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어디가 그리 아팠는지 모르겠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 조금만 마음이 아파도, 조금만 왕래가 뜸해도 머릿속에선 모든 기억을 지우려 한다. 슬프거나 불안하면 가슴 한가운데가 욱신거리는데, 그것과 동시에 나를 슬프게 만든 상황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 상황과 연결된 이들마저도 한 번에 사라진다.
키웠던 고양이를 잊거나, 학교를 잊거나, 연인을 잊고, 친구를 잊고, 가족을 잊듯이...
뇌파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아직 MRI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안도했다. 아침이 되어 병실에 찾아오신 의사 선생님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 속에서도 가슴 안쪽이 저렸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기억이 전부 사라지면 마음이 홀가분할 것 같았다. 힘든 것이라곤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그리 변해도 세상은 그대로라서, 오히려 모든 것을 잊을 때마다 사람들은 내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더라.
심각한 일이라는 듯이, 아버지라는 사람의 이름을 묻고 친구의 이름을 묻고 연인과 형제의 이름을 물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고, 사진을 보여줘도 답을 하지 못할 때 그들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왠지 큰일이 난 것 같았다.
짐작으로라도 맞혀보고 싶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주변에서 아무리 정보를 밀어 넣어줘도 내가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는 학습이 되지 않는다. 바보가 된 것만 같아 온몸의 힘을 잃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가슴은 미어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밤중이 되면 기억이 많이 돌아온다.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말하고, 그들의 정보와, 함께 나누었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머리가 맑아지는데. 그제야 살아있음을 느낀다. 잠시라도 돌아오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꼭 돌아올 것이다.
나의 불안도, 나의 슬픔도,
어렵지 않게 떠올리고 어렵지 않게 안아줄 날이 꼭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