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루꽃

05. 점심-막내

by 책날 백대백

현관옆 텃밭에는 상추와 방울토마토, 가지가 자라고 있다. 냉동보관용 스티로폼을 주워와 만든 화분이지만 씩씩하게 자라는 식물을 볼 때마다 그 싱그러움이 놀랍다. 수녀님을 보내고 텃밭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찐 보라색으로 잘 자란 가지와 빨간 토마토 몇 개를 따 가지고 들어왔다.

막내는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삼겹살의 두꺼운 비계와 살짝 붙어있는 돼지껍데기를 좋아한다. 점심 먹으러 잠깐 온다고 했으니 얼른 가서 돼지고기를 사 와야겠다. 가까운 거리지만 쉬다 가다를 반복한다. 칠십 대까지만 해도 허리가 이 정도까지 아프지 않았었는데 팔십이라는 큰 고개를 넘으면서 허리란 놈은 꺾이나 보다.

막내는 중국에 한의학공부하러 간다고 십 년 넘게 나가 살 더니 한국에 들어와 의사시험을 볼 수없게 되자 지금은 사십이 넘도록 장가도 안 가고 글을 쓰겠다고 나가 살고 있다.

아까 텃밭에서 가져온 가지를 길이로 길고 얇게 잘라 프라이팬에 구워 내놓고 다시 기름을 넉넉히 두른 프라이팬에 토마토를 잘게 자른 다음 마늘을 듬뿍 넣어 볶다가 마늘향이 토마토에 베어들 때쯤 굴소스를 조금 넣어 몇 번 휘저어 주다가 불을 끈다. 이렇게 만든 토마토소스를 좀 전에 구워낸 가지 위에 뿌려 놓으면 막내가 좋아하는 밥반찬이 된다. 수녀님이 먹었던 된장찌개에 두부를 더 넣고 끓이고 삼겹살을 굽는다. 다 큰 어른이 되었어도 막내는 막내다. 언제 자식새끼 낳고 사람구실 할지 모르지만 내 뱃속에서 나온 놈이니 사십이되도 오십이되도 애기는 애기다.


"엄마 나 왔어. 아유 배고파, 배고파. 밖에까지 삼겹살 냄새하고 된장찌개 냄새가 진동하네. 진동해."

히죽히죽 웃으며 막내가 급히 들어온다.

"빨리 들어와서 상들고 방으로 들어와. 다 차려 놨으니까."

나는 안방에서 피우던 담배를 끄고 아들놈을 바라보며 말한다.

"우와 우리 할미 타이밍 한번 죽여주네.. 어찌 알고 점심때 온다니까 이렇게 딱 맞춰서 상을 차렸을까.. 하하"

상을 드는 막내는 마치 쌀 한 가마니를 드는 표정으로 '끙차'를 연발하며 상을 든다.

"맨날 오는 아들인데 뭘 이렇게 상다리 부러지게 진수성찬을 차렸을까. 우리 백여사 그새 이 아들놈이 보고싶으셨애요.하하하.그나저나 삼겹살에는 소준데"

막내는 상을 내려놓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가며 쏘주가 없는 것이 아쉬운가 보다.

"쏘주는 없고 수녀님이 사 온 막걸리 있으니까 막걸리랑 먹어. 허구한 날 글 쓴다고 방구석에 있으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이제 취직도 하고 장가도 가야지."

화장실에서 나온 아들은 매일 듣는 엄마의 잔소리에 이마가 살짝 찡그려지다가 이내 능글스러운 얼굴로 대답한다.

"에이 됐어요. 그리고 내가 무슨 취직을 해. 엄마 나 이미 작가잖아. 작가로 취직한 거라고 몇 번을 말해요. 작가가 직업이라고요. 그리고 책도 내고 더 유명해져야 장가를 가든 장가를 오든 할 거 아니에요. 이제 지겹지도 않수. 장가얘기."

"늬가 무슨 작가야. 변변한 책도 없잖아. 한의사 된다고 중국에 가서 그렇게 오래 있다 왔는데도 한의사는커녕 침쟁이도 못 됐잖아."

갑자기 욱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아들놈이 싫어하는 얘기를 늘어놓고 말았다.

"아요~ 그만 그만하세요. 맛있는 밥상 차려놓고 밥맛 떨어지게 왜 자꾸 속을 긁어요. 누군 한의사 되기 싫어서 안 해요. 시험을 못 친 데잖아요. 중국에서 공부한 것을 인정 못한데요. 정부가 한국 정부 놈들이요. 미친놈들 세계가 인정하는 중국의술을 지네가 뭐라고 인정하지 못해.. 중국 발뒤꿈치도 못 쫓아오는 놈들이."

격앙된 아들을 달래려고 막걸리를 따라 잔을 들어준다.

"알았어. 됐으니까 막걸리나 마셔. 늬가 좋아하는 가지요리도 했으니까"

아들은 가지요리 소리에 금세 얼굴표정이 환해진다.

"이 가지 엄마가 심은 거? 노인네가 텃밭도 잘 가꾸고 참 부지런해요. 난 게을러서 틀렸어. 아빠 닮아서 그런가 하하하"

"얘 늬 아빠가 얼마나 부지런했는데 아부지는 흰색운동화만 신으셨어. 반신불수로 한쪽다리를 끌고 다녀도 운동화는 다 늬아빠가 빨고 신고 다녔지."

"그런거만 부지런하면 뭐해요. 돈 버는데 부지런해야지. 그러고 보니 돈못버는건 내가 아빠 닮았나 보네. 하하"

말해놓고 자기가 겸연쩍었는지 아들은 막걸리를 쭉 들이켠다.

"늬 아부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착하기로 유명했어. 그래도 집안일 잘 도와주고 했으면 됐지 뭐."

"돈도 못 벌어다 주고 술 좋아하는 아빠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칭찬이슈. 울엄니 고생만 시키다 가셨는데"

"너 먼저 먹고 있어. 나는 맛있는 담배 먹고 올게.. 히히"

나는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