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루꽃

07. 오후-아랫집 영란

by 책날 백대백

아들은 미역국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언제 나갔다 왔는지 담배 한 보루를 들이민다.

"못난 백수아들 낳느라 우리 백여사 고생 많았수. 내 글이 뜨면 우리 할매 맛있는 거 많이 사드릴 텐데.. 지금은 담배 한 보루밖에 드릴 게 없네."

"네가 무슨 돈이 있어 이걸 사와. 어쨌든 잘 필게. 히히"

나는 손사래를 치다가 이내 잡아 서랍 속에 담배를 넣으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담배가 서랍에서 줄어들 때마다 곳간에 쌀 떨어지는 것처럼 불안한데 없는 돈 모아 네가 사 오니까 미안하면서도 고맙네, 히. 히. 히"

아들은 출판사관계자를 만난다고 휑하니 사라졌다. 진짜 일 때문에 간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자기 모습이 초라하다고 느껴서인지 모르겠다. 백수아들이어도 이렇게 밥을 차려주고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좋은데 좀 있다 가지 빨리 가버리니 조금은 서운하다. 막내는 좋은 글을 쓸 것이다. 어릴 때부터 심성이 착했으니 착한 글을 쓸 것이다. 착한 글이 잘 팔리는 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게다가 내가 그 녀석 글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오월의 햇살이 뜨겁게 다가온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무심히 틀어져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새벽부터 밤까지

피었다~지는~~ 꽃

그 이름 하~루~꽃~~~

~내 맘부터 몸까지

모두 다~가져~~ 간

그 이름 하~루~꼬~~~'


"이번 트로트대전에서 1위를 차지한 왕민의 하루꽃입니다. 왕민씨는 이번 트로트대전이 발견한 트로트스타죠. 8개월에 걸친 오디션형식의 테스트에서 당당히 대한민국 최고의 트로트 신인으로 거듭났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사회자가 호들갑스럽게 왕민을 호명하자 방송국을 가득 메운 시청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고 열화와 같은 환호 속에 빤짝이 장식이 달린 양복을 입은 왕민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왕민씨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사회자는 왕민에게 마이크를 건넨다.

"우선 저를 일등으로 선택해 주신 시청자님들과 심사위원단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노래와 는 상관없는 일을 해 왔지만 트로트에 대한 꿈은 놓지 않았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고된 하루를 마무리할 때도 언젠가는 무대에 서서 시청자님들의 마음 하나하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날이 꼭 올 것이라고 상상했었죠."


"아이고야 언니.왕민이가 우승했네. 내가 될 거라고 그랬잖아.. 큭큭큭. 얼굴 잘 생겨 목소리 기가 막혀. 이번 트로트대전 나온 애들 다 봐도 우리 왕민 같은 애 없었다니까."

아랫집에 사는 영란이가 어느새 올라와 호들갑스럽게 떠든다. 영란이는 나보다 열 살 어린데 우리 집을 자기 집 드나들 듯한다.


언제인가 저녁 내가 집에 들어왔을 때 힘이 없고 몸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던 적이 있었다. 원래 안 좋은 심장 때문인가 해서 가방 속에서 혀밑에 뿌리라고 병원에서 준 빨간색 스프레이 약을 겨우 뒤져 꺼냈다. 지병으로 가지고 있는 관상동맥에 문제가 생기면 팔다리가 저리고 몸이 덜덜 떨리다가 이내 배가 아프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지경에 이른다. 이때 빨간색 스프레이를 혀밑에 몇 번 뿌리면 십여분 후에 증상이 조금씩 가라앉다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날 나는 혀가 얼얼할 정도로 스프레이를 뿌려댔었는데도 효과가 없었다. 이번에는 아예 몸이 더욱더 방바닥으로 꺼져 내려앉는 듯했다.

'띠띠띠띠 띠리링~'

현관문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와 함께 아랫집 영란이가 다급히 들어오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게 희미해져 가는 정신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언니!! 언니!! 정신 차려봐!! 아이고 이를 어째. 빨리 이거 먹어 어서"

영란이가 부스럭거리며 내입에 물려준 것은 박하사탕이었다. 박하사탕의 박하향이 희미해져 가는 정신을 잡아 채 다시 재정신으로 잡아끌듯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방바닥에 하염없이 꺼져내려가던 몸뚱이도 이제 약간씩 움직일 수가 있었다.


"언니 저혈당이야 혈당은 고혈당보다 저혈당이 훨씬 무서워. 한순간에 훅 간다니까. 내가 봤기에 망정이지 혼자 사는 노인네가 산송장 치울 뻔했잖아."

"아고 영란아 죽다 살았다. 어서 담배 좀 가져와라"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담배를 찾는다.


영란이는 당뇨가 심했다. 그래서 집에서 당체크도 혼자 척척하고 혈당조절에 좋다는 음식도 잘 챙겨 먹는데 내가 얼마 전 당이 높다고 하자 매일 아침마다 올라와서 내 당도 체크해 주고 양배추도 삶아 올라온다. 영란은 활달한 성격이고 정이 있어 남에게 퍼주기를 잘한다. 영란이가 아니라면 나는 하루종일 텔레비전밖에 안 보고 사람과 몇 마디 얘기 나눌 기회도 없었을 텐데 내 말동무며 때로는 돌보미로 내게 큰 도움이 되는 동생이다.


"내가 올라간다고 전화를 해도 당최 언니가 받아야 말이지. 몇 번 해도 안 받길래 이거 무슨 일 있다 싶어 얼른 올라와 언니네 문을 두드렸잖아. 그런데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은 같은데 문은 안 열리고 언니네 비밀번호는 잘 모르겠고 미치겠더라고. 그러다가 전에 언니 들어올 때 등뒤에서 살짝 본 기억을 더듬어 몇 번 눌렀더니 열린 거야. 이문 못 열었으면 어떻게 될 뻔했어? 아휴 상상하기도 싫네."

마치 지금 문밖에서 문을 열려고 하는 듯 손모양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영란이는 아주 열띠게 설명한다.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깰꼬닥이지 뭐 히히히"

"깰꼬닥 하하하하"

내 말에 영란이는 뒤로 나져빠지는 시늉을 하며 우리는 함께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