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밋대 리더

21. 베레쉬트

by 책날 백대백

일문은 새벽에 일어나 집 앞 공원으로 향한다.

무술을 좋아하는 일문은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참장站樁을 한다.

참장은 흔히 기마자세라고도 하고 스쿼트자세와도 비슷한 동작이지만 동양무술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는 수련법 중 하나다.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양팔을 앞으로 살짝 내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하체자세에서 머리와 척추를 세워 정렬을 맞추는 것이다.

오랫동안 해오던 일문이지만 예전에는 호흡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농부할배가 말씀하신 베레쉬트가 무엇인지를 묵상하는 것이 다르다면 다르다.

알 수 없는 존재로써 베레쉬트가 무엇이고 그 베레쉬트가 자신에게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농부할배에게 베레쉬트를 듣고 집에 돌아온 날 일문은 인터넷으로 베레쉬트를 찾아보았고

이 단어가 히브리어 성경 창세기 1장 1절에 처음 등장하는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

히브리어를 모르는 일문은 단어 하나하나를 찾아보았다.

베레쉬트는 태초

바라는 창조 하다.

엘로힘은 신神들

하샤마임은 하늘들

하아레츠는 땅

'이게 뭐야. 옛날얘기잖아. 신화와 관련 있나?'

별게 없는 내용에 일문은 조금은 실망한다.

하지만 농부할배의 말씀에는 분명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드러날 어떤 뜻이 있을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있다.

예전 그때처럼.


몇 년 전에 몸이 약하고 힘도 보잘것없었던 일문은 무작정 공원을 달렸던 적이 있었다.

달리다 보면 힘이 생길 거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또 달렸었다. 그때 나무밑에서 꼼짝 않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던 노인이 달리는 가운데 마치 지나가는 배경처럼 일문의 눈에 들어왔더랬다.

달리다 숨이 턱끝까지 올라온 일문은 그 노인 있는 나무아래에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때 움직임 없던 노인이 자세를 펴고 일문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달리니?"

헉헉 거리며 허리를 숙인 채 일문은 대답한다.

"쎄. 지. 려. 구요"

"그래 좀 세졌니? 힘이 세지면 뭐 하게?

노인이 귀여운 손자에게 말하듯 다시 묻는다.

"몸. 약하다. 고 놀리는. 녀석들 혼내주려. 구.. 요."

"내가 힘이 엄청 세지는 방법 하나 알려줄까?"

노인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한다.

"엄청 쎄진다구요?"

엄청이라는 말에 이제 숨을 제대로 쉬게 된 일문이 허리를 세우고 노인을 바라본다.

"내가 하는 동작은 기氣를 기르는 중요한 동작으로 참장이라고 한다. 내가 말한 대로 한 달만 해 보겠니?"

"근데 할아버지 기氣가 뭐예요?"

"기氣는 힘이고 에너지라고 하면 이해되려나? 허허."

그렇게 해서 일문은 공원노인으로부터 참장의 기본자세를 배웠다.

"아마 이 동작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무릎이며 허리가 많이 아프고 힘들 거야.

그래도 참고 계속하다 보면 한 달 후에는 네가 원하는 힘을 분명히 얻게 된다."

처음에는 노인이 말한 것처럼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끊어질 듯해서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만 참자라는 마음으로 계속하던 일문은 일주일이 지나자 허리와 무릎이 편안해지고 이후 손에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면서 하복부가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 달이 다되어가던 그때 노인이 일문에게 말한다.

"일문아 이 참장을 꾸준히 하다 보면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어.

그 힘은 너의 힘이면서 너의 것이 아니란다. 천지인天地人이라고 들어봤니?"

"천지인이요?"

"하늘과 땅과 사람이다. 사람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은 영물靈物이니 참장으로 얻은 힘 역시 천지우주로부터 얻은 힘이다. 그 힘을 사사로이 쓰지 말거라."

그날 이후 노인은 공원에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