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하면 정신이 또렷해지고 만다.
침묵만이 어둠을 가르고 배회할 적마다 자꾸만 조각조각의 단어와 문장이 떠오른다. 들었던 말, 느꼈던 감정, 그것을 정확히 짚어내는 표현과 단어. 흩어지기 전에 휴대폰을 꺼내 들고 메모장을 켜지만, 막상 불쑥 떠오른 그것을 끼워 넣을 단락을 만들다 보면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 몸속을 휘감던 전율은 조금씩 사그라든다.
마음에 들었던 표현을 딱 맞는 곳에 넣어 보일 생각에 머릿속이 술렁거린다. 그러나 기대가 커질수록 글이 아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처음의 짜릿했던 스케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 나왔을 때, 씁쓸한 맛이 나는 슬픔을 느낀다. 소리 없는 한숨으로 아픈 곳을 잠재우고서, 모로 누워 다시 생각을 쓰다듬는다.
감정이 격렬하게 요동칠 때, 글은 살아난다. 실제로 굵은 눈물을 뚝뚝 떨궈 가며 쓴 글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보아도 놀랄 만큼 생생하게 감정이 살아 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몰입해야 한다. 느꼈던 감정 속에 머리끝까지 푹 절여져야만 생동감이 넘치는 글을 쓸 수 있다.
그저, 쓰고 싶었던 문장을 쓰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만들어낸 자투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