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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Sep 07. 2024

다시 떠오른 기억

때로는 기억의 수면 아래에서 떠오른 것이 나를 알게 하기도 한다.

  뜨뜻미지근한 기분.


타인에게 맞추는 습관이 단단하게 굳은 채 달라붙어 있다. 천성이 타인의 감정에 민감한 탓이었을까, 오래전에 다니던 학교의 희끄무레한 천장 속에 녹아 붙어 있을 괴로움 탓이었을까. 어찌 되었든 까마득히 어릴 적부터 나보다는 남의 말을 듣는 것이 좋았고 나로 인해 상대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나로 인해서 불편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몇 번이나 나의 어깨를 눌러 앉혔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드러내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능동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낡아빠진 속삭임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린 채로 사는 것이 습관이 된 모양이다.


 중학교 때였다. 따돌림을 당하던 친구를 도와주었고 그게 평탄하던 학교생활에 약간의 돌부리를 놓아주었다. 괴롭긴 하지만 이제는 그 기억도 흐려졌는지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끊임없이 사람이 없는 곳만을 찾던 바쁜 움직임과, 집에 돌아올 적마다 이러지 말아 달라고 빈 천장에 대고 크게 울었던 것, 그리고 굵직하게 있었던 일들 뿐.


 모종의 일로 반에서 소외되던 친구를 도와준 그 순간부터 발밑의 땅은 꺼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괴롭힘의 주동자는 그 아이를 불러내어 따갑게 쏘아붙였고 나는 몇 번이나 그 맹수와도 같은 눈초리를 마주해야만 했다. 큰 소리를 내어 싸운 적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괴롭힘이 지나치다며,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정말 옳은 것 같냐고 묻는 내게 돌아온 답은 단 한 마디였다.


 "넌 좀 가만히 있어!"


 단호하게, 불합리하거나 상처를 받은 일에는 단호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학교에서는 그렇게 행동했다. 그래도 주동자 무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너무나도 괴로워서 급식실에는 가지 못했다. 밥을 안 먹으면 벌점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러나저러나 속이 울렁거리는 건 매한가지라서 급식실에 가는 척을 하고 구석에 앉아 운 좋게 선생님께 받았던 초코파이나 작은 젤리를 먹으며 점심을 때웠다. 그것조차도 받지 못했던 날에는 점심을 걸렀다. 그리고 복도 끝의 한적한 공간에서 바람을 쐬며 나무가 가득한 학교의 정원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기도 했다.


 밥이야 먹지 않아도 좋았다. 그보다 괴로웠던 것은 괴롭힘이 있기 전까지 묻는 말에 대답이라도 해주었던 아이들이 나를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어제까지 웃으며 인사해 주었던 아이들이 어쩐지 시선을 피하고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 내가 반에 들어와도 거기에는 내가 없다. 


 그때부터 교실 안에 들어서는 것이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도망쳤다. 그래도 혼자 가는 것은 외로워서 작은 노트와 펜 하나를 챙겨 들고 미친 듯이 달렸다. 누구도 없었으면 좋겠다. 다가오는 손과 안쓰러워하는 눈빛마저도 두렵다. 도망치자, 도망치자.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


 내게는 작은 펜과 노란색 노트만이 유일한 친구였다.

거기에는 무엇을 적었을까.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가고 싶다'는 말만을 반복해 적었던 것 같다. 상상 속에서 친구를 만들었고 거듭해 말을 걸었다. 그것도 질리면 먼지 쌓인 구석에 앉아 얌전히 그림을 그렸다. 퀴퀴한 내가 코를 찔러도 마음만은 한결 편했다. 무엇보다 따가운 눈초리나 아픈 말을 듣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렇게 건조한 날만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 내가 진짜 줘야 돼?"

"빨리 주고 오라니까."

"... 알았어."


새카맣게 모여있던 무리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그런 소리가 들렸다.


썩 달갑지 않다는 듯이, 주동자 무리에서 가장 작은 아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씁쓸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나는 멍하니 엎드려 있다가 조용히 눈만 들어 그 애를 올려다보았다.


"너, 이거 먹어."


 눈앞에 포장지가 없는 막대 사탕이 불쑥 나타났다.

사탕을 손에 든 그 애는 분명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이 결코 좋은 웃음은 아니다. 묘하게 기대감에 찬 듯한, 그러나 한편으론 안쓰러워하는 듯한 웃음이 그 얼굴에 남아 있었다. 동시에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불안하고 초조해 보이기도 했다.


 먹지 않겠다고 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던 나는 사탕을 받아 들었다.

그 애는 그제야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무리 속으로 돌아갔다. 무리 속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손끝으로 사탕을 만져보았다.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먹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물건이었지만 그랬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조용히 교복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다. 사탕은 집에 와서야 쓰레기통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사탕을 쓰레기통에 쑤셔 박음과 동시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는 어찌어찌 모든 일들이 마무리되었다. 지금 나는 그 악몽과도 같던 곳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파고 들어가다 보면 아직 그때 그 자리에서 머물고 있는 것만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그만 놓아줄 때도 되었는데 말이다. 의견을 표출하거나 무언가 원하는 것을 말하려 할 때마다 '좀 가만히 있으라'는 그 한 마디가 족쇄가 되어 발목을 잡는다. 결국 나는 내가 어렴풋이 원하던 것을 꿀꺽 삼켜버리고 만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려 해도 오래 힘을 써야만 겨우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한 번 새겨진 기억인 만큼 절대 없앨 수는 없겠지만, 좋은 기억들로 덮어 흐려지게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절반의 기억이 흐릿해진 것을 보면 분명히 남은 절반의 기억들도 흐리게 만들 수 있겠지.

그러다 보면,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될 날도 오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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