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 속의 화초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Prologue : 우리 아빠에 대하여

by 다시 봄

아빠는 항상 내 곁에 있는 존재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빠는 23년 4월 뇌에 악성 종양 (암)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고, 9개월이 채 되지 않은 12월에 내 곁을 떠났다.

그 후로 시간이 흘렀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23년 12월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이제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아빠를 글을 통해 남겨보고자 한다.





"딸아, 마음이 그렇게 여려서야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래?"

아빠가 좀 혼내자 눈물부터 흘리는 나를 보면서 한 말이다.

아빠가 내게 했던 말들 중에서 요새 들어 가장 많이 생각나는 말이다.


아빠의 어머니이신 할머니는 아빠가 젊었을 적 일찍 돌아가셨는데, 아빠가 전에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살면서 기쁠 때는 할머니 생각이 별로 안 나는데 힘들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왜 이렇게 많이 나는지 모르겠어~"

나도 힘들 때마다 아빠 생각이 절로 났고 그래서 아빠의 '마음이 여려서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래'라고 했던 말이 계속 떠올랐나 보다.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난 행복할 때도 아빠 생각이 너무 많이 난다는 점이다.



우리 집의 삼 남매 중 위로는 쌍둥이 오빠 두 명에 막내딸이었던 나는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고 집에서의 내 별명은 온실 속의 화초였다. 이 별명으로 알 수 있듯이 가족 품에서 지금껏 편안하고 안정되게 살아왔었다.

아빠의 사랑은 모두 내 차지였고,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어디를 가던지 나를 항상 데리고 다녔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아빠가 나중에 사업을 하실 때도 회사 이름을 내 이름 그대로 지으셨고 항상 아빠 주변 지인분들한테 딸바보 소리를 들으셨다. (오빠들의 이름은 한 글자도 안 들어가서 섭섭할 만 한데 착한 오빠들은 괜찮다고 하였다.)


아빠가 계실 때까지만 해도 난 온실 속의 화초였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게 지원해 주셨고, 그래서 아빠한테 더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아빠의 메모장 (아빠는 우리에게 이렇게나 해주고 싶은게 많았나 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빠의 핸드폰을 확인하다가 아빠가 얼마나 우리를 생각했었는지 한눈에 보이는 메모장을 보고는 정말 내내 펑펑 울어버렸다. 그동안 정말 메모에 적혀있는 대로 해주셨고 또 하려고 노력하셨다.


사촌언니가 언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건, 힘든 일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 같아."

나도 어느덧 그런 나이가 된 걸까? 겉으로는 밝은 척 잘 지내고, 속으로는 힘든 일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다.


어딘가에서 나처럼 혼자 힘들어하고 있을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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