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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SU Aug 17. 2021

잠시 머물어도 좋은 책과 공간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이 만들어 낸 향락의 일부분이라 생각했다. 삶이 팍팍했던 유년 시절. 책에 빠져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엄마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는 열혈 꼬마는 없었다. 백과사전이라고 해서 누렇게 된 표지가 살짝 떠오르긴 하지만 그 흔한 명작동화, 전래동화를 읽었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중학생이 되고 드디어 문학에 눈을 뜬 소녀가 세계 문학 소설을 읽고 있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도 없었다. 주로 도둑과 탐정의 쫓기고 쫓는 추리소설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는 했지만 말이다. 고등학교 가서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책을 가까이하지 않아도 명분은 충분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지만 철학 책을 파고드는 일은 전혀 없었다. 놀 게 너무 많았고, 주어진 자유를 즐기기에 시간은 늘 부족했다. 발령을 받고 아이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또는 직장인으로서 자기 계발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교사로서 덕목을 쌓아갔다면 얼마나 바람직하겠는가. 일 년 내내 노량진에서 책과 싸움을 했던지라 적당한 거리는 정신적으로 필요하다는 논리로 책은 그렇게 또 멀어져 갔다. 초임 시절 장학사님이 선물해 주신 책을 장식용으로 책꽂이에 꽂아 두었고, 10년이 지난 후에 펼쳐보았다. 초임교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준비해 주셨다는 것을 강산이 변하고서야 이해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만들어봤다. 매년 독서 인구 감소시키는 구성원으로 큰 역할을 한 셈이다.


딱 40년을 저렇게 살았다. 어릴 적 기억은 많지 않지만 별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흔이 된 어느 날 우울감에 벗어나고 싶어서 집어 들었던 책, 지금은 하루에 한 페이지라고 읽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읽어내는 속도와 책이 출간되는 속도가 전혀 맞지 않기에 엄청난 양의 책을 읽거나, 어려운 책을 읽지는 못한다. 지금도 읽기 쉬운 책을 꺼내들고 내 속도에 맞게 읽어 내는 책이지만 책을 펼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쉽게 펼친 만큼 덮는 것도 쉬운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즐겁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그림책도, 내가 읽는 한 구절의 이야기도 마음에 닿으면 된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공간에도 집중하게 된다. 책이 많은 공간, 책과 공간의 특별한 조화, 책과 커피, 다양한 스토리가 있는 곳 등을 찾게 되고, 가고 싶은 여행지 리스트에 올려지기도 한다.  오늘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오픈 시간에 맞춰 간 곳은 북 카페였다. 늦잠 자는 아이들을 깨워 차에서 도시락을 먹이고, 30분가량 운전을 해서 도착한 이곳은 좋아하는 커피향과 책 냄새를 동시에 맡을 수 있는 곳이었다. 3시간가량 아이들과 정신없이 책을 본 후 다른 일정이 있어 아쉬움을 가득 안고 나왔던 그 공간이 오늘 기억 언저리에 남아 하루를 채운다.


독서의 기적, 독서로 삶의 변화 등 인생의 반전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 많이 있다. 그에 반해 나라는 사람은 독서로 인해 인생을 역전시키는 드라마는 쓰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책이라는 산이 높아서 한계단이라도 올라가 보려고 애를 쓸 뿐이다. 귓가에 스치는 책장 넘기는 소리, 오래된 책에서 나는 습한 냄새, 책꽂이에 줄지어 꽂혀 있는 당당한 모습에 마음을 뺏기는 경험이 즐거워 책이 보이는 공간마다 엉덩이를 붙여본다. 잠시라도 나를 내려둘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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