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우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왜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우며 살아가야 할까?
'배움'이란 새로운 지식이나 교양, 기술을 얻고 익히는 것은 물론 남의 행동이나 태도를 본받아 따르는 것을 말한다.
갓 태어난 아기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순수한 상태이다.
걷는 것을 알지 못하던 아기는 부모의 격려와 가르침, 도움으로 걸음마를 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에게 필요한 새로운 지식과 관계를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어른이 되어간다.
배움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스스로 선택해서 배우는 것과 다른 하나는 삶을 살면서 겪는 경험으로 배우게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배우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이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 중에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그 말을 흔히 타인에게 한다.
하지만 그 가르침은 타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알라는 뜻이다.
그래야 자신이 얼마나 아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알아 갈수록 자신의 어떤 것이 부족한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알게 되고 배워야 할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는 만큼 보이며,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 자신의 삶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할수록,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면 그만큼 삶에서 잘못된 사고와 행동을 하게 되는 일들이 잦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삶의 고통과 슬픔, 좌절과 불행으로 이어진다.
당신에게 삶의 고통이 찾아왔다면 생각해야 한다.
당신이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당신은 무엇을 모르고 살았는지,
당신은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말이다.
'삶의 고통'은 당신의 무지와 방관이 가져다준 결과이다.
'무지'는 당신을 옳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하고 옳지 못한 결정을 하게 하며, 옳지 못한 행동을 하게 한다.
결국, 당신에게 고통이 찾아오고 그대로 고통의 대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 괴로움을 통해 당신이 배우지 못한 다면, 세상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될 때까지 또 다른 형태의 고난과 고통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타인을, 사회에 고통을 주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말라.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잘못된 것을 행하면서도 알지 못하기에,
그릇된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은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 착각이 결국 또 다른 고통을 불러온다.
'당신의 무지'를 알아차리는 것이야 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나비효과'가 될 수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금 당신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오늘 하루, 당신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