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여느 때처럼 가족과 캠핑을 갔다.
맛난 저녁식사를 하고 나무테이블을 닦는 도중, 날카롭고 얇은 무엇이 쿡 하고 나의 손가락을 찔렀다.
손가락을 펼쳐 찬찬히 바라보니 나무가시가 박혀있는 것을 보았다.
'손가락에 가시 박힌 것쯤이야' 하고 쉽게 생각했다.
가시 박힌 것을 야무지게 빼내왔던 그간의 경험들이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주위에 가시를 빼낼 도구도 마땅찮았기에 요리조리 조물조물 손가락을 눌러가며 빼보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가시는 더욱 깊이 박혔다.
노력이 클수록 나의 손가락도 덩달아 빨갛게 부풀어버렸고 결국 가시는 깊숙이 들어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연고를 바르고 대충 밴드를 붙인 후 나는 며칠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도 가시는 보일 기미가 없고 손가락은 빨갛게 부풀어만 갔다.
낫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무렵, 슬슬 걱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유튜브와 검색창에 가시 빼는 법을 수도 없이 검색하고 알아보았지만 보이지 않는 가시를 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지난 세월 동안 아무것도 아니었던 '가시 같은 하찮은 것'이 나를 두렵게 했다.
그렇다고 병원에 가는 것은 더욱 싫었다.
지금 부풀어 오른 나의 손가락의 아픔보다 병원치료의 아픔이 더 클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파상풍과 나무의 유기질로 인해 손이 괴사 되어 결국 수술하는 동영상까지 찾아보고 난 후 나의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참나, 이까짓 가시 때문에 손가락에 칼을 댈 수도 있구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았던 작은 나무가시 따위가 이렇게도 큰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려움이 찾아왔다. 이놈의 가시 때문에......
결정을 내리고 대처방안을 간구해야 했다.
손이 썩든지, 병원에 가서 절개를 하고 가시를 빼내던지 말이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봤지만 가시는 보이질 않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절개를 해서 가시를 찾아보자고 하셨지만, 가시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시는 말씀에 망설여졌다.
항생제를 먹고 주말까지 기다려 본다음 다시 내원하라는 처방을 내리셨다.
간단한 소독을 해주시고 손에 두툼한 밴드를 붙인 채 집으로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가시 따위가 이렇게 큰일을 만들 줄 몰랐다.
나와 가족의 손 발에 박힌 작은 가시쯤은 너끈하고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지난날, 아주 쉽게 해결했던 수많은 일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잘 처리해 왔던 그것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쉬웠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손가락에 박힌 작은 가시처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많은 일들을 성공하기까지,
나에게 많은 행운과 주위의 도움이 따랐다는 사실 말이다.
작은 가시로 인해 나는 다시금 겸손해질 수 있었고, 작은 일상에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끼는 사소한 것들이 나에게 크나큰 두려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작은 것이라고 쉽게, 함부로 생각하고 대할 것은 그 무엇도 없다.
누가 알아주길 바라지 않고 길가에 핀 작은 꽃들에게 생명의 위대함과 기다림, 겸손을 배우고,
그동안 당연히 여겼던 일들과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미안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그것을 내가 당연하게 느끼는 순간,
그것은 하찮은 존재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이 세상엔 참으로 당연한 것은 없다.
그저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