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해결
사실 인간 사회의 차별은 한편으로 완화되고 있기도 하다. 노동을 강요당하고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던 노예제도는 1862년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노예제도 폐지 선언을 시작으로 지금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며, 피부색에 기초한 인종차별 또한 아직 만연해있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 추세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최근 들어 밈(Meme)처럼 번지고 있는 영상들을 보면 흑인을 속되게 부르는 니거(Nigger)를 농담 삼아 주고받는 문화를 볼 수 있다. 흑인들이 차별받던 기존의 악습을 철폐하는 차원에서 절대적으로 금기시되던 단어가 이제는 흑인들 스스로도 자조적인 개그로 활용되는 추세가 되었다. 이는 흑인들이 인종차별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차별이 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여전히 차별에 신음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근절이 필요하다. 통상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법과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차별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못 박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차별이 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들은 이를 옳지 못한 행위로 인식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통과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아직 포용적인 사회가 아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만 뒤집어 말하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즉, 우리 사회가 점점 더 포용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합리적인지 여부를 떠나 한국 사회가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법과 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면 되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이타심.
아무리 법과 제도가 잘 정비가 되어도 결국 차별은 혐오라는 감정으로부터 잉태하는 것이기에 개개인의 인식을 뜯어고쳐야 한다. 더불어 법과 제도가 세워지고 정비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 차별을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해야 법과 제도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와 같은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차원에서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관용의 정신이 중요하다. 관용(Tolerance)이란, 남의 잘못 따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것을 뜻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다른 의견 및 행동 등을 허용한다는 뜻을 갖는다. 앞서 다루었듯이 차별은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 형태를 일컫는다. 즉, 자신과 다른 집단을 인정하지 않고 이들을 통제하고 멸시하는 형태를 차별이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 관용이 필요하다.
서로 다름을 인정할 때 우리는 차별에 기인한 사회 갈등을 해결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재능들이 모여 기술을 발전시키고 생산적이고 건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