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일 차 / 카스트로해리스~프로미스타)
오늘(10.9) 이동경로는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를 출발하여 ▷ 모스텔라레스 고개(Alto Mostelares) ▷ 피오호 샘(Fuente de Piojo) ▷ 에테로 데 라 베가(Itero de la Vega) ▷ 보아디야 델 카미노 (Boadilla del Camino) ▷ 프로미스타(Fromista)까지 24.7km를 5시간 30분 동안 4만 1천 보를 걸었다. 모스텔라레스 고개를 넘을 때까지 오르막길이고 그 이후는 평지이므로 힘들지 않았다.
새벽 6시 10분 기상해서 짐을 꾸리고 배낭을 배달시킨 뒤, 발뒤꿈치에 생긴 물집을 바늘로 터뜨려 물을 빼고 밴드를 붙인 후 순례길을 나섰다. 새벽이 물러가기를 거부하고 있는 카스트로헤리스 숙소를 떠나 20여 분 마을길을 빠져나와 평지를 30분 이상 걷다가 일출을 보기 위해서 고개 마루까지 올라왔다.
7시 20분쯤에 모스텔라레스 고개에 도착했다. 중세시대에 이곳은 강도들이나 도둑들이 순례자의 물건이나 돈을 약탈한 곳으로 유명했다. 이 마을 세바스찬이라는 성직자가 순례자들을 보호함으로써 마을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20여 명의 순례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해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여 분을 기다린 끝에 태양이 불끈 솟아오르자 일제히 태양이 떠오른다고 소리쳤다. 뉴질랜드에서 온 한 순례자는 헤밍웨이 소설책 제목인 “The Sun Also Rises”라고 외쳤다. 나는 고등학생 때 외워둔 동명일기를 떠듬거리며 기억을 되살려 냈다.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 밑 홍운(紅雲)을 헤치고 큰 실오라기 같은 줄이 붉기 더욱 기이하며, 기운이 진홍 같은 것이 차차 나 손바닥 나비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 빛 같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위로 작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 호박(琥珀) 구슬 같고, 맑고 통랑(通郞)하기는 호박보다 더 곱더라.
그 붉은 위로 훌훌 움직여 도는데, 처음 났던 붉은 기운이 백지 반 장 나비만큼 반듯이 비치며, 밤 걷던 기운이 해 되어 차차 커 가며, 큰 쟁반만 하여 불긋불긋, 번듯번듯 뛰놀며, 적색이 온 바다에 끼치며, 먼저 붉은 기운이 차차 가시며, 해 흔들며 뛰놀기 더욱 자주 하며 항아리 같고 독 같은 것이 좌우로 뛰놀며, 황홀히
번득여 양목(兩目)이 어질 하며, 붉은 기운이 명랑하여 첫 홍색을 헤치고 천중(天中)에 쟁반 같은 것이 수레바퀴 같아서 물속으로서 치밀어 받치듯이 올라붙으며, 항아리, 독 같은 기운이 스러지고, 처음 붉어 겉을 비추던 것은 모여 소의 혀처럼 드리워 물속에 풍덩 빠지는 듯싶더라.”(연안김 씨의 "동명일기" 중에서)
고등학교 때 국어 시간에 배운 동명일기의 일출 장면인데 이 일기에서는 직유법을 연속적으로 구사하여 한 문장이 250자나 되는 긴 문장을 머리가 비어 있을 때 달달 외워두었었다. 동명일기는 동해바다에서 뜬 해에 대한 감상 수필이었고, 스페인에 뜨는 해는 메세타 지평선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이었다.
해 뜨기를 기다리던 순례자들이었지만 햇볕이 싫어서 걷기 전에 얼굴에 선크림을 2중 3중으로 더덕더덕 바른다. 남녀 할 것 없이 챙이 긴 모자와 마스크로 안면을 가리니 복면강도 같더라.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은 예술이었지만 그리도 아름답던 태양이 메세타 평야를 걸어야 하는 순례자들에게 애물단지 같았다.
마땅히 쉴만한 그늘하나 없는 광야에 내리쬐는 햇살은 흉기와 다름없어라. 배낭에 있던 우산을 꺼내 양산으로 쓰고서 따라오는 태양을 등에 지고 걸으니 기다란 그림자가 내 앞에서 나를 향도하고 있다. 평원이 품어내는 열기가 여름으로 되돌아 간 느낌이다. 태양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무색하게 만들기로 한 모양이다. 아내와 나는 타오르는 태양과 메세타 고원을 배경으로 셀카로 기념 촬영을 하고 고개를 터벅터벅 걸어 넘어갔다.
순례길 좌우로 곳곳에 추수를 하지 않아 불에 그슬린 채로 서있는 해바라기 군상들은 우리네 들판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풍경이었다. 꽃잎은 프라이팬 위에서 타버린 달걀전처럼 시커멓고 우중충하게 서서 고개를 절반쯤 숙이며 태양을 향하던 일편단심은 배신감으로 전환된다.
밝은 모습의 해바라기 밭은 음산하게 변하고 말았다.
얼굴짝만 크기의 해바라기 꽃 판은 촌노의 얼굴처럼 거무튀튀하다. 페스트에 걸린 환자의 얼굴처럼 병색이 완연하다. 늙은 해바라기들은 해를 바라보기가 쑥스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순례자들을 외면하고 있다.
느닷없는 바람이 불어 말라비틀어진 해바라기 잎사귀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떨고 있다. 가련하다. 해바라기 꽃은 검게 탄 얼굴로 태양을 짝사랑하던 시절을 후회하며 죽어간 동료들을 위해서 묵념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해바라기 농장을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니 “해바라기”라는 옛날 영화가 생각났다. 대학생 때인 70년대에 보았던 영화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전쟁은 너무나 가혹한 쓰라린 경험을 안겨주며 인간의 한계를 그려낸 영화였다. 그 시절 내 눈에는 해바라기보다는 주연 여배우인 ‘소피아 로렌’만 정신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 고혹적이어서 인상이 오래오래 기억된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 중에는 늦게 학교에 들어가 나이 많은 친구들은 군입대를 앞두고 애인과 헤어지기 싫어서 군입대를 기피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 '해바라기'였다. 영화 줄거리는 오래돼서 가물가물 생각나지 않아 인터넷을 뒤져 줄거리를 찾아 읽으며 기억을 되살려 냈다.
2차 세계대전 중 시골처녀 지오바나(소피아 로렌)는 밀라노 출신의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사랑에 빠지는데 안토니오는 전쟁터로 입대해야 했다. 안토니오는 지오바나와 더 긴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입대를 며칠 미루고 결혼을 한다. 두 사람은 헤어지며 미래에 생환을 기대하며 슬픈 이별을 한다. 얼마 후 많은 사상자를 내고 전쟁은 끝났지만, 안토니오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오바나는 남편을 찾으러 소련의 전쟁터로 간다. 지오바나는 많은 전사자들이 묻힌 이 해바라기 밭에 먼저 들린다. 남편이 죽었다면 해바라기 밭에 누워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불길한 예감을 애써 부인하면서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부정하고 실낱같은 희망으로 그를 찾아 나선다. 그리움으로 남편을 찾아 헤매던 그녀는 남편이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지오바나는 안토니오를 만나게 되는 순간은 기쁨과 격정이 넘쳤지만 현재의 그는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자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배신당한 것이다.
수년간의 기다리고 만나려고 했던 노력들이 물거품으로 변하자 지오바나는 기차를 타고 안토니어를 떠나버린다. 지오바나에 대한 사랑은 남편 안토니오 역시 같은 심정으로 애달프게 살았다. 안토니오는 어렵게 지오바나를 찾아왔지만 더 이상 재기할 수 없는 사랑임을 서로가 이해하고 현실을 인정하자며 긴 포옹을 끝으로 이별하고 만다.
영화의 제목인 '해바라기'는 바로 이런 한 남자에 대한 고결하고 순결한 지오바나의 강한 의지나 희망, 모성애를 대변하는 영화이다. 소피아 로렌의 농염한 연기가 젊은 날의 나를 현혹시켰다.
믿었던 태양으로부터 배신당하고 생을 포기한 시들어 버린 해바라기, 한 때는 빛나던 영광이 저토록 시들어버린 모습으로 들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저 해바라기들은 오늘의 내 모습이 같아서 섧다.
한때 그리도 찬란했던 빛이 / 이제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한들 /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 어린 시간이여, / 아무것도 다시 되돌릴 수 없다 한들 어떠리. / 지금까지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 원초적인 연민으로 인간의 고통에서 벗어나 / 생기를 찾아 마음을 다스리며 / 죽음을 초월한 신앙의 힘으로 / 지혜로운 영혼을 가져다주는 세월 속에서 / 우리는 절대 슬퍼하지 않으며 그 속에 / 깊이 남겨진 오묘한 빛의 힘을 알게 되리라.
해바라기는 빈센트 반 고흐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아 화폭에 올랐다. 그는 밝은 색감과 붓 터치로 탁자 위에 해바라기 꽃을 자연과 연결시키며, 생명력과 활기를 표현하고자 했으며, 시들어 가는 꽃의 고독과 상실을 표현하려 했다.
해바라기는 늙어서 고개를 가눌 수 없음에도 해를 바라보려고 고개를 비틀고 서 있다. 일편단심 민들레가 아니라 일편단심 해바라기야? 그러나 해바라기 정치인을 가리켜 우리는 아붓꾼이라고 부른다. 요즈음 세상에는 출세를 위해 해바라기가 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대상에는 돈을 찾아서 헤매는 사람, 권력을 향해서 매진하는 사람들, 사랑을 향해서 매진하는 인간들에게 해바라기는 냉소를 머금은 채로 이승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바람이 거세게 불던 가을날, 늙은 나를 위해 비틀거리며 춤을 추던 해바라기는 내 눈을 따라오지 못하고 제자리에 굳은 채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부르고스를 가는 길이 공항 때문에 빙 둘러가라고 이정표는 말한다. 비행장이 우리의 순례를 방해하고 있다. 활주로 울타리를 돌아가느라고 거리가 엄청 멀어졌다. 순례 길목에서는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라는 부르고스에 외곽부터 차로와 순례길 코스가 겹쳐 있어서 교통사고의 위험이 따랐다. 순례길은 시내를 관통하고 있었고 우리가 예약한 숙소와 알베르게는 부르고스의 외곽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부르고스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H교수가 군대에 있을 때 열렬하게 연애하던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고해를 듣고 나름 충격을 받았다. 한때는 물고 빨며 사랑했지만, 헤어지기보다는 차라리 자살을 택할 할 것이라는 과격하기 짝이 없는 표현으로 여인의 마음을 붙들려고 밤새우며 쓴 연애편지를 주고받았건만 여인과 끝내는 헤어지고 말았으니 그 마음의 상처는 오죽했을까? 어느 쪽이 결별의 원인을 제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슬픈 사랑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녀는 누구랑 결혼했고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유학시절에 만난 부인 얘기까지 보너스로 들어야 했다. 대학교수로서의 권위주의 시대의 애환에 대하여, 민주화 시대의 교학(교수와 학생) 간의 갈등에 대하여 비화를 들었다. 그뿐 아니다. 군대에서 만났다 홀연히 헤어졌던 몇몇 전우들의 이름을 돌이켜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죽은 사람도 벌써 넷이나 되고 보니 인생은 덧없음을 말해 주었다. 옛날을 회상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나 혼자만의 명상이나 아내와의 대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다행히(?) H교수 발에 물집이 때문에 더 이상 못 걷겠다고 가까운 마을에서 하룻밤 머물고 걸어야겠다며 자발적으로 낙오의 길을 택해서 나와 동행하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오늘의 목적지인 '프로미스타'에 접근하는 길과 나란히 흐르는 카스티아 운하는 메세타의 황량함을 많이 덜어 주었다. 운하를 따라 큰 키의 포플러 나무들이 노란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다. 잎사귀들이 바람을 맞아 흔들리며 순례자들을 환영했다. 운하를 따라오고 가는 유람선은 있었지만 타는 손님이 없는 상태로 밧줄에 배어 있다. 메세타 고원에서 폭 50센티미터의 끝없는 인공 수로만 보아 오다가 오랜만에 보는 긴 운하였다.
이 메세타에는 그 흔한 단풍나무나 우리나라의 가을꽃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코스모스도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 지난여름 피었다가 져버린 유채꽃과 양귀비 꽃나무가 옷 벗은 허수아비처럼 아니 빼대 만 남은 몰골로 생명을 버티면서 순례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프로미스타에 위치한 산 마르틴 데 투르 교회는 11세기에 건축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산 마르틴은 교회의 건축에 영감을 주었고, 그의 축복을 받은 교회는 수세기 동안 순례자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제공해 왔다. 교회 안에는 성수가 솟는 작은 분수가 있었다. 중세 시대에 한 순례자가 심각한 피부병을 앓고 있었는데, 이 교회의 성수로 세례를 받은 후 기적적으로 병이 치유되었다. 한밤중에 하늘에서 밝은 빛이 내려와 산 마르틴 데 투르 교회를 비추었고, 이 빛은 마치 성 마르틴의 존재를 상징하는 듯했다.
이 현상을 목격한 순례자들은 이를 성 마르틴의 보호와 인도로 여겼다. 에테로베카의 샘이나 피오호 샘, 프로미스타의 성수를 보면 이 지역에는 물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예약한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하고 순례길 맛집을 인터넷으로 체크해서 레스토랑을 두 군데 찾아갔지만 자리가 없어서 밀려 나왔다. 세 번째 찾아간 바에서 겨우 테이블을 찾아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했다. 레스토랑은 큼지막하고 번듯하지만 식탁 위에서 먹방을 찍는 파리들이 장난 아니게 많았다.
파리하면 지겨운 기억 때문에 나는 파리를 다른 사람보다 열 배나 싫어한다. 중학교 때 서울서 자취 생활을 하다가 수재를 당해서 마포 변두리 분뇨처리장이 넘쳐 물이 빠지자 그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파리가 수해지역을 덮었던 모양과 흡사하다. 음식이 나오자 파리들이 선점해 버렸다. 순례길 여행기나 기행문에서 파리의 홍포에 대하여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파리와 무슨 원한이 있다고 젊은 시절부터 장로의 시절까지 못살게 하는지 모르겠다.
순례길목에 있는 목장에서 원정 나온 파리들은 약싹 빨랐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은 없겠지” 하고 배짱으로 사는 것 같았다. 나의 손바닥이 합장하는 틈에 끼어 뻥튀기 과자가 되기 전까지는 순례자 들의 손바닥을 우습게 아는 것 같았다. 손으로는 파리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날쌔게 피했다. 군대에서는 “파리 잘 잡는 이 병장”으로 포상휴가를 챙긴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 마을 파리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기사가 이곳 지방지에 실릴까 망신스럽다. 늙어서 행동이 둔해서 그런가? 파리가 날쌔서 그럴까? 파리 킬러를 스카우트해야 할 것 같다. 들판에 새들이 자취를 감추었으니 파리들이 설치는 건가? 파리는 순례자의 인격을 무던한 것으로 파악한 것 같았다. 아니면 순례자들이 피곤하여 매가리가 없다 보니 파리 한 마리도 손으로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 같았다. 순례자의 심성을 불교적으로 파악한 것이 아닐까? 살생하지 마라! 아내는 질색을 하며 파리를 쫓았지만 소용이 없다. 음식 위에 앉아서 다리로 낯을 천연덕스럽게 비비고 있다. 파리가 다리를 비비는 것은 인간보다 먼저 먹으려 하니 미안해서 그런다고 괜히 파리를 대변하고 나선다. 과학도인 아내는 내 농담에 물을 끼얹어버린다.
"파리는 입이 아니라 다리로 맛을 느끼는 데 파리의 다리에 무수하게 털이 나 있기 때문에 이 물질이 달라붙어 있어서 맛을 못 느낀대요, 그래서 다리에 붙어 있는 이 물질을 떼내려고 비비는 거거든요."
늙은 순례자의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 식사를 시종 방해했다. 우리보다 먼저 음식을 시식하려고 벼르는 것 같았다. 파리들이 다리로 얼굴을 비비는 것을 파리들이 코로나를 옮기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목장에서 쇠똥이나 핥아먹고 살던 다리 여섯인 곤충인 주제에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 맛을 본 이상 물러날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파리는 침대까지 따라와 얼굴 마사지를 강제로 하더니 똥까지 싸고 날아간다. 늙은 나를 졸로 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순례자인 나의 대자대비한 마음을 이미 눈치챈 것 같다. 내 사전에는 모기는 용서할 수 있어도 뻔뻔스러운 파리는 용서하지 않았다고 기술되어 있다. 날쌘 파리를 체포할 수 없어서 짜증만 더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