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서야 보였다. 내가 줄곧 이곳에서 보였던 외로움의 정체가.
나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 자책은 거의 연애에서 싹이 텄다. 갈수록 차가워지는 표정, 말투, 행동.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늘 변하기 마련이라고 이곳에서 계속 말했던 것도 사실은 그의 마음이 점점 떠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쌉싸름한 느낌이 있었지만 무시했다. 내가 아직 회복이 안 되어서 자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알았다. 나를 병들게 하는 것은 억지로 이어왔던 불건강한 연애였다.
기억을 잃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내가 좀 불안정해서, 아직 약을 먹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기억상실에는 패턴이 있었다. 갈수록 식어가는 그의 말투, 한숨.
감당하기 어려운 그것을 마주할 때마다 내 머리는 전원을 끄고 먼 곳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기억이 도망간 자리에 남은 나는 언제나 그를 처음 만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 상태에서도 연락을 했던 이유는 익숙한 느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군에 입대하기 전에도 그는 조금씩 쓴맛을 느끼게 했지만, 군에 입대하면서 단맛은 줄고 쓴맛이 극에 달했다. 그의 힘듦은 언제나 나를 향했다. 유일하게 바깥과 연결된 창구가 나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한숨, 줄어가는 말. 단순히 피곤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알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약 2년 전에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도 그는 말했다.
"이런저런 일로 너무 바쁜데 내가 연애를 병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는 어쩌면 처음부터 연애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창 풋풋한 연애 초에 들은 그 말에서 나는 흐릿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이미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그가 안고 있는 고민들은 생존을 위해 언젠가는 부딪혀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연애에는 '헤어짐'이라는 선택지가 있었다. 뜨겁게 타오르던 이 감정이 식고 나면 이제 그는 나를 놓을 것이다.
끓어오르는 사랑.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어쩌면 그에게도 나름의 자신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연애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두 번이나 내게 마음을 고백한 거겠지. 나는 그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없었다. 그저 그의 마음이 다할 때까지 사랑할 뿐이었다.
그리고 정해진 그의 군 입대. 그것은 그의 에너지를 더 빠르게 소모시켰다. 안 그래도 말수가 적었던 그는 계급이 올라가며 더욱 조용해졌고, 나는 그가 마음을 털어놓기를 바랐지만 언제나 그는 이 말만 반복했다.
"나도 몰라, 모르겠어요. 내가 모르는 걸 어떡해. 모르겠다니까?"
그래서 내가 먼저 그를 분석해보기도 했다. 내가 아는 그의 모습을 전부 적어보고, 그것을 그와 함께 들여다보며 그의 성격, 마음, 생각을 알아가려 애썼다. 눈에 보이는 설명서가 있으면 그가 좀 더 입을 열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단단히 닫힌 그의 마음을 열 수는 없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몰랐다. 아니, 사실은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그가 군에 입대하고, 대학교에 홀로 남은 내가 압박감을 심하게 느끼며 우리 둘은 점점 여유가 없어졌다. 서로 기대고 싶어 하는데, 감싸 안아주기에는 서로의 품이 너무 작았다. 그리고 내 우울증은 그런 불안한 연인관계와 학교에서의 끔찍한 압박감을 먹고 더욱 크게 자랐다. 끝내는 무기력이 심해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씻는 것도. 나는 그렇게 점점 죽어갔다.
내가 심각성을 느끼고 정신과에 내원하자 우리 둘 사이의 냉랭함은 적이 누그러졌다. 약을 먹고 기억을 잃은 채로 헤매는 내가 그의 마음속에 잠들어있던 약간의 연민에 불을 지핀 것이다. 헤어지기 직전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상처가 깊었지만 그는 그 연민으로, 그리고 마음 안에 남아있던 미지근한 사랑으로 4개월을 더 끌어왔다. 그리고 이제야 끝을 본 것이다.
"도대체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죠? 저는 너무 지쳐요.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요. 이제는 그만하고 싶어요.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쭉 관통해 왔던 그의 말들이었다. 작년 봄 즈음에 처음으로 이별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이 관계를 시작한 것이 너무 후회된다고도 했다. 나는 사랑으로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내가 다 들어주겠다고 대답했지만 그의 대답은 없었다. 그때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겠다. 애초에 내가 부담이었던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서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리되었어야 할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당당히 말할 수가 없으니 그는 계속 갈팡질팡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정리되었어야 했을 관계.
그럼에도 행복을 선물하기 위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노력했던 그.
그렇다면 이제 놓아주어야지.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도움이겠지.
그리고 나는 어제 그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처음 시작할 때 그가 나에게 두 번씩이나 마음을 고백했듯이,
이별을 할 때도 그가 두 번씩이나 이별을 고했다.
나의 첫 연애는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