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 끝은 꼭 익숙한 지옥이었다.
아버지가 또 술을 드시고 오셨다. 지긋지긋한 술. 술은 그동안 아버지가 속에 감춰 두었던 감정을 깨우는데, 거의 항상 뾰족하게 날이 선 말들로 가족들의 마음을 후벼 판다. 사람 좋은 얼굴 뒤에 숨기고 있던 못마땅함을 모든 가족들에게 난사한다. 어디 하나 좋은 점이 없는 아버지의 습관은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쭉 이어져왔다. 내가 보아 온 아버지의 못난 모습, 적응하고 싶지 않았지만 적응해 버린 나의 모습. 그 모든 것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아버지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워낙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아니면 아버지가 보아왔던 아버지가 그런 고지식한 사람이라 그런 건지. 사랑이 담긴 부드러운 말도 좀처럼 하지 못하고, 아버지 나름대로 자식을 생각한답시고 하는 말도 언제나 거친 말투 속에 숨겨 표현하는 사람이다. 특히나 사람의 말투에 민감했던 나는 그런 아버지와 참 많이도 싸웠다. 대부분 아버지가 술에 취했을 때 그런 모습을 많이 보였으니 제대로 된 대화는 할 수가 없었다. 새빨간 얼굴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나마 남아있던 가족으로서의 정도 깡그리 떨어졌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다. 저놈의 술, 저놈의 술만 들어가면 아버지는 고집불통 어린아이로 돌아가 큰 소리로 떼를 쓰고 욕을 한다. 시커멓게 변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똑같이 되갚아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버지와 똑같이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거나, 오빠를 때리는 아버지의 등을 때리기도 해 봤다. 그렇지만 남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도 그와 똑같이 더러운 방법을 쓰고야 말았다는 죄악감.
나는 그 이후로 아버지를 닮는 것을 경계해 왔다. 모든 행동을 아버지와 반대로 했다. 아버지가 아무리 욕을 하고 소리를 질러도 똑같은 방법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알코올중독자를 다룬 수많은 영상들로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애썼다. 분노에 데어 쓰린 속을 이해로 달래려 했다. 어떤 모욕을 들어도 '중독의 증상'이나 '배설'쯤으로 생각하며 신경 쓰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향한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노력들 뒤에 가려질 뿐이었다.
어머니의 태도는 나와 비슷했다. 처음에는 그에 맞서서 똑같이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가만히 모욕적인 말을 듣고 있거나, 일단 아버지와 거리를 둔 다음 그를 이해해 보려 애쓰는 쪽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를 다룬 글에서 늘 다시 꺼내는 이야기. 내가 어머니를 보고 '왜 아버지랑 헤어지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어머니는 늘 똑같이 대답하셨다.
"그 모습이 전부가 아닌 걸 아니까."
그 말은 그냥 마음에 박혔다 녹아 사라진 줄 알았는데, 이후에 내가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총 두 번의 연애를 했었다. 그중 첫 번째 연애는 정말 연애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끔찍한 기억밖에는 없다. 그래서 딱히 연애를 한 사람이라고 칭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아버지와 꼭 닮은 인간이었다. 언제나 그의 앞에는 초록색 술병이 놓여 있었고, 매번 만날 때마다 나에게 술을 먹였다. 그가 언제나 술을 권하고, 밥을 먹을 때마다 술을 주문하는 게 참 싫었지만 거절에 서툰 나는 싫다는 말을 입에 담지도 못했다.
그게 불쾌하다는 것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된 거지, 작위적인 사랑이라는 틀에 꾹꾹 눌러 담았던 과거에는 불쾌한 줄도 몰랐다. 술을 마시는 모습도, 불쾌한 말로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도 아버지에게서 늘 보아왔던 모습이라, 어떤 불쾌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익숙한 모습으로 보였다. 매번 뭔가 싸한 느낌이 나를 감쌀 때마다 어머니가 하셨던 말이 내 생각이 되어 머리를 맴돌았다.
'이건 이 사람의 전부가 아니야.'
그런 달착지근한 말로 억지로 지워낸다 한들, 끔찍한 예감이 빗나갈 리는 없지. 한밤중에 스마트폰 너머로 들은 그의 술주정은 아버지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모욕적인 말, 커다란 목청, 잔뜩 꼬부라진 혀로 만들어내는 온갖 욕설. 처음으로 사귄 이성친구를 잃을까 두려워 삼켜왔던 수많은 기시감들이 다시 튀어나왔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한 것처럼 똑같이 그를 달랠까 고민했지만, 그 더러운 분위기를 내 미래에 가져다 놓고 싶지는 않았다. 바깥의 인간에게 경멸을 담은 말을 뱉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두 번째 연애는 정말 연애다운 연애였다. 그는 처음부터 연애를 지속할 여유가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대외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늘 둥글고 부드러운 이미지였다. 군대에 가면서 정말로 여유가 없어지니 말투나 표정이 딱딱해졌고, 그중에서도 모난 부분이 나를 상처 입히기는 했지만 언제나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나의 생각이 되어 상처를 눌렀다.
'이 모습이 전부는 아니지.'
특히나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내가 그곳의 분위기나 고충을 완벽히 이해하기에는 어려우니 '말투를 조금 더 부드럽게 해 달라' 따위의 요청을 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게 안 되는 곳이 군대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사회에서 보던 그 따뜻한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저 꾹 참을 수밖에는 없었다. 나름의 위로가 통하지 않아도 납득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곳은 어떤 위로도 해결책이 되어주지 못하는 곳이니까.
미지근하고 불편한 통화가 끝나고 나면 불안은 꼭 나를 찔렀다. 억지로 끌려간 곳에서 고생하는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를 찌르는 것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 자책과 불안은 깊어져 실제로 자해를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서로가 서로에게 붙들려 갉아먹히는 꼴이었다.
두 관계를 거치고 나서 들었던 의문은, '왜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할까?'였다. 나는 그들이 뱉었던 뾰족한 말들에 대해 반감을 쉽게 드러내지 못했다. 그저 '나를 사랑해서 이런 모습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합리화하며, 그들의 말이 거칠어질수록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말을 피해서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하지 못했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수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처음 접한 이성인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는 맨 정신일 땐 자상하고 유쾌한 인간이었지만 술만 마시면 난폭하고 날카로운 인간으로 변했다. 요즘에야 가족 중 한 사람의 험담을 하는 정도로 끝나지만, 아주 예전에는 물건을 던지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시람이었다. 그런 모습을 어릴 때부터 두 눈으로 보며 자라왔으니 아버지의 모습은 공포스러운 동시에 아주 익숙한 모습으로 각인되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 무력감이 극대화되었을 것이다. 십 년이 넘도록 그 무력감에 빠져 있었으니, 이후에 연애를 하면서 비슷한 상황이나 분위기가 조성되면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익숙한 무력감에 빠진 채로 나를 전혀 지키지 못하게 되었던 것 같다.
거기에 관계가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마음까지 겹치니 날 선 말과 행동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 지독하고 낡아빠진 고리를 끊을 때가 왔다. 내가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지대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은 상처를 받아도 참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