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일 차 / 카리온데로스콘데스 ~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텔플라리오스
오늘(10.11)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on de los Condes)를 출발하여 ▷칼사다 로마나(Calzada) ▷ 교차로(Cruce) ▷ 칼사디야 데 라 케사(Calzadilla de la Cueza) ▷ 레디고스 (Ledigos) ▷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텔플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까지 26.3km를 6시간 가까이 걸었지만 숙소를 구하지 못해서 모라티노스(Moratinos)까지 2.5km를 더 걸어가서 호스텔에 체크인하였다. 그 총 28.8km를 7시간 동안 걸어서 걸음 수는 4만 7천 보가 나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평지길이 대단위 경작지 사이로 이어졌다. 순례길이 밋밋하고 지루해서 졸린 나머지 바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출발지에서부터 칼사다 데 라 케사까지 약 18km까지는 식사할 장소가 없어서 준비해 온 음식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의 숙소에서 나오자 산티아고 성당을 만났다. 산티아고 성당은 12세기의 로마네스크 건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문을 아직 열지 않아 탐방을 하지 못했다. 성당 출입문의 파사드에는 매우 아름다운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전능하신 그리스도)가 조각되어 있었다.
이 도시에 있는 산 소일로 수도원은 원래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16~18세기에 걸쳐서 수차례 증/개축하였다. 현재는 고급 호텔로 개조하여 관광객이나 순례객을 받고 있는데 우리도 손님으로 하룻밤을 유숙했다. 나는 북적대는 호텔 카페에서 구레나룻이 무성해서 잘생긴 순례자에게 눈길이 자주 갔다. 저 친구는 수염을 손질하는데 시간과 돈이 많이 들 것 같았다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그를 만나 모처럼 한담을 나누며 걸었다. 여행길에서 친구로 어울리는 경우는 대체로 유유상종이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끼리, 장년은 장년끼리, 노인은 노인끼리 어울리며 피곤함과 고독을 즐기며 걷는다.
나만큼 나이 든 친구를 찾아도 흔치 않아서 상대방이 말을 걸기 전에는 침묵의 행진을 계속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가능하면 침묵을 지키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크게 나쁘지 않았다. 사실 아내가 지척에서 걷기 때문에 침묵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브라질 국적을 가지고 마드리드에서 국제 무역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란다. 그는 20대 후반에 미혼이라 하니 아들보다도 어린 젊은이였다. 그는 젊은이답지 않게 우리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은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단다.
그는 동양인 순례자들은 별로 없지만 유독 한국 순례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단다.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가져준 답례로 브라질에 대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망라해서 대화의 문을 열었다. 현직 대통령인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코로나를 감기 정도로 생각한다며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하다가 결국 코로나에 감염된 사실을 지적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정치인은 때때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기 때문에 존재 가치가 있다고 내 생각을 말했다. 그 청년은 자기 나라 대통령을 소재로 토크 쇼를 하지 않으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정치 얘기는 그만 두기로 하지. 대신에 15년 전에 상파울루를 거쳐 이구아수 폭포를 보며 느꼈던 감동을 표현했다.
이구아수 폭포는 지구상에서 가장 장엄하고 아름답다고 소감을 말하자 자기는 아직 이구아수 폭포를 구경하지 못한 채 스페인으로 왔고 사진으로만 보았단다. 내가 뻘쭘해졌다. 젊은 그는 동양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며, 결혼 전에 여건이 허락하면 중국의 실크로드를 일부라도 걸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코로나의 진원지라는 생각 때문에 당분간 중국여행을 기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중국여행으로 화제를 바꾸자 내심으로 환영해 마지않았다. 나는 3년 전에 30일간 실크로드를 여행한 경험담을 들려주자 나를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사람들은 두발 달린 동물은 사람 빼고, 네발 달린 건 책상 빼고는 다 먹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는 삼국지를 읽어보니 사람고기로 요리해서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도 그러냐며 치안상태는 괜찮은지를 물었다. 나는 브라질 보다는 훨씬 안전하다며 “No problem!”라고 대답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No problem”이라는 말을 한국말로 뭐라고 말하느냐고 묻는다. 쉽게 익히라고 “괜찮아요!”라는 말을 가르쳐 주었더니 그럼 How is your physical condition? 는 뭐라고 하지요? 한국말로 말해 보았자 오래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서 “괜찮아요?”의 인토네이션을 올려 말하면 된다고 했더니 너무 간단한 표현이라며 재미있어했다.
그는 순례길에서 우리 부부랑 마주치는 순간마다 “괜찮아요?”와 “괜찮아요!”를 반복하며 나에게 배운 한국말 한마디를 기억해 주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엄지 척하면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포르투갈어인 ‘이스 따봉’ 하면서 그에게 “You are the very good student! 추겨 세워 주었다. 그가 "엄마들은 늘 그렇게 말해요."라고 말해서 웃었다.
전설에 따르면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의 독실한 사제는 어느 날 밤, 그는 성모 마리아의 환상을 보았는데 그녀는 마을의 특정 장소에 가서 우물을 파라고 지시했다. 사제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지정된 위치에서 땅을 파보니 신선한 물이 나오는 샘을 발견했다. 우물은 특히 물이 귀했던 더운 여름철에 순례자들에게 필수적인 물 공급원이 되었다.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의 우물은 신앙과 환대의 상징으로 남아 있으며,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정신과 순례자들에게 제공되는 지원을 구현하고 있다.
‘테라딜로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는 템플라가 영향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테라딜로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에 사령부를 세웠다. 이 장소는 순례자들의 안전한 피난처이자 템플라가 순례 경로를 보호하는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했다.
템플라(기사단)가 14세기 초에 박해를 받아 해체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막대한 재산이 적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막대한 재산의 일부를 마을에 숨겼다. 금, 귀중한 유물, 성유물이 들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이 보물은 기사단의 가장 높은 계급의 구성원만이 아는 비밀 장소에 묻었다.
수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숨겨진 보물을 찾아다녔으며, 그 엄청난 가치와 기사단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매료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보물이 옛 기사단 사령부의 폐허 아래나 마을을 둘러싼 들판에 묻혀 있다고 믿었다. 이 보물을 찾으려는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보물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테라딜로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 순례길 테라디요스 템플라리오스 구역에서 아름다운 구름 쇼를 볼 수 있었다. 파란 하늘에 떠가는 다양한 떼구름은 IMX의 파노라마처럼 너무나 스펙터클 하다. 알베르게에 서둘러 체크인하고 가까운 언덕에 올라 떠가는 구름이 하늘에서 펼치는 쇼를 보면서 감탄했다.
구름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철들고 처음으로 느껴본 구름의 아름다움이다. 나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보다는 구름이 있는 하늘의 운치를 더 사랑한다. 새털구름이 벌써 사라졌다. 모든 구름은 바람에 따라 방향을 잡고 밀려가는 느낌이 든다.
순례자들의 미움받는 구름은 먹구름일 것이다. 비를 몰고 오기 때문이다. 다들 파란 하늘만 예찬하는데, 구름은 억울할 것 같다. 시시각각 다른 구름을 그저 있는 그대로 눈에 담고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기는 순간,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다.
소셜미디어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 실존하는 현재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다. 나를 둘러싼 불공정을 잊게 해주는 구름이다.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을 안겨주는 구름을 사랑한다.
아침 해뜨기 전 저녁 해진후의 구름도 아름답다. 일찍이 구름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들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도 '구름'이라는 작품을 남겼고,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바실리카 대성당 벽화를 보면 종종 미확인 비행물체(UFO)로 오인되던 렌즈구름을 남겼다.
독일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도 구름 예찬론자였다. 그는 독일의 대표적인 문학가이자 사상가로, 자연에 대한 깊은 관심과 감탄을 그의 작품 곳곳에서 표현했다. 특히 구름에 대한 괴테의 예찬은 그의 시와 에세이, 자연에 대한 단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단순히 자연 현상에 대한 묘사를 넘어, 그의 철학적 사유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그는 구름을 인간 감정의 변화무쌍함, 그리고 인생의 덧없음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소재로 글에서 잘 활용했다. 구름은 그에게 있어 무한한 변화를 거듭하는 자연의 신비이자, 일상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의 사고로 이끄는 매개체였다.
그는 구름을 통해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내면을 연결하려고 했다. 구름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발견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괴테의 구름에 대한 이러한 예찬은 그의 시 “Wandrers Nachtlied II(방랑자의 밤노래 II)”이나, 과학적 저서인 “색채론”에서 잘 드러난다. “Wandrers Nachtlied II”에서는 하늘과 구름, 자연의 고요함을 통해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묘사했으며, 인간이 자연 속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괴테의 구름 예찬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와 더불어 인간의 감정과 자연의 본질을 연결하는 철학적 성찰이 담겨 있는 주제로 다루고 있다.
구름에 관해 말하자면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는 작품 속에서 자연을 중요한 소재로 사용했으며, 구름도 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한다. 구름으로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구름의 변덕스러움과 인간의 감정을 연결 지어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구름에 대한 묘사 중 유명한 장면 중 하나는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에서 나온다. 여기서 베네딕이 클라우디오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구름은 빠르게 변하는 사랑의 감정을 상징한다. 그는 구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 마치 구름처럼 빠르게 변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인간 감정의 가변성과 복잡성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햄릿'(Hamlet)에서도 햄릿과 폴로니어스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구름의 모양이 계속 바뀌는 것을 포착해서 비아냥거린다. 햄릿이 폴로니어스를 조롱하며 그의 말을 따라 할 때 나타나는데, 이는 구름의 가변성을 통해 인간의 인식과 본질의 변화무쌍함을 빗대어 표현한다. 그는 구름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변화를 표현하면서, 구름이 가진 아름다움과 함께 그 속에 내포된 상징적 의미를 극 중에 끌어들였다. 셰익스피어의 구름 예찬은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름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감정, 그리고 삶의 변화를 깊이 있게 탐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대 중국 주나라에서 춘추시대까지의 시가를 모은 '시경'은 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며, 자연 현상과 감정, 사회적 상황을 연결하여 표현한다. "시경"에서 구름은 여러 번 등장하며,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시경에서 구름은 종종 왕권이나 군주의 덕을 상징하는 데 사용된다. 구름이 하늘에 가득 차서 비를 내리는 것은 군주의 덕이 백성들에게 널리 퍼져 그들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구절은 왕의 통치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구름과 연결된다. 구름은 비를 동반하는 자연 현상으로, 비는 곧 풍요와 결실을 의미한다. 구름이 비를 몰고 오므로 곡식을 자라게 하고, 풍년을 이루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시경에는 구름은 그 모양과 위치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 현상이나 인생의 변화를 상징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흐린 날씨나 구름으로 덮인 하늘은 시 속에서 종종 주인공의 슬픈 마음이나 걱정을 나타내는 배경으로 사용된다.
이태백은 “산중문답”(山中問答)이라는 시에서 그는 “자네가 어찌 세상사를 묻는가, 하얀 구름이 저절로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이라며 구름을 세속적인 일과 무관하게 떠도는 존재로 묘사한다. 그의 시 “장진주”(將進酒)에서는 "인생이란 떠도는 구름처럼 흘러가버리네"라는 구절은 구름을 덧없는 인생에 비유하고 있다. 요컨대, 이태백은 구름을 자유로움, 무상함, 그리움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시적 상징으로 활용했다. 이태백은 구름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삶의 철학적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시적으로 아름답게 묘사했다.
두보(杜甫)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등고”(登高)에서 가을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보고 자신의 외로운 감정을 비친다. 이 시에서 그는 "무한한 강물이 흐르고, 구름은 외롭게 떠 있다(无边落木萧萧下,不尽长江滚滚来)"고 묘사하며, 자연 속에서 느끼는 깊은 외로움과 인생의 무상함을 구름에 투영했다. 그의 시 “춘망” (春望)에서는 전란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보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구름은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과의 연결고리로, 그가 느끼는 고독과 그리움을 대변해 준다.
또한 그의 시 “강촌”(江村)에서는 "날이 저물어 구름이 돌아가니, 새들은 나무에 깃들고"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구름은 자연의 순환과 더불어 인생의 변화무쌍함을 나타낸다. 두보는 구름을 평온하고 조용한 자연의 일부로 묘사하여,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의 잠시나마 얻는 평안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렇듯이 구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 마음의 변화를 상징하는 문학적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