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일 차 / 뽀르또마린~팔라스 데 레이)
오늘(10. 25) 코스는 포르토마린(Portomarin)을 출발하여 ▷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까지 24.8km를 7시간 동안 4만 보를 걸었다. 순례길은 오스피탈 데 라 크루스까지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2차선 차도의 좌우로 걸어가게 순례길이 나있는데 때때로 도로 옆 순례길이 없어지면 차도가 순례길을 대신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에 신경을 써야 했다.
아침 9시에 숙소를 떠났다. 도중에 마드리드에서 수학여행을 온 고등학생 백여 명과 행진을 함께 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스페인 젊은 청년들의 발랄함이 넘쳐서 부럽다. 인솔교사에 의하면 그들은 오세이브로에서 출발하여 콤포스텔라까지 130여 km를 걸으면서 중간중간에 역사적인 사건과 유적에 대한 설명을 자원봉사자로부터 들으며 걷는다고 한다.
하지만 빗줄기가 오락가락하여 비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대 여섯 번 하다가 10km쯤부터는 날씨와 상관없이 비옷을 입은 채로 행진하기로 했다.
반복되는 일상 같지만 순례길의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 어제와 오늘의 목적지가 다르기 때문에 어제와 오늘은 가는 길목이 전혀 다르다. 어제 만난 이웃은 오늘 만난 이웃과 다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기에 사실상 각자에게는 모든 것이 다르다. 비가 오는 날의 저녁에 만난 도시, 코스가 합쳐지는 도시, 축제가 있는 마을이라지만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없다.
함께 가면 바로 갈 수 있으므로 멀리 갈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는 나에게 희망을 준 사람들과 함께 걷고 싶다. 순례길 좌우로 펼쳐지는 포도밭과 올리브 농장은 수확을 남겨두고 있지만 벌써 수확을 끝낸 밀밭에서는 이듬해 농사를 위해서 트랙터로 거름을 주고 있었다.
목장의 축사에서 나온 거름을 밀밭에 펼쳐 깔고 있었기 때문에 악취가 심하게 났다. 고약하기 짝이 없다. 순례자들은 하나같이 코를 막고 걷거나 마스크를 쓰고 걷는다. 한 시간 이상을 걸었어도 “농촌의 향기”가 먼저 와 있었다.
농장에서 날아온 썩은 분뇨 냄새는 평생 동안 경험한 악취 중에서 최악이었다. 대학 때 데모하면서 경험했던 체류탄 세례보다 훨씬 견디기 힘들었다. 널따란 평야의 손금처럼 나있는 가리비 노랑길 표시만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순례자들은 악취를 피해갈 길이 없어서 슬프다.
발걸음을 최대한 빠르게 해서 냄새나는 구역을 벗어나고 싶어도 광활한 평야에는 지형지물이 없어서 악취의 확산을 방지할 수 없고 바람은 확산의 속도를 더 빠르게 해줄 뿐이다. 내 마스크는 어디에다 두었던가? 배낭과 함께 차타고 가버린 마스크를 찾아 본들 무슨 소용인가?
가는 길목의 공터에 만들어진 노천극장식 강의장에서 마드리드에서 온 고등학생들이 현장에 관련된 역사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이 기특하다.
오늘도 순례길에서 강도나 도둑이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쇠똥이나 악취가 무서운 대상이었다. 점심을 변변치 않게 먹고 20km가량 걷었더니 허기가 졌다.
군것질거리가 생각났다. 며칠 전에 길을 가다가 주워 배낭에 넣어둔 밤톨이었다. 하나둘 까먹으며 걸었더니 허기와 피곤이 한결 풀렸다. 오늘 목표 마을인 ‘팔라스 데 레이’ 숙소에 도착하기 직전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나는 순례자 메뉴에 소고기 갈비를 아내는 샐러드와 새우볶음 요리를 시켜서 섞어먹었다. 아내의 아이디어라서 전례없는 진수성찬이다.
오스피탈 데라 크루스(Hospital de la Cruz)는 '십자가 병원'이라는 의미란다. 옛날 순례자들이 질병이나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찾고 머무르던 시설이다. 이곳을 방문한 순례자들 중 일부는 기적적으로 치유되는데 이는 이 마을의 성스러운 분위기와 순례자들 간의 연대감이 이러한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순례자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성 야고보가 나타나 도움을 주거나, 마을 주민들이 순례자들을 보호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순례자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며 성 야고보의 축복을 기원하였다.
오스피탈 데라 크루스에 있는 십자가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만지거나 기도하는 순례자들이 기적을 선물 받았다. 어떤 이들은 이 십자가 앞에서 기도한 후 어려움에서 벗어나거나, 병이 낫는 등의 기적을 경험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에이렉세를 지나는 순례자들 중 일부는 성 야고보의 환영을 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밤이나 이른 새벽에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성 야고보의 환영을 보고 용기와 희망을 얻기도 했다. 야보고는 순례자들에게 올바른 길을 안내하거나, 피로를 잊게 하는 힘을 주었다.
이 마을에서 어려움에 처한 순례자들이 성 야고보에게 기도하면 문제를 기적적으로 해결하거나, 건강을 회복했다고 전한다. 또한, 이 마을 근처에 있는 신비로운 샘물은 특별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순례자들이 이 샘물을 마시면 피로가 풀리고, 몸을 씻으면 질병이 낫는다고 전한다.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는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길에 위치한 중요한 마을 중 하나로, 오랜 역사와 함께 대표적인 3개의 전설과 기적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첫째, 팔라스 데 레이의 이름은 "왕의 궁전"을 의미하므로, 이곳에는 과거에 왕의 궁전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마을에는 갈리시아의 왕이 거주하던 화려한 궁전이 있었기에, 이곳에서 많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둘째, 팔라스 데 레이를 지나는 순례자들 중 일부는 피로에 지쳤을 때 성 야고보가 나타나 그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셋째, 성 에우페미아는 순교자로, 환자들이 그녀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로 인해 많은 순례자들이 '팔라스 데 레이'를 지나며 성 에우페미아에게 기도하고 축복을 받으려고 이곳을 방문한다고 한다.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유학 중이라는 청년 순례자로부터 이슬람교의 교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에 대한 질문 했더니 그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슬람교는 교파는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는데, 이 두 교파 간의 분쟁은 역사적, 신학적, 정치적 이유에서 발생하며, 오늘날까지도 중동 및 그 외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예언자 무함마드가 632년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칼리프)를 둘러싼 의견 차이에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친구이자 장인이었던 아부 바크르가 첫 번째 칼리프로 선출된 것을 지지했다.
반면에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가 정당한 후계자라고 생각했다. 시아파는 후계자가 무함마드의 혈통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니파는 이슬람교의 전통(순나)에 중점을 두며, 무함마드의 생활 방식과 가르침을 따른다.
이들은 무함마드의 동료들과 초기 칼리프(최고 종교권위자)들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긴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가족, 특히 알리와 그의 후손들인 이맘들의 권위를 강조하면서 ‘이맘’이 신의 명령을 받는 신성한 지도자라고 믿는다.
이슬람 세계의 정치적 권력을 둘러싼 갈등은 종종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란(시아파)과 사우디아라비아(수니파) 간의 경쟁은 중동 지역의 여러 분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라크, 시리아, 예멘 등 여러 국가에서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은 정치적, 종파적 분쟁으로 확대되었다. 이들 국가에서는 정부의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이 종파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중세 이전, 711년에 우마이야 왕조의 무슬림 군대가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하여 알안달루스를 세웠다. 이 군대는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족과 아랍인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슬람의 주요 교파인 수니파에 속해 있었다.
우마이야 왕조는 수니파 이슬람의 지도자로, 알안달루스에서도 수니파 이슬람을 중심으로 한 정치, 사회, 문화 체제를 구축했다. 이후 알안달루스에서는 다양한 이슬람 교파와 종파들이 존재했지만, 수니파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나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화해 가능성을 물었다. 그가 대답하기를 어려운 과제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선문답을 해서 내가 그에게 말했다.
" 아랍인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은 것 같다."
그는 진지하게 대답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현재는 다투고 있지만 공통된 가치를 많이 공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공통점을 바탕으로 화해와 협력을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면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 것이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의) 질문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하고,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차동엽 신부는 이 문제는 역사성 안에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 기업에 의한 노동 착취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전태일 씨 등은 하루 15시간 이상 노동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모든 기업주가 착취자라고 하면 곤란하다. 좋은 기업인도 있고, 나쁜 기업인도 있기 때문이다. 그건 개별적 사안으로 봐야 한다. 교회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교회가 자본주의 체제의 부작용이나 폐해에 관심을 갖는 건 맞다. 거기에 약자와 소외된 자가 있기 때문이다(질문 23에 대한 답변).
이와 관련하여 김안제 교수는 천주교와 불교는 공산주의를 배척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는 부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공존하면서 정신을 주고, 물질을 얻는 상생관계로 맺어져 있다고 보았다. 이들 종교는 사랑과 평등과 화합의 원리를 살려 자본주의가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충고하고 격려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부연했다(김안제: 756). 개신교 신자인 이어령 교수는 <질문 23>이 가톨릭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자기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천주교 내에서 일부 단체나 신념은 자본주의 체제와 그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비판하고, 기업주와 근로자 간의 불공정한 관계의 청산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사회 교리를 통해 사회적 정의, 인권,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교리는 신자들이 사회에서 정의롭고 윤리적인 행동을 하도록 권장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일부 단체나 신자들은 기업주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근로자의 노동력을 불공정하게 이용하는 경향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들은 기업이 부를 축적하는 반면, 근로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일부 가톨릭 단체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모델을 지지한다. 이들은 근로자와 기업주가 더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경쟁과 이윤 추구가 과도하게 강조될 경우,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연대가 훼손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자본주의의 미덕과 체제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가 야기하는 부작용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며 개선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가톨릭교는 사회적 연대와 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기업주와 근로자 간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
요컨대, 천주교 내 일부 단체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근로자의 권리를 옹호하는데 초점은 경제적 불평등 문제와 사회적 정의의 관점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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