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살아있는 게 참 싫다. 내 본능이 삶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도 싫다. 몸이 다 자랐으면서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내가 싫다. 머리도 몸도 맑지 않아서 행복을 느낄 수가 없다.
돈에 대한 강박은 이제 없다. 먹는 것에도 마시는 것에도 큰 가치는 없다. 아마 가족이 억지로 먹이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을 것이다. 날씨는 더럽게 좋고 파란 하늘은 머리를 던지고 싶게 만든다. 그런 오늘이 싫다.
목요일에 다녀온 병원에서는 우울증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실제로 내가 응답해서 제출한 설문지 항목 중 두 개의 항목에 0점이 찍혀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상태가 좋아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죽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은은하게 남아있다. 그것밖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전부 나간 집에서 마음대로 비틀어져 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시절인연인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도 이제는 지쳤다. 전 남자친구가 떠나가기 직전에 내게 했던 말을 나도 피부 깊숙이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이런 곳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연애까지 챙기기엔 너무 버거워.'
그건 나를 버리려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의 한계가 거기까지였던 것. 그리고 나 역시도 이런 곳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나라는 인간을 챙기기에는 너무 버겁다. 냄새나고 추하고 끔찍한 이곳에 머리를 박고 산다는 건 죽기보다 못한 짓이다. 내 본능이 삶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 싫다.
그렇다고 가족을 욕하는 것은 아니다. 그쪽은 나와는 상관이 없다. 가족은 분리된 사람들이다. 한 덩어리처럼 끈끈하지도 않다. 특별히 뜨겁지도 않고 특별히 차갑지도 않다. 그저 그런 사람들일 뿐이다.
혼자가 된 지금은 돈이 나갈 일이 딱히 없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참으면 그만이고 교류하는 사람들도 딱히 없으니 그저 그렇게 살면 될 일이다. 사실 붙어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사는 것에 어떤 보람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유일하게 뜨거웠던 연애를 놓고 난 지금은 모든 것이 겉치레처럼 보일 뿐이다. 꼭 연애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시절인연처럼 느껴지니 유통기한이 딱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평생을 행복하게 살자고 입이 아프도록 말했던 그 연인도 지긋지긋한 감정싸움이 길어지고 나면 사용한 휴지처럼 버려지는데, 우리가 언어로 어떤 약속을 한다 해도 그것이 정말 평생 갈 일이 있기나 할까. 평생 함께하자는 말은 그냥 그만큼 아낀다는 말일뿐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 일 이후로는 별로 사람을 깊게 믿고 싶지도 않다. 이래저래 상처를 참 많이 받은 모양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도 마찬가지. 연인이 있던 시절에는 그를 꼭 닮은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혼자가 된 지금은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죄도 없는 아이를 세상에 던져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짧고 달콤한 행복이라도 느꼈으면 해서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잘 모르겠다. 아이를 낳는 것은 오로지 나의 욕망일 뿐 태어난 아이의 바람이 관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을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줄곧 배워왔지만 내가 우울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지금은 딱히 생명을 가진 것에 감사하고 싶지 않다. 특히나 이 지독한 정신질환이 아이에게 옮겨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꼭 내 욕망을 담아서 아이를 낳아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겠다. 또 언젠가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그럼에도 죽음이라는 것은 참 무서워서 함부로 입에 담지도 실제로 행하지도 못한다. 사람의 명줄이라는 것은 참 질겨서 가볍게 끊어지는 것도 아니다. 또 끊는다고 해서 더 나은 것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 그나마 익숙한 삶이라는 것에 머물고 있다. 미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나 역시 사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조금 좋아졌다고 한 달로 멀어져 버린 정신과 일정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지금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어쩌면 얕은 구덩이일지도 모르니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