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루꽃

06. 점심-미역국

by 책날 백대백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 갑자기 오늘이 아들 생일인 게 생각났다. 요즘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자식들 생일은 고사하고 내 생일도 언제 인지 모르게 지나가니 그 좋던 기억력도 세월 앞에 장사 없나 보다. 어쩐지 아침부터 허리며 무릎이며 관절마디마디 안 아픈 데가 없더니 막내생일이어서 그랬나 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미역국이라도 끓여줘야 맘이 편할 것 같다. 미역을 물에 담가 놓고 소고기를 사러 집 앞 육 곳간집으로 간다. 얼마 전 새로 문을 연 정육점인데 고기질이 좋다. 젊은 총각들이 장사하는 가게인데 가면 두총각이 '어머니~,어머니~'하며 반겨주는 게 기분이 좋아진다. 소고기 반근을 끊어가지고 온다. 미역과 마찬가지로 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우선 불려 놓은 미역을 꺼내 물을 짜낸다.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미역을 다글다글 볶다가 물을 넣고 핏물 빠진 소고기를 큼직하게 잘라 넣는다.


혼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는 아들이 대작할 사람이 필요한 듯 말한다.

"술 먹던 사람 어디 갔나? 밥 먹다 말다 이게 뭐유? 게다가 밥 다 먹어가는데 미역국은 왜 끓이구? 저녁에 드시게? 난 점심만 먹고 갈 건데.."

"야야.. 오늘이 너 귀빠진 날인데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미역국 끓여주는 건데.. 조금만 기다려.. 밥은 천천히 먹고.. 생일인데 다른 건 못해줘도 미역국은 먹어야지."

나는 소고기를 듬뿍 담은 미역국 한 그릇을 들고 들어온다.

"엄마 왜 한 그릇만 펐어. 먹으려면 같이 먹어야지."

"아니야 난 미역국 별로 안 좋아해. 솔직히 냄새 맡기도 싫을 때가 있어."

난 손사래 치며 말했다.

"하긴 울엄니는 미역국은 기가 막히게 끓이는데 드시는 걸 본적이 별로 없는 것 같네."

"너 태어나기 전에 엄마가 판자촌 부녀회장 했었어. 거기 사는 사람들 내가 애를 여럿 받는 산파노릇했었다."

아들은 소고기와 미역을 먹다가 짐짓 놀란 표정이다.

"산부인과 안 가고 게다가 엄마한테 아기 받아달라고 했단 말이야?"

"판자촌 사람들이 어련하겠니.. 생활할 돈도 빠듯한데 언감생심 병원 갈 돈은 있겠어? 나도 생각해 보면 대단한 사람이야.. 뭘 믿고 애를 받았나 몰라. 그때 그래봐야 서른 좀 넘은 여자가 배운 적도 없는 산파노릇을 다하고.. 히히"

아들은 얘기에 흥미가 있는지 아예 수저를 내려놓고 나의 다음 말이 궁금한가 보다.

"배운 적도 없었단 말이야? 그래도 본 적은 있었겠지?"

"그러게 어릴 때 봤으려나? 그런데 기억은 없어"

나 역시 기억을 더듬듯 오른손으로 오른쪽 관자놀이를 살짝 긁는다.


"선희 엄마! 선희 엄마! 빨리 와봐! 짱아네 애 나오려나 봐"

나를 찾는 목소리가 다급하다. 둘째 산달이 다 된 아랫집 짱아네서 찾는 거다. 전에 애를 몇 번 받은 적이 있어 급한 김에 나에게 산파노릇을 해 달라는 거다.

"알았어. 짱아네 이번엔 병원 않갔나봐?"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데리러 온 옆집 꽃님이 엄마와 함께 뛰었다.

"짱아 아부지 아파 쓰러지고 그 집 밥 먹기도 힘든데 어디 병원 갈 여력이나 있겠어?"

그렇다. 공장일 다니던 짱아아부지가 일하다 쓰러져 일을 그만둔 지가 벌써 몇 개월째라는 게 생각났다.

짱아네 들어서는 순간 남산만 한 배를 움켜잡고 신음하는 짱아네와 옆에서 울고 있는 짱아. 그리고 숨넘어가는 아내를 어떻게 도울지 몰라 쩔쩔매는 짱아 아버지는 자기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얼른 물 끓이고 가위 소독하고 깨끗한 천도 가져오고."

나는 뛰느라 숨이 찬 듯 헐떡이는 꽃님이네에게 마치 산부인과 병원 의사가 간호사에게 지시하듯 여러 가지를 말한다.

나는 손을 닦고 누워 있는 짱아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송골송골 땀이 맺힌 이마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내가 왔으니까 괜찮아를 말해주었다.

입구에 아기머리가 보인다. 조금만 힘을 주면 될 것 같은데 짱아네가 안간힘을 주어도 열려야 할 문이 주리 튼 주머니처럼 열리지 않는다.

아참! 짱아네 짱아 낳을 때 병원 갔었지. 그때 파열된 문을 꿰매놓은 거다. 자연분만을 하면 더 쉽게 아물고 둘째 셋째를 낳아도 되지만 병원에서 출산하면 둘째 낳을 때 입구가 자연스럽게 터지지 않는다.

"얼른 면도칼 소독해서 갖다 줘 빨리!"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꽃님이네를 보고 단호하게 지시했다.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짱아엄마는 힘을 주느라 거의 까무라 칠 지경이다. 꽃님이네가 뜨거운 물로 소독한 면도칼을 가져오자 나는 냉큼 받아 쥐고 입구 아래쪽을 살짝 그었다. 털옷에 꿰맨 실 한끝이 풀려 올 나가듯 문이 열린다. 아기는 나오자마자 참았던 오줌을 내 얼굴을 향해 뿌린다.


"그래 아기야 고생했다. 엄마뱃속에서 나오려고 애 많이 썼구나. 짱아엄마 아들이야.. 오줌 누는 걸 보니까 아주 힘 좋게 잘 클 거 같아. 히히히"

"하하하"

옆에 있던 꽃님이네도 웃고

"흐흐흐"

거의 실신직전이었던 짱아네도 웃고


아기를 엄마옆에 늬어놓고 열 달 동안 엄마와 연결되어 있었던 탯줄을 끊어줘야 할 때다. 때맞춰 꽃님이네가 소독한 가위를 거꾸로 잡아 건넨다. 이제 숙련된 간호사 같다. 탯줄을 자를 때는 길이가 중요하다. 너무 짧게 자르면 배꼽이 너무 깊어 이후에 배앓이를 자주 하게 된다. 또 너무 길게 자르면 맹꽁이 배꼽이 되기 때문에 역시 바람이 자주 들어 아프기도 하고 이후 어른이 되어서도 신경이 쓰인다. 탯줄을 아기 쪽에서 훑어 잡아 다리 길이까지 맞추고 다시 거기서 한 마디쯤 더 잡아 자르면 된다. 우선 자를 지점 양쪽을 훑고 자른 후에 탯줄을 아기배 위에 돌돌 말아 올려놓으면 보름쯤 지나 말라 떨어지는 거다. 하늘나라에서 내려올 때 사용한 동아줄은 이렇게 땅으로 돌아간다. 아기를 받을 때마다 미역국을 산모에게 끓여 먹이는데 그래서일까 피를 보는 당시의 위급한 상황이 어른거려 미역국을 보면 속이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