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는 것은 마냥 나쁜 일일까

by 이지원

오늘은 요가를 마치고 나서 내가 누군지 알아보질 못했어요. 내가 누구고, 여긴 어딘지조차도 잊었어요. 간헐적으로 이럴 때가 많으니 딱히 뭐가 원인이라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단 하나 기억하는 건, 기억을 잃기 전에 꽤나 슬퍼했던 것.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는 슬픔이란 감정에 아주 취약해졌어요. 그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뇌가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를 방어해요. 조금이라도 슬퍼하면 바로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고, 곧바로 멍해지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잊어요. 마치 영혼이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는 것 같아요. 이런 글을 쓸 때에도 조금 슬픈 감정을 느끼는 건지, 날이 밝으면 글을 썼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해요. 아무래도 많은 것을 떠올리니 힘들었나 봐요.


그런데, 이런 변화가 마냥 슬프고 나쁜 일일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주변 사람들을 잊고, 나를 잊는다는 것만큼 슬픈 것은 없지요. 그래도 마냥 나쁜 일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이런 단순한 면이 생기면서 감정에 휩쓸리는 일이 훨씬 적어졌어요. 더 이상 새벽에 고양이를 찾아다니지도 않고, 사람의 말이나 표정 하나하나에 의미부여를 하지도 않아요. 모임에서는 눈치를 훨씬 덜 보고, 그 시간 자체를 즐기게 됐어요. 기억의 연결을 약하게 하는 대신 지구를 더 즐길 수 있게 된 셈이지요.


그래서 지금이 좋아요. 삶이 아주아주 편하고 쾌적해졌거든요. 지금은 나 자신을 많이 사랑스러워하고 있어요. 어릴 적부터 나에게 주지 못했던 사랑을 듬뿍 주고 있어요. 마음 안에서 다시 한번 자라고 있답니다. 그러니 가여운 사람도, 슬픈 사람도 아니에요. 아주아주 행복한 사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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