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함을 내려놓다
운동 겸 산책을 하고 왔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모든 것이 회색이었다. 집 앞에 있는 공원을 서너 바퀴 정도 돌았는데, 땅을 걷고 있는 건지 하늘을 걷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그래도 바람이 시원한 것은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빌리파이를 먹을 땐 구직에 대한 집착이 심했는데 쎄로켈을 먹고 있는 지금은 구직에 대한 집착이 그리 강하지는 않다. 초조함도 덜하다. 좋은 일이 나타난다면 시도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때를 기다리자는 마음. 정신과 스케줄과 직장 스케줄을 맞추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번듯한 직장을 구하는 것은 잠깐 보류하기로 했다. 맞는 약을 찾는다면 단기 알바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건강 회복이 우선이기 때문에 구직에 대한 생각은 너무 깊게 하지 않기로 했다.
최근 들어 느낀 것은 감정이 둔해졌다는 것이다. 얼굴 근육이 단단하게 굳은 것 같다. 활짝 웃는 것이 어렵고, 슬퍼하는 것도 놀라는 것도 어렵다. 전체적으로 돌처럼 단단해진 것 같다. 말투도 돌처럼 단단해졌다. 약 때문에 머리가 굳어서 그런지 글감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언가를 쓰는 것이 참 어려워졌다.
그래도 감정이 둔해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괜찮다. 내가 먹었던 모든 약 중에서 가장 편안한 약이다. 처음 먹었을 땐 손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오타도 자주 냈었는데, 이제는 손 근육도 조금 더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다. 약을 먹은 지 이제 닷새가 지났으니 가장 강하게 와닿던 신체적인 부작용이 점점 사라지나 보다. 오래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공격성이나 우울감도 없고, 특별히 들뜨지도 않지만 특별히 우울하지도 않다. 꽤 괜찮다.
날이 개면 멀리까지 산책을 나가보려 한다. 파란 하늘과 여러 가지 행복, 이제 곧 다가올 봄 공기를 가득 담아와서 이곳에 풀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