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아역배우 아연
"컷!!"
감독의 말이 떨어지자 연기를 하던 배우들과 스텝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긴장한 몸과 마음이 해방됨을 자축한다.
"정감독님도 참 대단해. 어떻게 저런 꼬마한테 저렇게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시킬 수가 있지."
조명기구를 옮기는 스텝이 동료에게 조용히 말을 꺼낸다.
"야, 목소리 작게 해. 정감독님 성격 몰라 그래. 지랄 같은 성격이지만 드라마하나는 끝내주게 찍잖아. 작가한테 직접 얘기해서 아역배우 대사분량을 세배로 늘렸는데 저 꼬마도 대단하지. 쪽대본을 받고 바로 외워버렸지 아마."
여자 스텝이 장비를 정리하며 조명기구 스텝에게 말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마감독 정감독의 촬영방법은 마치 전쟁 같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쪽대본 수정은 그야말로 악명이 높다. 그런 정감독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은데 그것도 아역배우가 그것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연아 수고했어."
아연엄마는 촬영이 끝난 아연이를 데리고 타고 온 차에 오른다.
"근데 아연아 너 성적이 또 떨어졌어. 대본 외우는 실력이면 교과서는 한 번 보면 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말 듣고 있니?"
아연은 이어폰을 끼고 팝송을 듣는지 고개를 리드미컬하게 까닥거릴 뿐 엄마의 말에 대꾸가 없다.
'공부는 재미없어.'
아연은 음악을 들으며 혼자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 아연에게 학교생활은 지루함의 연속이다. 학교공부라는 것은 이해를 떠나 크게 보면 모두 암기과목이다. 수학이나 영어라는 과목도 백과사전을 보는 순간 사진 찍듯 외워버리는 아연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앵무새가 같은 말을 반복하듯 복사기처럼 쏟아내는 공부라는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험지를 받으면 마치 오픈북테스트처럼 답이 보이지만 나는 앵무새도 복사기도 아니다. 나는 아연이다. 그녀의 손은 시험지에서 답과 가장 먼 쪽의 번호를 고를 뿐이다. 그것이 아연이라는 사람을 아연으로 남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또래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은 좋지만 촬영날짜가 너무 빡빡해 그마저도 아연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