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각자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똑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긍정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부정으로 삶을 바라보기도 한다.
나막신과 짚신을 파는 두 아들을 둔 어머니의 예를 들어보자.
이 어머니는 두 아들로 인해 마음의 걱정이 바람 잘 날 없다.
비가 오면 짚신을 파는 아들이 공을 칠까 걱정을 하고, 맑은 날은 나막신을 파는 아들의 장사가 걱정되어 밤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걱정하는 어머니의 사연을 들은 어느 노승이 어머니에게 '생각의 전환'이란 지혜를 전해준다.
맑은 날은 짚신을 파는 아들이 장사가 잘 되어 기쁘고, 비가 오는 날에는 나막신을 파는 아들이 장사가 잘되어 기쁘다.
이 일화는 우리에게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
외부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은 지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야 행복할 것인가?
진정한 행복은 어떤 환경이나 바라는 것이 이루어져야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겪고 있는 것이 시궁창 같은 현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을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에서부터 행복할 수 있다.
지금까지 당신이 어떤 것을 선택하며 살아왔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고 생각하며 살아가느냐 이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작가가 인터뷰 도중 이런 말을 했다.
'희망의 특성은 그것이 어두운 곳에서 솟아난다'는 것이었다.
이미 전부를 갖추고 밝으며 행복하고 만족한 곳에서는 희망은 필요치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가장 어둡고 처참한 환경일 때 희망은 조금씩 솟아나게 되는 것이다.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삶의 어둡고 컴컴한 터널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 중 어떤 이는 희망을 보고, 어떤 이는 체념을 한다.
또 어떤 이에게는 안될 것을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해 희망이 고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쉽지 않다.
그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희망까지 버린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우리의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어렵고 힘들다고 체념하고, 포기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당신은 지금 어둡고 컴컴한 인생 터널을 지나고 있는가?
너무 깊게 들어와 어디가 입구이고 어디가 출구인지도 모른 채 길을 잃었는가?
가장 어두운 새벽 끝에 동이 튼다.
당신에게 원대한 희망을 품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단지 이 단순한 진리를 당신이 마음으로 받아들이길 바랄 뿐이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그 길을 당신이 걸어간다면 한줄기 희망만큼은 버리지 말라.
지금 당신이 서있는 곳이 가장 어두운 곳이라면,
바로 그곳에서 실낱같은 희망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당신이 원한다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다.
그것이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미래의 방향으로 옮겨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