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시간에 성경을 보면 여러 이적들이 나온다. 그리고 여러 믿음의 사건들의 연속된 기록들이 있다.
전에는 이스라엘민족의 역사와 설화를 나열했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과장되고 때로는 비유로써 쓰인 글이라고 생각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예수님이 여러 믿기 힘든 일을 하셨다고 해도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을 겪고 나니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화가 실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오늘 간증을 해야겠다고. 이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감동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의 생각과는 조금은 달랐다.
그냥 어떤 힘이 있을 것이라는 작은 믿음이 생겨난 거다.
하지만 아주 척박한 땅에 풀 한 포기 나지 않을 그런 땅에 싹이 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는 엄청난 사건인 것이다. 그 싹이 자라 어디로 귀결될지는 모른다.
그래서 간증을 했다. 하나님의 간증이 아닌 내가 겪은 것에 대한 나 스스로의 감동을 떠벌리는 그런 간증이었다.
"~~~~ 그래서 제가 느낀 것은 하나님이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의 힘이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는 겁니다."
나는 이렇게 간증 아닌 간증을 했다.
성경을 읽다 보면 그렇게 많은 이적을 경험하고도 시련이 닥치면 본래의 본성으로 돌아가 버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답답해 보였다. 하긴 예수님과 3년을 같이 동행했던 제자들도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임했을 때는 예수님을 부정하지 않았던가.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을 얘기하지 않아도 우리는 망각의 동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강렬한 감동도 희미해진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때도 있다.
밭에 심은 씨앗이 제대로 자라 열매를 맺으려면 농부는 하루하루가 바쁘고 애정을 가지고 가꾸어야만 한다.
제때에 물을 주어야 하고 싹이 어릴 때는 옆에서 맹렬히 자라는 풀을 정리해주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밭은 어느새 엉뚱한 풀이 점령하고 태양을 독식할 것이므로..
어느 정도 잎이 나고 줄기가 굵어져도 아직 벌레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 이럴 때 농부는 적당히 벌레를 몰아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게으른 농부다. 때로는 언제 무엇을 심어야 할지도 모르고 때로는 자신이 심은 씨앗을 잊을 때도 있다. 물을 주는 것도 잊고 주위의 다른 것에 관심을 쏟을 때도 있다. 그러나 아차하고 생각나 밭에 나가 보면 줄기는 말라비틀어져 있거나 혹은 벌레들의 놀이터가 되어 뜯기고 멍든 잎을 발견하기도 한다.
간증을 하고 시간이 지나 나 역시 그 감동은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1년이 흘러간다.
생활하기 바빠서 혹은 다른 유희거리가 내가 나의 밭으로 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도의 간디가 했다고 하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네 믿음은 네 생각이 된다. 네 생각은 네 행동이 된다. 네 행동은 네 습관이 된다. 네 습관은 네 가치가 된다. 네 가치는 네 운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