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
수능이 끝나고
난생 처음으로 했던 아르바이트
그곳은 번화가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이었다
패스트하지 못하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곳.
고작 1살 많은 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갓 들어온 신입들에게 텃세를 부렸고,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쁘장한 아이들은
시기, 질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일을 못하는 아이들은
멍청하다고 욕먹기 일쑤였다
이래도 왈왈, 저래도 왈왈
마치 나르시시스트들의 집합소 같았다
3개월 차에 그만둘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어찌저찌 그 순간을 잘 넘기고 6개월쯤 지나니
전반적인 업무들이 한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텃세 부리던 언니들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어느새 난 최고참이 되어 있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멀티플레이'가 생명이라는 것을.
매장입구부터 카운터까지
길게 줄을 서서 미친듯이 몰려오는 손님들
내가 주문한 건 왜 아직도 안 나오냐고
화를 내고 재촉하며 따지는 사람들
오른쪽에선 4개의 튀김기가 번갈아가며
동시다발적으로 삐삐삐 울리는 소리,
안쪽에선 쿨타임없이 돌아가는 패티 굽는 기계,
그 앞에서 화끈화끈 불타오르는 얼굴.
키오스크가 없던 시절이라
미친듯 들리는 오더를 순서대로 기억하며
햄버거를 만들어내야 하는 신속성과 정확성.
미친듯이 바쁜 피크타임에
어떤 재료라도 똑 떨어지는 순간이 오면
단체로 비상사태.
그렇게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환경에서
하루이틀 일하고 줄행랑 치는 신입들이
거의 절반 이상이었고, 나는 거기서 4년을 버텼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감각이 초예민한 내가
그런 곳에서 어떻게 일했나 신기할 따름이다
그 당시 난 내가 HSP인 줄도 몰랐다
온갖 자극들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수많은 스트레스와 맞서 싸웠다
사실 살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일을 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살기 위해 했던 일이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서서히 죽이고 있었다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49kg였던 체중이 42kg로 줄었고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나는 나를 돌보지 못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초기에 병을 발견하여
휴직을 하고 그동안 방치했던 나 자신을 돌보게 되었다
독한 약들을 6개월간 삼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시인 이상처럼 요절할 뻔했다고.
그동안 타인을 위해서만 살았지
나는 늘 뒷전이었다
순간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는 그동안 무조건적인 인내가
미덕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인내의 결과는 처참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오래 입고 있으니
나도 모르는 새 서서히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죽을 만큼 힘들면
정말 죽어버릴 수도 있겠단 생각에
죽음 대신 퇴사를 선택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나약하다 말할 수 있겠지만,
저마다 받는 데미지는 결코 균일하지 않다.
나처럼 초민감자인 사람들은
집밖을 나가는 순간, 온통 지뢰밭이다.
이 고통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어느 순간 타인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귀찮아졌다.
그저 홀로 답답한 마음을 글로 해소할 뿐.
내가 타인의 고통의 크기를 정확히 알 수 없듯
타인 또한 내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모든 고통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남들도 그 정도는 다 해."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아."
그건 당신 생각이고.
하나도 와닿지 않는다
그때부터였을까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살겠노라
남들의 기대에 애써 부응하며 살지 않겠노라
다짐하게 된 것이.
내 기질, 성향, 가치관에 맞게
내 라이프 스타일을 꾸려나가는 것
결국 정답은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