순례길을 완주하는데 가장 중요한 난제이다. 현실이 그러하는 데도 산티아고 순례 전문가들은 “느긋한 마음으로 걸으라”라고 말한다. 값이 싼 공립 알베르게를 사전에 예약하고 순례길을 걸을 수도 없는 시스템 때문에 순례자들은 침대를 차지하려고 아침부터 걷기 경주를 한다. 공립 알베르게에는 2인실과 3인실도 있지만 대개 도미터리 룸 형태로 구성되며, 한 개 룸에 2층 벙커 침대를 20~30개를 배치하여 40명~60명까지 수용하는 유스호스텔 수준이다. 하루 침대 값은 6€~10€ 정도로 우리나라 여인숙 수준으로 싼 가격이다.

일부 공립 알베르게에는 성당과 수도원과 수녀원 등 종교 유적을 숙소로 리모델링하여 순례자를 받고 있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알베르게는 얼핏 보면 병원의 병실 같기도 하고, 누에를 키우는 잠실(蠶室)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숨이 막히고 답답하지만 다소 시간이 지나면 이내 적응된다. 신이 내리신 적응력이다. 순례자들은 1,2층 침대에서 자기 침낭 속에서 하룻밤을 누에고치처럼 잠을 자게 된다. 은퇴한 순례자들은 닭장 같이 불편한 숙소에서 “개고생을 왜 사서 해야 하는가?”라고 자문, 자조하면서, 순례길 완주하고픈 마음이 자주 흔들리기도 한다. '공립 알베르게'는 순례자 숙소 중에서 숙박료가 가장 저렴하기 때문에 청년층 순례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그런데 '공립 알베르게'는 예약을 받지 않고, 14시부터 '선착순'으로 침대를 배정하고 있다. 이러한 숙소배정방식은 50년 전 군대 시절에 경험했던 '선착순'과 비슷하다.

알베르게 2층 침대

우리나라 군대의 '얼차려'를 산티아고 공립 알베르게들이 수입해 쓰고 있다. 걷는 역량이나 체력이 약한 노약자들에게 '공립 알베르게'의 침대는 그림의 떡이다. 나이 많은 은퇴자들이 '공립 알베르게'에 투숙하려면 선착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이에 필요한 체력과 도전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순례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선착순 레이스'에 참가하여 '공립 알베르게'의 베드를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러한 선착순 방식은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침대 쟁탈전을 유도하고 있다. 아니 순례자 상호 간에 전쟁을 치르는 양상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쓴 교수마이클 샌델 교수에게 묻고 싶다. 이게 공정한 경쟁이냐고? 순례의 숭고한 목적을 잊은 채 매일 제한된 수의 '공립 알베르게'의 침대를 차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미터리 형태의 구조를 가진 사립알베르게는 공립보다 시설이 현대적이며 깨끗하고 서비스가 좋다. 그러나 깨끗하고 편리하기 때문에 일찍 마감되어 버린다. 사립 알베르게는 예약을 받기 때문에 배낭배달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서 은퇴자나 노약자들이 많이 이용한다.

코로나 시대임을 감안하고, 순례길을 느긋하게 걷고 싶어서 우리 부부는 선착순 베드 레이스를 하지 않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예약이 되는 사립 알베르게에 침대가 없으면 호스텔을, 호스텔 예약이 마감되면 펜션을, 펜션에 방이 없으면 호텔이나 아파트를 예약하기로 했다. 그렇게 숙소를 필터링을 하면 비용은 많이 드는 단점이 있지만 몸에 무리하지 않고 느긋한 순례를 계속할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