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by 이지원

질병코드라는 것이 늘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지난번 진료에서 확인한 나의 질병코드는 F31.3이다. 양극성 정동장애, 현존 경증 또는 중등도의 우울증. 나는 조울증(양극성 장애)을 앓는 사람이고, 현재는 조증과 우울증 중에서 우울증에 머물러 있다.


어제저녁부터는 쭉 기분이 들떠 있다. 우울삽화를 겪는 사람 같지 않다.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기분이 고양되어 있는 것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는 그런 행복감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현실감이 없다. 하루 종일 꿈속을 거니는 것 같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 내가 뭔가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심장은 빠르게 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돈을 이곳저곳에 쓰고 싶어진다. 식욕은 없지만 음식을 대량으로 주문하고 싶다. 아마도 조증인 것 같다. 기분이 부자연스럽게 뜨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사람을 만나고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성과 만나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떤 망상이나 환청은 없지만 그냥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돈을 마음껏 쓰고 싶다.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고 싶다. 그리고 거리를 맨몸으로 누비고 싶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이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다 철저한 고증을 더해서 만들어진 장면이었다. 말도 안 되게 똑같다!


여태까지는 우울감이 극도로 심했기 때문에 우울증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처방받았던 모든 항우울제는 병을 낫게 하기는커녕 극심한 자살충동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대학병원에서는 항우울제를 계속 쓰려고 했지만 다른 병원에서는 항우울제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조울증 약을 처방했다. 그 약을 먹고 나서 처음으로 안정을 찾았다. 일단 잠이 오니까 그 무엇도 하고 싶지가 않더라.


조울증. 조울증은 완치가 어려운 병이라고들 하더라. 평생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하는 병이라고 한다. 평생, 평생! 다른 사람들은 잘 살아가지만 내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결혼을 하고 싶은데. 아직 먼 일이지만 꼭 결혼을 하고 싶다. 그게 상대방을 구렁텅이로 이끄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쓸데없이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커서 말이지. 그냥 상상 속에서라도 결혼식을 올리는 게 좋겠다. 여러 사람을 괴롭히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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