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러비 Jul 23. 2024

즐겁게 사는 방법

가끔 인생이 너무나 무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쳇바퀴 돌듯 똑같이 돌아가는 하루하루를 활력이 넘치는 하루하루로 바꾸기 위해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던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바로 사랑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때는 물론 몰랐지만, 인생에 지겨움을 느낄 때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 대상은 내 환경 안에 있는 어떤 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잘 만날 수 없는 인물에 대한 사랑도 포함된다. 


물론 그 사랑은 진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대부분은, 단조로운 생활과 단조로운 감정에 신선한 바람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그들을 좋아하기를 선택함으로써 내 앞에 닥친 현실을 훨씬 긍정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었다. 물론 나는 내가 그들을 좋아함으로써 얻어지는 감정의 만족감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관계가 깊어질 일은 없었다. 비단 짝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연예인을 좋아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차원에서였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 연예인이란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로 인식되기도 해서, 연예인이란 인물 그 자체를 사랑한 게 아니라 그들이 주는 즐거움을 사랑한 것이었다. 현실의 일로 바빠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현실 범위 내에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버텼던 것 같다. 그렇게 보이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도 짐작은 하지만, 그래도 나는 꽤 재미있었다.


그저 티 나지 않게 지켜보다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끝났고, 난 그게 참 편했다. 사실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조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와 진정한 사랑 같은 걸 해보고는 싶지만, 실제로 그러리라 상상해 보면 마음이 거북해진다. 정확히 말하면 낯선 누군가와 열심히 교류를 하며 친밀한 사이가 돼 가는 그 과정들이 너무나 귀찮게 느껴진다. 그냥 원래 그런 사이였다면 좋았으련만. 그러므로 정정하겠다.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귀찮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순을 나는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아마 내가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눈이 멀지 않은 한, 이 모순을 극복하기는 참 힘들 것이라 본다. 게다가 첫눈에 반하더라도 그 상대가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내가 그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 리가 없다. 되게 까다롭다고 생각했다면, 나도 알고 있다고 말해주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내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정말 그런 사랑이 존재한다 해도, 나는 별로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가끔 짝짜꿍 하고 있는 커플이나 부부를 보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다.


빠진 부분이 있어 조금 더 보충하자면, 어렸을 때는 사람뿐만 아니라 게임, 애니, 소설 등등을 활력을 주면서 현실을 살짝 회피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지금도 가끔 보기는 하지만 또 하나 추가된 것은 스포츠다. 축구라고는 월드컵 때만 보다 말던 내가 어느새 해외축구를 찾아보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이것도 상당히 라이트 한 취미라서 어느 한 팀을 광적으로 응원하지는 않지만, 주로 코리안리거들을 중심으로 보고 있다. 1차적으로는 나의 재미가 가장 중요하지만, 보면서 선수들도 응원하게 되고, 그들이 걷는 길을 보며 존경심도 갖게 되고, 여러모로 긍정적인 요소만 쏙쏙 빼먹고 있다. 해축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래 지속될 것 같으니까 유럽을 간다면 경기직관을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 





아무튼, 이 이상한 방법은 내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이 틀림없다. 내가 보기에도 이 방법이 현생(갓생?)을 잘 살아가는데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계발 안 하고 딴짓한다고 비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쓸데없는데 빠져 사는지,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결국에는 나의 이 현실을 버텨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이제는 나를 미워하고 욕하고 싶지 않다. 다 나름대로의 고통에서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열심히 현실을 회피하며 다른 곳에 빠져들어도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공허함과 왜 인지 모를 스트레스로 가득 찬 마음은 나를 절망에 빠뜨리곤 했다. 즐겁다고 웃는 게 정말 즐거운 것이겠는가. 안타깝게도 나의 20대는 그렇게 흘러가버렸다. 정말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어떻게 이렇게 십 년을 있지? 갑자기 이렇게 20~30년을 살아오신 부모님이 대단해 보였다. 대단해 보인 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렇게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살기도 싫었다. 항상 즐거울 없는 건지, 항상 의문이었다. 즐거운 것은 너무 빨리 지나가버렸다.


방법을 찾고 싶었다. 답은 책 속에 있었다.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나는 내가 만족할 만한 답을 찾아냈다. 

그렇다고 내가 어떤 대단한 수를 발견한 건 아니다. 나는 그냥 내가 회피해 오던 모든 것을 마주하기로 결정했다. 그건 이 내가 마주한 이 현실이기도 하고, 내 감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결국 어떤 괜찮은 미래를 마주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실제로 매번 부정적인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던 과거보다는 훨씬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매일같이 어떤 재미난 이벤트가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사실 이 평온함이야말로 내가 찾던 '즐거운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제야 내가 과거에 해오던 '쓸데없는 짓'이 내 나름의 고군분투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항상 화를 내고, 자책을 하고, 욕하던 모습 역시 그 고군분투의 일환이었다. 이 엄청난 감정 낭비로 인해서 내가 거의 대부분 무기력한 상태였다는 것도 알게 됐다. 거꾸로 말해, 지금 무기력한 상태라면 그전에 감정 낭비가 심했다는 뜻이 된다. 나의 경우 십중팔구는 내 안의 투쟁 때문이었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 나는 나와 싸우지 않기로 했다. 감정을 부정하고 회피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언젠가는 항상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러길 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계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