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모든 이들에게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당신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별생각 없이 읽어 내려갈까, 아니면 이래저래 서운한 마음일까.
혹은 아주 개운할 수도 있겠구나.
저는 일종의 각오와 함께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아주아주 솔직해질 각오.
그렇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나를 꾸미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으니, '추하게 솔직한 표현'들은 빼고 '세련된 솔직함'만을 고를지 모릅니다. 다만 그게 무엇이든, 이 편지에 써 내려가는 저의 생각과 마음이 더하거나 덜하지 않고 당신께 온전히 전해지기를.
저는 우리의 헤어짐을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습니다. 평소엔 의식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정말 그랬습니다.
어쩌면 그게 가장 큰 문제였을까요.
그래서 당신과의 헤어짐을 맞이했던 그 순간엔 상황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어요.
그때 쏟아지던 눈물은 아마 선명한 감정의 근거가 있다기보다, 순수한 당혹감의 형상이었을 겁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마치,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막 깨어나 앞뒤 필름이 끊겨버린 환자처럼, 흐릿한 정신을 붙들고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웠어요.
우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지금 이곳은 어디인지,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막막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저는 조금씩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있잖아요.
당신에 대해 떠올릴 때면
저는 좋은 기억들뿐입니다.
반면에 우리에 대해 떠올릴 때면
참 미안한 기억들뿐인 거예요.
영원할 것만 같은 일상을,
그래서 소홀히 대하는 것처럼
'나는 우리의 찬란했던 모든 순간들을 소중히 했는가’라는 물음에, 저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서
그래서 참 괴롭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여태껏 나 같은 사람 옆에서 늘 따뜻하게 웃어줄 수 있었을까.
당신과의 추억을 하나하나 더듬어보면서, 일상을 소중히 그리고 충실히 보내보려 합니다. 당신이 떠난 그곳에 그대로 있기에는, 나 자신이 점점 더 싫어질 것 같아서요.
진작에 좀 이럴걸, 참 늦었지요?
전 여전히 지금도 당신 덕분에
후회하고, 반성하고, 성장하네요.
이런 당신을 제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때는 우리의 헤어짐이 갑작스러운 이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예보 없이 찾아온 소나기처럼 말이에요. 속절없이 내 곁을 떠나 안녕이라는 인사도 못 해 억울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신은 다만 짐짓 모르는 척했지만, 아마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심지어 저 몰래 당신 나름의 인사를 남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이 헤어짐은 이별이 아닌, 작별이었을까요?
다만 저는, 이제야 비로소 당신께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당신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런 의도로 얘기하는 건 아니고
담담해 보이려는 것도 아니고 진심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쓰다 보니 좀 길어졌네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