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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Sep 10. 2024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나는

 그저 제대로 서 있고 싶은 어린아이 일 뿐.

 몸이 컸다고 해서 어린 내가 바로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어린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든 하고 싶고, 무엇이든 되고 싶고, 사랑하는 이들을 한껏 사랑하고 싶은 그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살아간다. 아침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몸을 일으켜 거울을 보는 행동을 몇 번 반복했을 뿐인데 내가 어른이란다. 이제는 어른답게 살아가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와 동시에 나의 감정에는 적당한 크기의 자물쇠가 채워졌다. 필요할 때만 살며시 열어서 적당량의 감정만을 표출해야 한다. 그게 바로 사람들과 부대끼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그래, 천상천하 유아독존.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불꽃과도 같았던 그 시기를 거치고 나니 이제는 내가 아닌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어느 우주에 얼마나 빨리 발을 딛고 정착하는지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들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나는 낙오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성공'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잿빛의 과정들이 안쓰러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떤 결과가 없으면 그것은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마니까.

그래서 나는 엉성한 노력일지라도 무언가 하고는 있다는 것을 남기기 위해, 나의 노력을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힘을 끌어모았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일에서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나는 때때로 흔들리기도 한다. 언제나 정해진 속도란 것은 없으니 마음을 편하게 먹자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내가 어엿한 성인으로서 단단히 땅을 밟고 설 수가 없을 것만 같아 불안한 것이다.


 결국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나는 사리지고 말 것이라는 본능적인 공포감이 불안의 뿌리일 것이다. 생존에 직결되어 있기에 오는 공포. 내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일으킬 수 없다는, 지독하게도 팍팍하고 쓰라린 현실. 손을 잡아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일 뿐, 결국 일어나려면 내가 힘을 줘야 한다.


 '쓰리고 쓰린 세상이야.'


 그런 생각 속에서 깨어나 보니 나는 뜨거운 물을 맞고 있었다.

 참, 샤워를 하고 있었지. 서둘러 흰 비누거품으로 몸을 닦아내고 다시 따뜻한 물로 씻어내었다. 그 순간만큼은 긴장되어 있던 몸이 조금 부드럽게 풀어졌다. 동시에 달콤한 행복이 머릿속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사르르 녹는 듯한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녹아내리는 웃음소리를 듣자마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결국 나의 꿈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구나.


표현의 방법이 달라졌을 뿐, 예나 지금이나 나는 나의 행복을 바랐다. 그래서 사랑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꿈을 찾고 싶었다. 소중한 사람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내가 나를 찾아가면서 비어있던 마음이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여전히 뭐든 되고 싶고 뭐든 하고 싶은 꿈 많은 어린 아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간직해 온 꿈과 소망이 있겠지. 조금 더 앞서나간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각자의 꿈을 가슴에 품고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는 생명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지금 쌓아나가고 있는 모든 과정들 하나하나가 바로 나를 이루는 소중한 경험이고 가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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