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주체

욕망과 알고리즘

by Hyun Lee

우리는 이제 인간이 아닌 것과 대화를 나누는 시대에 살고 있다. 라캉이 인간을 말하는 존재(parlêre)라고 정의한 이유는 결국 인간의 무의식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관계는 언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성형 AI, 챗봇, 추천 알고리즘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언어적·정동적 환경을 구성하는 하나의 ‘타자’처럼 기능한다.


분석적 장면에서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은 타자의 말과 응답이며, 주체는 그 말의 틈에서 자신의 무의식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언어적 응답을 산출하는 AI와의 상호작용은 인간의 무의식 구조에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가? 그리고 라캉이 말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명제가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가?


말을 주고받는 작용, 즉 담화는 단순한 정보 교환을 넘어, 욕망의 장을 형성한다. 담화 속 욕망은 크게 3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선 말하는 나에 대한 욕망이 있을 것이다. 주체는 자신의 말이 어떻게 들릴지, 그 말이 자신을 어떻게 ‘보여줄지’를 신경 쓴다. 두 번째는 상대(청자)에 대한 욕망이 있을 것이다. 청자가 나의 말을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 것인지에 대한 기대, 즉 안다고 가정된 주체로서 자리 잡는다. 더 나아가 세 번째는 상대가 나에게 갖기를 바라는 기대, 라캉 식으로 말하면, 타자의 욕망에 대한 욕망이 있을 것이다. 주체는 상대방이 “내 말을 알아주기를”, “나를 판단하지 않기를”, “빠르게 답변을 주기를” 바라는 무의식적 요청을 한다.


우리는 AI에게 단순한 정보를 구하는 것이 이상을 원할 때가 있다. 요즘 힘들 때 AI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도 많아졌다. 인간은 기계임을 알면서도 그것에게 말을 걸고 위로받고자 한다. 이는 AI가 단순한 검색 엔진이 아닌, 나의 말에 응답하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구조 자체를 욕망한다.


AI는 감정도 욕망도 없지만, 인간은 그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반사(反射) 해내는 거울을 본다. 즉, AI는 욕망하지 않지만, 주체는 그 무욕(無慾)을 욕망한다.


더불어 AI에게는 신체적 차원으로서의 주이상스, 즉 향유의 차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때로 주체가 마치 그것이 응답의 너머에 무엇인가를 ‘원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무의식이 발화의 빈틈을 욕망의 자리로 채우기 때문이다. 분석가가 침묵할 때, 환자는 그 침묵 뒤에서 다양한 해석을 구성하며 스스로의 욕망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AI의 비인격적 응답에서도 주체는 자신의 무의식적 환상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렇다면 AI와의 대화는 인간과의 대화와 일치할까? AI의 언어는 데이터의 빈도와 확률에 의해 작동한다. 그럼에도 AI와 상호작용하는 인간은 점점 자신이 남긴 데이터 흔적을 따라 구성되는 하나의 새로운 정체성—‘데이터-주체’와 마주하게 된다. 검색 기록, 추천 알고리즘, 관심사, 감정적 패턴 등은 주체의 무의식을 부분적으로 ‘예측 가능하게’ 만들며, 욕망을 구조적으로 편향시킨다. 즉 욕망의 알고리즘화이다.


욕망은 원래 결여에서 발생하지만, 알고리즘은 주체의 결핍을 ‘채워주려는 듯한’ 폐쇄 회로를 형성한다. 어쩌면 오늘날의 주체는 욕망하는 주체가 아니라 욕망을 소비하는 주체로 변형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AI 상담 속에서 분석 주체는 감정적 부담감이 적고, 즉각적인 응답 속에서 만족한다. 이 모든 요소는 전통적 분석 장면에서의 ‘불안’을 제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AI에게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하고, 더 깊은 내용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이 있다. AI는 주체의 말에 ‘구멍’을 만들지 않는다. 무의식이 등장하는 지점은 언제나 이해의 파열, 오해, 침묵, 중단과 같은 균열 속이다. AI는 이 균열을 즉각적인 응답으로 봉합한다. 즉 AI는 주체를 위해 ‘위험 없는 상징계’를 구성하며, 주체의 무의식이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재배치시킨다. 그것이 Open AI나 google의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재배치되고 있는지 아닌지는 지금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빅테크 기업들이 이를 상업적으로 극대화된 예측 가능성과 통제 가능한 욕망 구조를 만드는 데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이때 주체는 자신의 욕망이 스스로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선호의 지도” 위에서 반복적으로 동일한 선택을 재생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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