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짐을 새까만 차에서 꺼내었다. 바윗덩이를 얹은 듯 묵직한 폴딩카트의 손잡이를 잡고, 석 달을 지낼 방에 몸을 들였다.
바닥과 책상을 꼼꼼하게 닦아내고, 분주하게 손을 놀려 이불과 베개를 풀고, 시트에 깔 이불을 펼치고, 그 위에 두꺼운 털로 덮인 겨울 이불을 덮어 두었다. 화장실에는 세면용품이 담긴 바구니와 고무 슬리퍼를 가지런히 놓아두고, 반창고와 약이 담긴 지퍼백은 책상 밑 낡은 서랍에 넣어두었다. 휴일 동안 먹을 즉석식품들을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수건과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나니 간신히 살 만한 곳이 되었다.
하늘 속에서는 이제 따뜻한 봄 햇살이 막 돋아나기 시작했지만, 어쩐지 방은 한낮에도 겨울밤처럼 시린 공기가 완연했다. 겨울 이불 밖으로 머리를 빼내면 한순간에 코끝이 차게 식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이불속에 숨어 몸을 둥글게 말았다.
추위가 좀 사그라들자 가장 자주 읽는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얼마간 책에 파묻힌 채로 시간을 보내다, 두 눈을 쏘아보는 사각의 흰 조명에 피로가 몰려와 책을 덮고 조명마저도 꺼 버렸다.
방은 이제 완전히 저녁이 선사하는 어둠 속에 파묻혀 버렸다.
어쩐지, 이제 지을 수 있는 표정에서는 적요함만이 묻어 나올 것 같아 씁쓸해졌다.
가슴 안쪽에서부터 자그마한 유리꽃이 피어나 하얗게 성을 이루는, 캄캄하고 씁쓸한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