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엄마

게임

by 이도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언제부터 게임을 좋아했는지, 그 처음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치 오래된 연인 같다고 해야 할까. 오래된 연인과의 첫 입맞춤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이런 감정일까. 절실히 떠올리고 싶은데, 너무도 자연스레 이어진 둘의 처음은 늘 흐릿하다.


참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나이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등교하기 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했다.

내가 골똘히 화면 속 세상에 집중하고 있으면, 어머니는 언제나 컴퓨터 앞에 아침상을 차려주곤 하셨다. 밥상을 내 앞에 놓아주실 땐, 늘 덤덤한 표정으로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아침 일찍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에 몰두하고 있을 때면, 거실 TV에서는 종일 ‘청소년 게임 중독’이라는 사회문제를 두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과 사회자가 서로의 얼굴에 침을 튀겨가며 떠들고 있었다.


그 시절, 그들은 분명 내 인생의 거대한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어머니는 딱히 신경 쓰시지 않는 눈치였고, 결국 그들은 서로의 얼굴에 침을 뱉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특이한 어머니였다.


시간이 지나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친구들은 하나둘 각자의 집이 아닌 PC방에 모여 게임을 즐겼다. 다들 집에 번듯한 컴퓨터 한 대씩 있으면서도, 왜 돈 써가며 PC방에 갔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에 가면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든가,

집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다든가,

혹은 맛있는 라면을 몇 번의 간편한 클릭으로 먹을 수 있다든가,


이런 여러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 공간에서 만큼은 '부모님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부모님 눈치를 살피는 그런 종류의 아이가 아니었으나, 이런 나조차도 부모님으로부터 PC방에 가는 걸 제지당하는 친구들을 지켜볼 때면, 막연한 걱정이 들었다.


나도 집이 아닌 PC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해보고 싶었다.


분명 어머니 몰래 그곳을 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때면 어김없이 '밥상을 차려주시던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결국 결연한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PC방에 가겠다는 '통보'를 전했다.


“옆집 누구도 가고, 이제 나도 중학생이 됐고 어쩌고 저쩌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구차한 이유들을 늘어놓으며 '나도 이제는 PC방에 갈 수밖에 없다'거나, 혹은 '가도 된다'는 당위들을 마구 늘어놓았다.

덤덤한 표정으로 내 말을 듣던 어머니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갑에서 5,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걸로 라면이라도 사 먹으면서 놀아. 괜히 굶지 말고.”


라면은 고사하고 PC방에만 갈 수 있다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던 나는, ‘엄마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가야겠다’는 생각에, 감사의 말도 잊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PC방으로 향했다.


당시 PC방은 어두운 조명 속의 무서운 형들과 자욱한 담배 냄새, 중학생인 내가 감당하기엔 참으로 낯설고 해로운 것들뿐이었으나, 그날만큼은 왠지 무서운 게 없었다.


5,000원이 아닌, 세상을 쥔 기분이었다랄까.


이 5,000원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물리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PC방에 도착한 나는, 어머니로부터 허락을 얻었다는 자랑과 함께 5,000원을 친구들에게 자랑스레 내보이며 어깨를 잔뜩 올리고 우쭐대며 게임을 했다.


아아, 정말 잊을 수 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참 오래도록 게임을 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던 ‘중독된 아이’가 되지도,
그들이 걱정하던 어른이 되지도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 자라났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게임을 하던 아이는 어느새 수능 공부도 하고,
입시를 지나 사회인이 되었으며,
이제는 부모님께 한 달에 한 번쯤 안부를 전하는 그런 평범한 어른이 되었다.


언젠가,

어머니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한 통 왔다.

사용하시던 휴대폰이 망가져서,
혹시 예전에 내가 쓰던 폰이 있다면 보내줄 수 있겠느냐는 조심스러운 부탁이었다.

그때 문득, 이유 모를 짜증이 올라왔다.


“뭘 쓰던 걸 써, 그냥 사줄게. 무슨 쓰던 폰을 달래…”


어머니는 아들 돈 쓰는 게 싫다며 자꾸만 고집을 부렸으나, 이유 모를 짜증이 괜히 평소엔 안 부리던 고집을 나에게서 끌어냈다.


“좀, 요즘 휴대폰 안 비싸. 싼 걸로 사다 줄게. 새 거 써 좀.”


그제야 마지못해 어머니는


“그래, 그러면 아들이 알아서 해” 하시더라.


어머니,


당신이 차려주신 밥상과,

손에 쥐어주시던 5,000원으로

저는 이 험한 세상

한평생 살아갈 힘을 얻었는데,


고작 제가 당신 손에 쥐어드릴 수 있는 게

자그마한 기계 덩어리뿐이라, 죄송합니다.


그런 작은 물건 하나로 당신께서 주신 마음을

갚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조차 미안해하며 받지 못하는 당신에게

짜증이 나는 그런 아들이라,

그래서 더 밉습니다.


당신이 주신 마음에 비하면

내가 돌려드리는 것은 너무 초라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살아가며

당신이 남긴 작은 사랑들을 떠올리고

조금씩 닮아가려 노력합니다.


사랑합니다.


나는 여전히 게임을 좋아한다.

언제부터 게임을 좋아했는지, 그 처음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분명 엄마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내 안에 남아 있어서, 그래서 더 좋아하게 된 것이리라.

언젠가는 이 마음이

조금이나마 당신께도 전해질 수 있기를,


그리고 그렇게, 우리 모두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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