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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Oct 22. 2024

『산티아고 순례길 인문기행』
20.  고개 숙인 옥수수

        (제18일 차 / 모라티노스 ~ 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


♧ 오늘의 코스 


   오늘(10.12)은 모라티노스 (Moratinos)를 출발하여 ▷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San Nicolas del Real Camino) ▷ 사아 군(Sahagun) ▷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Bercianos del Real Camino)까지 총 20.km를 5시간 30분 동안 4만 5천3 백보를 걸어서 이동했다. 오늘은 거의 평지길이지만 그늘이 없어서 힘들었다. 


     

♧ 수도사 알바로의 기도 

  

   메마른 메세타 평원을 통과해서 출발지로부터 13.1km를 걸어서 카스티야 이 레온 주의 사아군(Sahagún)에 도착했다. 사아군이라는 이름이 우리말 같아서 낯설지 않다. 사아군은 프랑스 순례길 출발지인 생장피드포트에서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중간 지점으로 보고, 생장피드포트에서 사아군까지 걸었을 경우에도 증명서를 발급해 주고 있다. 

  

    사아군은 알폰스 6세 때 크게 발전했다. 그는 대수도원을 정치, 문화, 기독교의 중심지로 발전시키고자 하였으며, 클루니 수도회를 통해 로마의 보편적 전례를 도입하였다. 그는 1086년에 전례개혁과 함께 수도원과 도시에 자치권을 부여함으로써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사하군은 스페인 레온 지방에 위치한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의 중요한 마을 중 하나로, 종교적 및 역사적 유산이 풍부한 곳이다. 사하군은 특히 중세 기독교 수도원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산 후안 데 사아군 성당은 산 후안 데 사아군의 부모가 살던 저택 위에 지은 17세기의 신고전주의 양식의 성당으로 내부에는 사아군의 수호성인인 산 후안 데 사아군의 성당이 있다.  산 띠르소 성당 12세기에 지은 성당으로 사각형 탑은 사아군의 무데하르 양식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이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16~18세기에 다시 지은 것이다. 


    (좌)  산 후안 데 사아군 성당  (우)  산 띠르소 성당


이 마을과 관련된 여러 전설에 의하면 "성 알바로의 전설"이다. 옛날, 사하군에는 알바로(Alvaro)라는 신실한 수도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으며, 그의 신앙과 헌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알바로는 병든 사람들을 돌보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마을의 영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어느 날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사하군에 도착했다. 그들은 매우 지쳐 있었고, 그중 한 명은 심각한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순례자들은 알바로에게 도움을 청했고, 알바로는 기도와 신앙을 통해 그들을 돌보았다. 


그는 병든 순례자를 데리고 성당으로 가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순례자를 위해 신의 자비를 간청하며, 그의 병이 치유되도록 기원했다. 그의 기도가 끝나자, 기적이 일어났다. 병든 순례자는 갑자기 기력을 회복하고, 건강을 되찾았다.  이 기적은 순례자들과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큰 경이로움을 주었고, 알바로의 신앙과 헌신이 신의 축복을 받았음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이후, 성 알바로의 기적적인 치유 이야기는 사하군을 넘어 순례길을 따라 퍼져 나갔다. 많은 순례자들이 알바로의 기적을 기리기 위해 사하군을 방문하게 되었다. 


 ♧ 옥수수 밭을 지나며 


   순례 길에서 만났던 외국인 친구들이 레온까지 택시로 점프한다고 알베르게 앞에서 동지들을 구하고 있었다. 여기서 택시로 레온까지 점프를 하면 이틀거리를 한 시간 이내로 이동할 수 있단다. 나이가 많아 기력이 약해 보이는지 나를 꾀려 들었다. 내가 의연하고 박절하게 대답했다. 


“내 사전에는 점프란 없다. 나는 걸어서 레온을 거쳐서 콤포스텔라까지 완주할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성공하라는 덕담의 악수를 나누고 바이바이 했다. 


   10시에 아침 식사로 식당에서 라면을 다소 비싸게 5.5€를 지불하였다. 한국 순례자들이 많은 탓이려니 했지만 유럽 사람들도 라면을 즐겨 먹는 것 같았다. 아침 식사를 햇반으로 할 마음을 먹었는데 품절이라 내 생각은 박살이 났다. 순례길은 로마 군단이 오갔다는 도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상당수 작은 마을들은 거의 죽은 마을, 아니 유령도시 같았다. 우리 농촌과 다를 바 없이 인구 절벽에 몰려 있는 외양이다. 주민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마을에서 순례자들이 주민 행세를 한다. 그들은 자기 동네처럼 낄낄대거나 왁자지껄 떠들면서 마을을 통과했다. 


   순례 길에는 옥수수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직도 말라비틀어진 갈색 옥수수 대에 매달린 옥수수들이 많았다. 옥수수는 나무인가? 풀인가? 윤선도의 오우가에서 대나무를 옥수수로 패러디해 본다. 


옥수수 밭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꽉 차 있는가?

저러고도 3 계절만 살다 가노니 그것을 설워하노라.


수염 달린 옥수수 머리가 땅 쪽으로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처럼 처참하게 보였다. 이런 풍경은 예전에 보지 못한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순례길 주변에 옥수수 농장에서 트랙터가 왔다 갔다 하면서 추수를 하고 있었다. 


옥수수 수확을 농민이 수작업으로 하는 게 아니라 트랙터가 일처리를 전담하고 있었다. 넓은 들판에서 생산된 옥수수를 실어 가는 트럭의 기사들은 운전석에 앉아서 휴대폰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다. 옥수수 알을 털어서 자루에 담아 대기 중인 트럭에 싣고 광야를 떠났다. 


옥수수 알을 재료로 해서 빵이나 뻥튀기, 팝콘 등으로 변신하여 우리를 다시 찾아오리라. 기억의 창고에서 옥수수에 대한 추억을 꺼내 본다. 나는 면 지역에 살면서 읍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나를 부당하게도 극빈자로 분류되어 남도 말로 ‘강냉이 죽’이나 ‘옥수수 빵’과 주먹밥을 급식으로 학교에서 얻어먹었다. 


부잣집 애들은 고소한 옥수수 빵이 먹고 싶었던지 자기 도시락과 내 빵을 바꿔먹자는 애도  있었다. 어머니는 옥수수 뻥튀기를 만들어 오셔서 간식으로 우리 3형제들에게 나눠주셨다.  장성해서 연애시절에는 애인과 팝콘을 군것질을 하며 명동 바닥을 훑고 다녔다. 


   후르시초프가 옥수수 정책 실패로 물러났다. 1950년 무렵, 미국을 방문했던 그는 무르익은 황금빛 옥수수가 물결치는 아이오아의 가을 들판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고 ‘바로 저것이다'라고 쾌재를 불렸다. 소련의 광대한 시베리아 땅에 옥수수를 심어 잘 익은 것은 식량으로 쓰고, 덜 익은 것은 사료로 사용하여 목축업을 


려시키면 우유와 고기문제를 일석이조일 거라 판단했다. 그는 귀국과 동시에 대대적인 옥수수 경작운동을 전개했다. 개간지는 물론이고 기존의 경작지에도 옥수수 재배를 독려하는 한편, 옥수수 연구소를 설립했고 기관지 “쿠쿠루자(옥수수)”를 발간케 하였다. 


옥수수는 갑자기 '들판의 여왕'으로 국영농장과 집단농장마다 군림하였으며 기세가 등등해진 후르시초프는 2∼3년 내에 육류와 우유, 버터 생산이 미국을 능가하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기후조건과 토양의 차이를 무시한 옥수수 경작지 확대 때문에 다른 작물들의 순환재배와 목초생산의 격감을 초래하였다. 


1963년에는 금괴를 팔아 국제곡물시장에서 곡물을 구매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참담한 결과로 끝났다. 후르시초프를 썰어 소시지를 만들자는 화난 민중들의 구호가 난무하는 가운데 마침내 그는 1964년 10월 실각하여, 평범한 연금생활자로 전락하여 일생을 마쳤다(서현섭, 모스크바 1200일, 237-238). 


  옥수수는 아직도 변함없이 군것질거리로 많이 소비되고 있다. 해마다 철마다 강원도 출신 며느리 친정에서 보내준 옥수수를 잘 얻어먹고 있다. 옥수수를 생채로 냉동고에 넣어 보관했다가 꺼내서 비 계절에 삶아 먹으면 더 맛이 있다. 


   며느리를 도시에서 서울서 맞아들인 친구들은 그런 고소한 맛을 모를 거다. 옥수수를 먹고 싶으면 돈 내고 사 먹으면 되지만 내게 거지 근성이 잠재되어 있는지 몰라도 사돈댁에서 보내온 옥수수가 더 맛있다. 사돈댁과는 일 년 내내 전화 한 통 없다가 옥수수를 받으면 고맙다는 전화라도 하게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옥수수는 사돈과 마음을 연결하는 촉매가 된 지 오래다.


♣ 코엘료의 순례자”는 공상소설인가?


    숙소에서 비가 와서 밖으로 나가지 못해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를 마지막까지 다 읽었다. "순례자"는 주인공 파울로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걷는 여정을 통해 영적 성장과 자기 발견을 하려는 이야기이다. 


   카미노 프랑세스의 출발점인 생장피드포르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길을 걷는 목적을 1) 종교적 이유 2) 영적인 이유(나를 찾는다) 3) 문화적 이유, 4) 스포츠, 5) 기타로 나누어 묻는데 주인공 파울로에게 물었다면 당연히 2) 영적인 이유를 고를 것이다.  파울로는 기사단의 비밀 의식을 실패한 후, 잃어버린 검을 되찾기 위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떠난다. 이 검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파울로가 다시 자신을 인정받고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찾아야 하는 상징적인 물건이다. 


   파울로는 '람'이라는 기독교 단체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마스터에 오르기 직전의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마스터로 임명받으려는 찰나, 마스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검을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이 검을 손에 넣기 위해서 안내자인 페투루스와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르는 순례길에서 검을 찾아 나섰다. 안내자 페트루스는 이 여정에서 파울로를 인도하며, 영적 훈련방법인 ① 씨앗훈련 ② 속도훈련 ③ 잔인성의 훈련 ④ 사자(使者)의 의식 ⑤ 직관을 깨어나게 하기 ⑥ 푸른 천체 의식 ⑦ 산채로 매장당하는 훈련 ⑧ 람 호흡법 ⑨ 그림자 훈련  ⑩ 듣기 훈련을 실시한다. 그는 파울로가 일상적인 사건 속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자신과 주변 세상에 대해 더 큰 이해를 얻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파울로는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고, 자신의 영적 성장을 도모한다.


   순례길에서 파울로는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며,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한다. 그는 내면의 두려움, 의심, 욕망 등과 마주하면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 자신이 찾고 있던 검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파울로가 진정한 영적 자유를 얻는 순간을 의미한다. 소설 ‘순례자’에는 '선한 싸움'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선한 싸움'이란 인생에서 자신이 믿는 가치와 목표를 위해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외부의 적이나 장애물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자라고 있거나 터를 잡고 있는 두려움, 의심, 나태함과 같은 내적 장애물과 싸우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선한 싸움'을 각자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 싸움은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다. 이러한 싸움을 통해 인간은 내적으로 성장하며,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파울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다양한 어려움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선한 싸움"을 경험한다. 결국, ‘순례자’는 독자들에게 영적 성장의 중요성과 자기 발견의 의미를 일깨우는 철학적인 여정을 그리고 있다. 


   ‘파울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며, 독자들 또한 이 여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내면의 진리를 찾을 수 있는 영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순례자’의 독자는 이 소설의 내용들이 실제 상황인 건지 아니면 픽션인지, 첫 장부터 끝장까지 긴장감과 몽롱함 속에서 헤매게 했다. 페트루스의 존재도 파울로의 경험도, 그들이 만났던 ‘집시’와 악마인 ‘개’도 현실을 초월하고 있다.  책 속에서 산티아고의 길은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며, 비범한 삶도 언제나 평범한 사람의 길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21. 신은 사랑이다.” https://brunch.co.kr/@96e291d8614c4ec/75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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