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일 차 / 사리아~포르또마린)
오늘(10. 24) 코스는 사리아(Sarria)를 출발하여 ▷ 포르토마린(Portomarin)까지 22.9km를 6시간 걸렸고, 3만 9 천보를 걸었다. 처음 오르막길을 빼면 전체적으로는 평이한 길이다. 사리아 성당을 지나서 직진으로 가면 순례자의 길이다. 도시를 벗어날 때 새벽 7시라서 어둠을 덜 걷어낸 터라 길을 잃을 뻔했다.
아침 9시에 사리아 성당에 들러서 여권에 ‘세요’를 찍고 10여 분간 내부를 탐방했다. 최종목적지까지 3일밖에 남지 않았기에 다 왔다는 안도감을 느끼지만, 앞으로도 3일이나 더 걸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지 않았다.. 군대 말년 병장의 일주일처럼 제대 날짜를 꼽으며 걷는다.
길목에 아름드리 고목들이 즐비하다. 누가 언제 심었는지 알 수 없는 나무들이 순례자들을 엄호하며 웅크리고 서 있었다. 곳곳에 펼쳐지는 목초지 경계에 돌들로 담을 쌓아 놓아 제주 올레길을 연상하게 한다. 그 모양새는 사뭇 다르지만.
제주는 화산석인데 이곳의 돌들은 우리나라 산야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돌덩어리를 모아 경계를 만들고 있었다. 곳곳에 포플러 방풍림도 보였다. 오늘은 날씨가 좋기를 기도했지만 한 때 비를 예고했다. 한두 방울 내리다가 멈추기를 수차례. 이슬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 때문에 비옷을 벗을 수 없어 답답했다.
태양이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밀다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숨바꼭질을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순례길 대부분이 목장을 지나가므로 축사에서 나오는 악취가 장난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교수와 나는 걷는 동안 피차 생애동안 경험했던 에피소드를 경청하며 걸었다.
순례길에서 전직 전남대 병원 C박사는 이비인후과 교수라는데 감기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기침을 콜록거렸다. 안식년을 맞아 순례길을 걷는다는 제주대학의 M교수로부터 길거리 카페에서 포도주 한 잔을 얻어마시며 자유여행의 경험을 나누었다. C박사는 남미여행에 대하여, H교수는 유럽에 대하여, M교수는 지중해에 대하여 나는 중국 자유여행에 대한 경험담을 주고 받으며 걸었다.
중세 시대에 한 순례자가 산티아고 순례 모르가데를 지나던 중 매우 지치고 목이 말랐다. 순례자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우물을 찾았지만, 우물은 물이 마른 상태였다. 순례자는 절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를 드리던 중, 그는 성 야고보의 모습을 꿈속에서 만났다. 성 야고보가 그에게 우물을 깨끗한 물로 가득 채우는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
순례자가 일어나 우물을 다시 살펴보았더니, 신기하게도 우물에 물이 가득 차 있었고, 맑고 시원했다. 이 기적은 순례자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었고, 마을 주민들은 깊이 감동했다. 이 기적을 계기로 모르가데는 성 야고보의 신성한 지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어느덧 오늘의 목적지 포르토마린 인근에 도착했다. 마을로 다가가려면 긴 다리로 강을 건너가야 했다. 미노강에 댐을 쌓았기 때문에 중세 도시는 수몰되자 마을은 강 건너 산 중턱으로 이주했다. 우리나라 충북 단양읍이 충주댐으로 수몰되매 산중턱에 마을 옮긴 것과 비슷한 사례 같았다.
포르토마린 마을로 올라가는 아치 다리가 매우 가파르다. 순례길 어디를 가나 만나면 전혀 반갑지 않은 시설이 오르막 계단길이다. 막바지에 나타난 급경사의 계단은 우리를 끝까지 힘겹게 만들었다. 계단 끝에서 미노강을 바라보니 발아래 멀리 댐이 보이고 댐에 강물이 많지 않았지만 푸르름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중세 시대에 포르토마린에 큰 홍수가 발생하여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이 홍수로 인해 마을 주민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고, 성당을 비롯한 중요한 건물들이 물에 잠겼다. 마을 사람들이 절망하는 가운데, 그들은 성 야고보에게 기적을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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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의 작은 교회에서 성 야고보에게 간절히 기도를 하자, 그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기적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 보니 홍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마을이 다시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주민들은 이 기적을 성 야고보의 은총으로 여겼고, 포르토마린은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게 되었다.
포르토마린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M교수, J교수, H교수와 함께 포도주 시음잔치를 벌였다. M교수는 리오하에서 사 온 값비싼 포도주로 순례자의 목구멍에 끼어 있던 먼지를 말끔히 청소해 주었다. M교수에 따르면 포도주 하면 프랑스 와인이 우위를 차지하지만 값이 비싼 반면에, 스페인 와인은 상대적으로 값이 싸고 브랜드화가 덜 되어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 주변에서 생산된 포도로 생산된 와인의 대강을 설명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마시려면 가장 먼저 지나가는 나바라 (Navarra) 지역은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지만 특히 로사도(로제) 와인은 일반적으로 신선하고 과일향이 풍부하여 밝은 핑크색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가진 스페인 와인에 대한 지식은 끝이 없었다. 라 리오하 (La Rioja) 지방은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생산지 중 하나인데, 여기서 생산되는 템프라니요 포도는 풍부한 과일 향과 부드러운 탄닌이 특징이란다. 이 포도로 빚어지는 포도주는 로그로뇨 (Logroño)에서 와이너리를 방문하여 시음했다고 자랑했다.
리베라 델 두에로 (Ribera del Duero)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은 높은 고도와 온화한 기후 덕분에 강렬한 레드 와인을 생산한다. 로블레 와인은 짧은 기간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된 것이다. 비에르소 (Bierzo) 지역에서 생산된 멘시아 포도는 적당한 산미와 신선한 과일 맛이 특징이다. 이를 재료로 빚은 와인은 비교적 가볍고 향이 풍부하다. 이 와인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Villafranca del Bierzo)에서 즐길 수 있다. 갈리시아 (Galicia) 지역에는 청량한 화이트 와인은 알바리뇨(Albariño)와 고데요(Godello) 품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알바리뇨는 상쾌하고 과일 향이 강하며, 고데요는 조금 더 풍부하고 복합적인 맛을 자랑한다지만 시음은 하지 못했다. 이들 와인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에 가서 함께 맛보기로 약속했다. 콤포스텔라에서 스페인 북부지역의 모든 와인을 다 마실 수 있다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의) 질문 22. 신부는 어떤 사람인데 왜 독신인가? 수녀는 어떤 사람인데 왜 독신인가?
차동엽 신부는 '신부란 예수님을 대리해 양 떼들 돌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 양 떼로 보았지만 1965년 이후에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양 떼로 보고 돌보고 있다. '수도원 소속인 수녀와 수사는 다 수도사다. 그들은 자신을 전적으로 투신해 영혼의 갈무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신부와 수녀의 독신은 '나는 여기에만 헌신합니다'라는 서원(誓願)이다(질문 22에 대한 답변)
김안제 교수는 신부와 수녀는 어린양 떼를 돌보는 목자이므로 양 떼처럼 풀이나 뜯어먹고 서로 다투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가정을 돌보고 자녀를 키우며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일반인과는 달리 숭고하고 깨끗하며 탈속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양 떼를 제대로 보살 필 수 있기 때문에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 불교의 스님도 같은 이치로 독신이라고 설명한다(김안제: 756).
개신교 신자인 이어령 교수는 <질문 22>에 대해서는 자기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신부의 독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델로 한 것으로, 그가 결혼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 예를 따른 교회의 결정이다. 신부들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고, 성체성사와 같은 신성한 의식을 집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신부는 독신 생활을 하면서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신자들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수녀도 하나님과 교회에 헌신하는 삶을 선택한 인생이다. 독신 생활은 그들이 기도와 봉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며, 하나님께서 내리신 사명을 실천하는 데 전념하기 위함이다. 많은 수녀들은 교육, 의료, 자선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수녀들은 "하느님과의 결혼"을 통해 영적으로 헌신한다고 믿는다. 이는 그들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맺으며, 세속적인 관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결단을 의미한다.
요컨대, 신부와 수녀의 독신 생활은 그들의 신앙적 헌신과 사명을 실천한다. 그들의 독신은 개인적인 선택이자 신앙적인 소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고,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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