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날 백대백 Jun 10. 2024

낮은음 자리표

15. 가배상궁

카페 테이블에서 책을 읽던 지수는

깜빡 선잠을 자고 있다.


잠이 깨려는 순간 지수는 지금 있는 곳이 자신의 카페가 아님을 느낀다.


"내 말을 듣고 있는가? 나를 도와줄 수 있냐는 말이네."

비몽사몽 간 눈을 뜨기도 전에 들리는 여인의 목소리는 위엄이 있으나 외롭고 간절하다.


"가배咖啡차를 궁밖에서 끓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궁밖에 나가는 것도 차를 가지고 가는 것도

물론 만나는 사람도 모두 비밀로 해야 하네.

최상궁 나의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게."

여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한다.


지수는 눈을 뜸과 동시에 알게 된다.

지금 이곳에서 자신은 최상궁이라 불린다는 것을.

그녀는 왕의 음료를 담당하는 다음방茶飮房에서

최근 중국에서 들여온 가배차를 전문으로 하는

상궁이라는 것이 기억난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숙원 지씨다.


지금의 왕이 서쪽 섬마을에서 무지랭이로 자라다

갑자기 왕이 되자 그의 양어머니인 대왕대비가

마치 선물을 주듯 그 섬마을에서 왕과 함께 자란 지씨를 왕의 부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녀는 고향을 떠나 원하지도 않던 궁에서

외롭고 힘든 날을 보내고 있다.


대왕대비인 그녀의 시어머니는

그녀의 집안이 비록 양반가이나 몰락한 집안으로 촌구석에서 자란 그녀를 무시하고 구박했고

단지 왕의 후사에만 관심 있는 듯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신랑 범이,

그녀는 어릴 적 왕을 그리 불렀더랬다.

범이는 갑작스레 왕의 자리에 올라

처음엔 고향친구였던 자신에게 의지하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그의 양어머니인 대왕대비의

위압에 눌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자포자기한 듯 쾌락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씻으려는 듯 그녀 역시 왕의 기억 속에서 밀려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낮은음 자리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