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달갑지 않았었다. 그냥 침대 안에 스며든 채로 있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하루를 거의 다 보내고 나서 눈을 떴다. 오후 3시.
두통이 심했다. 정말이지 머리가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았는데, 역설적이게도 그로 인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하루, 그날이라도 나가지 않으면 평생 이대로 살아가게 될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나는 사실 간절히 살고 싶었고, 이곳에 좋은 기억 하나쯤은 적어놓고 싶었다.
눈이 내렸다.
바지를 얇게 입어 다리가 시렸지만 괜찮았다. 살아있음을 느꼈다.
오랜만에 지나가는 길, 오랜만에 보는 상점, 오랜만에 보는 강아지.
어딜 가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고 이미 밖에 나온 이상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냥 눈발을 맞으며 걸었다. 앞도 보고, 뒤도 보고,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하늘을 올려다본 것이, 참 오랜만이었다.
우유를 부어 놓은 듯한 하늘이 부드러운 눈송이를 하나하나 뜯어 땅으로 내려보내고 있었다.
차갑고 작고 여린 것이 손에 닿았다. 금방 사라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녹아 사라진다. 시간이 지나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처음엔 목적지도 정해놓지 않고 걸었다. 조금 산책이나 하다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산책로로 걸어가려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반대편 길을 보았다.
나가기 전에 아빠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이거 가지고 가서 커피 한 잔 하고 와. 응?"
아빠는 한사코 거절하는 나의 손에 카드를 꼭 쥐여 주셨다.
"아빠, 됐다니까요. 나 그냥 요 앞에 산책만 나갈 거야. 힘들어."
"아유, 갔다 와. 느긋하게 케이크도 하나 시켜 먹고. 이거 써도 돼. 카페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린데 뭐."
"괜찮다니까 그러네."
부모님께서는 조금 고민을 하다,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래, 일단 나가 보고 다녀올 수 있겠다 싶으면 다녀와 봐. 힘들면 다시 들어와도 되니까."
늘 마음 안에 있는 찻집만 찾다 진짜 찻집을 가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가는 길에는 싸라기눈을 보았다. 하얗고 예쁘다. 설날이라고 저 위에서도 떡을 하나 보다. 고소하고 살짝 달큼한 떡 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하늘 위에 있을 우리 첫째 고양이도 잔치를 벌이고 있겠구나.
익어가는 겨울바람이 불어와 등을 떠밀었다. 어서 가라고. 혼자 가기 미안해 바람을 팔에 두르고 걸었다. 다리가 얼 것만 같았지만 조금 지나니 더운 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둘러준 목도리와 주머니에 꼭 넣어 챙긴 장갑 덕분에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낡은 상가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조금 더 가니 카페가 있었다. 이런 곳에 카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나는 다시금 나의 시야가 얼마나 좁은지 깨달았다.
망설였다. 카운터 앞에 가서 직접 주문을 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드나드는 카페의 출입문이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다. 방해되지 않도록 구석에 서서 목을 가다듬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벌써 목 안쪽이 뻣뻣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목도리 끝자락을 손으로 꼭 쥐고 카운터 앞으로 걸어갔다. 내심 눈이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안녕하세요, 드시고 싶으신 메뉴 있으세요?"
내 바람은 정확히 빗겨나갔다. 동시에 높직하고 밝은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아마도 일이니 그렇겠지만, 직원분의 얼굴에서는 은은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깨닫지 못한 사이 두려움이 밀려왔는지 손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돌아갈까, 돌아갈까, 짧은 찰나에 그런 망설임이 또 스쳐 지나갔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아까웠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내가 아는 선에서 가장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적당한 메뉴를 골라 말하고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긴장이 툭 풀렸다.
음료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을 보았다. 연인들, 공부하러 온 듯한 사람,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었다. 가족 단위로, 혹은 친구들과 함께 온 사람들도 있었다.
내 자리 앞에는 마음을 반쪽으로 나누어 앉혀놓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용했다. 이곳이 카페라는 걸 아는 눈치였다. 채근하지도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고 얌전히 앉아 함께 음료를 기다렸다. 가끔씩 눈이 내리는 창밖만 구경하면서.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크림이 올라간 핫초코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어떻게 들고 왔는지 잘 모르겠다.
따뜻한 음료를 앞에 덩그러니 두고 홀짝이다 오랜만의 외출이니 마음 안쪽에 작은 선물을 넣어줘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 다시는 죽고 싶다는 생각 따위 안 들게끔. 속임수라면 속임수겠지만, 그래도 좋은 날은 있어야지.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묻는 직원분 앞에서 보기 좋게 허둥대다 생크림이 듬뿍 들어간 카스텔라를 주문했다. 바쁜 와중에 귀찮으실 법도 한데 재빠르게 주문을 받고 옆쪽으로 안내해 주셨다.
"금방 나올 거예요.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음식을 받고 자리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두 직원분들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응대해 주셨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 자꾸만 마음 안에서 피어났다. 따스한 온기가 마음 안을 채웠다. 목을 타고 눈 밑에 고이려는 것을 간신히 눌러 참아냈다. 최대한 기분 좋게 있다 가고 싶었으니까.
좋아하는 카스텔라의 단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했다.
돌아올 땐 길이 얼어붙어 있어 버스를 탔다. 뺨에 와닿는 바람은 날카롭게 살을 에었지만 마음 안에는 아직 온기가 남실거리고 있었다.
집안에서 진득하게 붙어 괴롭히던 두통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