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자식들이 왔다 가고 집 앞마당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어느새 해는 떨어지고 풀벌레소리가 거리를 메운다. 음악을 연주하듯 왼쪽에서 찌르르 오른쪽에서 파르르 귀뚜라미인지 모를 벌레들.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소리가 이곳이 작은 골목도로를 낀 동네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담배를 힘껏 빨아 연기를 한 모금 삼킨다. 가슴이 확 틔는 듯한 느낌. 그래 그때도 이런 느낌이었어. 풀벌레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고 다르다면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아니라 반딧불이의 꽁무니 불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던..
장에 갔다 온 아버지가 오빠나 남동생도 주지 않은 박하사탕을 내 입에 쏙 넣어주시던 그때 그 밤.
목에서부터 가슴까지 화~하고 뚫리며 시원한 그 느낌.
왠지 지금은 담배연기에 박하향이 묻어나는 것 같다.
부모와 함께한 삼십 년
남편과 함께한 삼십 년
자식과 함께할 삼십 년
어머니와 아버지는 힘들어도 나를 사랑해 주셨다. 특히 아버지는 나를 참으로 아껴주셨다. 아마 그런 것 같다. 무수한 세월 속에 기억은 한여름 도로 위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려도 몸이 기억하는 내 유년시절은 행복했다.
남편과 함께 했던 시간은.
돌이켜보면 나는 내 남편을 사랑했다.
그 사람도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이발을 직접 해 주었다.
"우리 선희아부지 머리 깎아놓으니 새신랑 같은데."
내가 가위를 들고 이렇게 말하면 바짝 짧게 잘린 머리를 쓰다듬으며 비뚤어진 입으로 히죽히죽 웃는 모습이. 아마도 말은 제대로 못 해도 이런 것이었으리라.
'고마워. 당신이 내 옆에 있어 난 참 좋아.'
내 생각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웃음을 그렇게 기억한다.
그동안 세명의 자식들과 치열하게 살아왔다.
어린 자식들을 두고 풍으로 남편이 자리보전을 했으니 하긴 몸이 성했을 때도 끼니걱정은 내 몫이었지만.
선희아부지는 일보다는 술과 노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결혼하고 깡시장에서 배추장사에 담배행상에 별의 별일 다하다가 글도 모르던 내가 한국통운이라는 꽤 큰 회사의 주방장으로 들어간 것은 지금 생각해도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수십 명의 식사를 담당하는 구내식당의 주방장이 되어 참 열심히 일했다. 어렵게 얻은 일자리였고 그동안 해온 일에 비하면 너무나 좋은 일터 그보다 그때의 나는 절박하여 시키지도 않은 사원들 화장실 변기도 닦을 정도로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식당일을 해 본 적도 없었지만 나름 눈썰미가 있어 먹어보고 보았던 음식들의 기억을 되살려 보기 좋게 식당일을 꾸려나갔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보았더라도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시 나에게는 밑으로 두 명의 시다가 있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은 부식과 반찬들을 일을 마칠 때면 허리춤에 챙겨 나왔다. 듣기로 전에 있던 사람들은 해 먹어도 말도 안 되게 해 먹었었나 보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삥땅 아닌 삥땅을 쳤지만 돈을 남기려 하는 짓이 아니라 집에서 기다리던 애들에게 조금 더 먹일 요량으로 조금씩 가지고 나온 거다. 그렇게 챙겨 나올 때는 한국통운의 정문을 지나기가 어찌나 겁나고 힘들던지. 한 사람이라도 걸리면 이후를 생각하기 끔찍해서 우리 셋은 그만두더라도 셋이 동시에 그만두자고 약속했다. 한 삼년 살림을 잘 꾸려오다 시다한명이 몸이 안 좋아져 그만두게 되고 우리는 약속했듯 그 자리를 미련 없이 털고 나왔다. 듣기로 우리가 나오고 경리부 쪽 사람이 회사돈을 크게 도둑질해 전부서가 대대적 감사가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만둔 게 감사할 따름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계단을 딛고 올라간다. 잠깐 딴생각하는 사이 발을 헛디뎠다.
"순희야 비켜!!"
나는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순희가 다섯 살 때던가 집에서 간장을 끓여 머리에 이고 나오던 나는 찰나 문지방에 발이 걸리고 말았다.
문지방 앞에 순희가 앉아 놀고 있는 게 그 순간 눈에 들어오고 이대로 머리에 든 간장냄비를 쏟는다면 펄펄 끓던 간장은 내 딸을 덮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순희는 화상의 끔찍함을 피할 수 없으리라.
나는 간장냄비를 붙잡고 그대로 쓰러졌다. 내입은 문지방에 처박히고 이빨은 모두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틀니를 끼고 살아왔다. 사람이 음식맛을 혀로만 느낀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맛이란 놈은 입안 전체가 느끼는 거다. 틀니를 하고 입천장이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덮이는 순간 나는 제대로 된 맛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게다가 틀니로 인해 잇몸뼈가 녹아내리면서 이제는 음식을 씹는 거 마저 고통스럽다. 지금 나에게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맛은 고사하고 살기 위해 대충 삼켜버리는 행위다.
이렇게 몸은 하나하나 제기능을 잃고 전에는 느끼지도 못했을 불편감과 아픔이 하루하루 늘어간다.
삶이란 무엇일까? 그 삶 속에서 나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삶은 살아가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도 자식을 위해서도 아니면 돈이나 어떤 것을 위해서도 살아간다.
하지만 팔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삶이란 인생이란 그냥 사는데 의미가 있다. 부유하지 못하더라도 건강하지 않더라도 오늘이 지나면 또 내일이 온다. 그러면서 과거란 녀석이 추억이 되어 내 머리 내 마음 한편에 켜켜이 쌓여간다. 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보면 내가 있는 이 땅은 하나의 작은 조각에 다름 아니고 이 늙은이는 먼지보다 작은 존재다. 하지만 저 위에 떠있는 별이 오늘 빛나는 것과 같이 내가 지금을 살아가는 것 또한 그러하리라.
'하루꼬~하루꼬~'
아빠가 장에 갔다 돌아오신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내 이름을 부르신다. 아빠의 손에는 내가 갖고 싶었던 신발이 들려있다. 밤까지 문밖에 앉아 아빠를 기다리던 나는 아빠를 보며 두 손을 흔든다. 깜깜한 밤이지만 별빛에 달빛에 아빠의 모습은 또렷하다.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모습이 또렷하다.
지나간 아름답고 아련한 추억이 내 안에 별이 되어 또다시 오늘의 별을 부른다.
그래 다시 내일의 별을 보러 가자. 그것이 나 하루꼬 아니 춘자春子가 수놓는 별밭이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