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늘은 월요일이다.
섬유근육통 환자를 위한 치유의 메시지를 드리고자 합니다.
소설로 엮어본 섬유근육통 극복기를 지금부터 연재합니다.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어 간절히 기도했고, 너무나 자주 반복되는 좌절과 절망 속에 수없이 무너진 날들이었다.
이 싸움은 체급도 없는 것 같다. 때리는 대로 맞다 보니 정신은 혼미해지는데 경기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는 끝내 울리지를 않는다.
그동안 참 많은 병원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드디어 무공훈장처럼 받아 든 진단명은 ‘섬유근육통’이다.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온탕과 냉탕, 냉정과 열정사이를 오가며 희망과 절망 속에 살아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그런데 섬유근육통이란다. 원인도 없고 더구나 치료방법이 운동이라니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다.
그동안 나의 몸은 다중인격자처럼 정체성이 혼란했었다.
질병이라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도 이름 붙일 수도 없기에 용하다는 곳들을 돌아다니며 이름표를 수집해왔다.
삼차신경통, 류마티스성 관절염, CRPS, 근막통증증후군, 과민성 방광 증후군, 담적, 이제는 나이가 제법 차서인지 갱년기라고 했다.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이름도 없을뿐더러 진단의 과정과 치료가 신통치도 않았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 나빠질까 봐 조금만 더하면 좋아지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병원 문턱이 닿도록 어제도, 오늘도 물먹은 솜뭉치 마냥 무거운 몸을 이끌고 대문을 나서고 있다.
존 템플턴 경이 영어에서 가장 값비싼 한마디는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t’s different!’)라고 한 말이 가슴이 시리도록 공감이 간다.
이병원은 다를 거야, 이번에는 좋아질 거야라고 내심 생각했던 희망의 씨앗은 어김없이 말라죽어버린다.
어렵게 받아 든 대학병원 검사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에 들어갈 때 나는 한편으로는 사형선고가 내려지길 내심 기대했다.
피를 몇 통을 뽑아도, 차디찬 기계에 아무리 오래 누워있더라도 견뎌낼 수 있었다.
반드시 이번에는 숨겨져 있던 암이라도, 하다 못해 단 하나라도 비정상인 곳이 있다는 증명이 내려지기를 간절히 기대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정말 꾀병이었을까? 다 내 탓일까?
섬유근육통이라는 훈장을 받아 병원을 나서는 길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긴가 민가 하다.
현실감이 사라졌다. 툭하면 터졌던 눈물샘도 이제는 말라버렸다.
나의 고통과 불편함을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보다도 이제는 증명만이라고 하고 싶었다. 나도 환자라고 말이다!
죽더라도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필이면 오늘은 내 아이와 날짜가 똑같은 나의 43번째 생일이다.
섬유근육통이라는 훈장과 함께 말짱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가 가족들을 봐야 한다니 어이가 없다.
문득 뭉크의 비명이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그림 속의 주인공은 무슨 일이 있어서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지르는 비명이 아니다. 그의 얼굴에서는 일상적인 피곤, 우울, 절망, 불안이 모두 섞여 있다.
그것이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어서면 그의 눈에 비치는 세계가 일반화, 삭제, 왜곡되어 버린다. 누구에게는 아름다워 보이는 풍경과 일상이, 날카로운 바늘과 칼로 후비는 형태로 그의 몸과 마음을 위협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족은 물론 주위의 친구들이 알리가 없다.
처음에는 다들 걱정해 주고 다독여 주지만, 금세 꾀병 부리지 말라고, 엄살 부리지 말라고 다그치며 나를 공격한다.
어느덧 내편은 없어져버렸다.
소통은 온데간데없고 철저히 소외된 채 관계는 멈추어버렸다.
내 깊은 내면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무서운 비명에 삶의 끈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간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가장 나를 무겁게 하는 것은 사랑하는 아이다.
이런 나도 내가 싫은데, 나를 닮아가는 아이를 보면 너무나 걱정이 된다.
남들은 아무렇게 하는 일들이 나에게는 이렇게 힘이 드는지 나 자신이 점점 더 싫어진다.
더구나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해줘야 할 소중한 시간을 섬유근육통 증상 때문에 백지상태로 보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모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일들이 유전이 될 수 있다고 하니 너무나 불안하고 미안하다.
내 아이가 나와 같은 통증의 굴레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한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항상 그렇지만 불면의 밤중에 TV를 틀었더니 UFC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잔뜩 날이선 눈빛과 터질 듯한 근육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TV 너머로 전달된다.
어찌 보면 링 위의 선수들과 나는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오히려 더욱 치열하다.
이 싸움은 체급도 없다. 말리는 사람도 없고 응원해주는 관중도 없다.
때리는 대로 두들겨 맞다 보면 다음 경기는 찾아오지 않는다.
누군가 말리지 않으면 죽는 상황이다.
이미 지쳐 쓰러져 있는데 땡땡땡하는 종료종은 울릴 줄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다시 돌아오질 않을 43세 생일을 견뎌냈고 앞으로도 내 인생은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