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싫어하지 않아

by 이지원

※ 본 글에는 자해 충동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내용에 민감하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오늘은 그럭저럭 음식을 잘 챙겨 먹었다. 달걀을 제외한 고기를 먹을 수가 없어서 채소 위주로 먹었다. 멍하고,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력이 좀 생겼을 때 요리를 했다. 어떤 감정도 품지 않은 채로 식재료를 만지고 손질했다.


잘 먹고, 이제 설거지를 할 때가 되어 천천히 설거지를 했다. 자꾸만 부풀던 마음이 펑 터져 버린 건 그때쯤이었다. 식재료를 손질하던 커다란 식칼을 들었을 때, 은색 날에 세제 거품을 칠하고 문지를 때, 그것을 물에 헹구고 싱크대 건조대에 놓아둘 때.


그때...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식칼로 내 손목을 내리치려 했다. 왜인지는 모른다. 가슴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것들이 확 끼얹어졌다. 그 식칼에, 내 손목에. 그리 화가 날 상황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떠나고 싶은 마음도 없었는데, 나의 하루는 아주 괜찮았는데. 정말 그랬는데...

식칼이 살에 닿기 직전에 정신을 차리면서 상처는 남지 않게 되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렸더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겁을 먹고 싱크대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온몸이 서늘하게 식었다. 그런데도 아직 나에게 붙어 있는 내가 무서웠다. 아마도 약 때문일 테지. 절대 내가 이런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렇게 나를 미워할 리가 없잖아. 내가 그렇게 나를 떨어뜨리고 싶을 리가 없잖아.


내가 그렇게 싫어?

내가 그렇게 잘못했어?



나에게 나타난 SSRI 항우울제의 부작용은 이런 것이었다. 처음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며 먹었던 설트랄린도, 지금 먹고 있는 렉사프로도, 꼭 복용 7일 차에 접어들면 이렇게 공격성을 높인다. 대학병원에서 알게 된 나의 병명은 상세불명의 정동장애라, 아직 우울증인지 다른 병인지도 확실하지가 않다. 조금 더 이 여정을 이어나가다 보면 알게 될까. 맞는 약을 찾기가 참 힘들다. 그래도 어떻게든 나를 잘 보살피면서 살아야지. 그래야지.

그래도 확실한 건 지원아, 나는 너를 싫어하지 않아. 너를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야. 너랑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그것만 알아줘. 나 무서워하지 마. 내일부터는 다시 행복해질 거야. 꼭 그럴 거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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