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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Jul 18. 2022

S1. 코로나 일지

#5. 빌런의 출현

# 2020년 1월 20일


“야 코로나 확진자 나왔다!”

“헐 설마..”

“진짜? 누구? 뭐야? 어디서?”


와. 설마 하던 국내 1호 확진자가 나왔다. 19일 우한에서 입국한 중국인 여성이었다. 1호 확진자는 발견 즉시 바로 격리가 되었고, 휴대전화 GPS, 신용카드 및 교통카드 사용 내역 등으로 밝혀진 이동 경로를 따라 밀접 접촉자를 완벽히 통제 중이라고 했다. 언젠가 뚫릴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날이 오더라도 깜짝 놀랄 것 까진 아니겠지하고 점잖은 리액션도 정해놨는데 막상 확진자가 나오니 “뭐야 뭐야 뭔데!” 점잖음, 차분함 그런 것 없이 우리는 모두 호들갑 떨며 흥분했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성적일 수 있었다. 와다다 뛰던 심장 박동이 슬슬 가라앉고 나서야 느껴지는 고요 뒤의 불안감. 조용한 순간을 타고 현실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진짜, 진짜 확진자가 나타났다.


 정부는 곧바로 위기 경보를 ‘관심’에서 ‘주의’로 상향 조정하였고, 우한 발 입국자에게서만 진행하던 조사를 중국 발로 변경하여 조사하기로 했다. 당시 중국은 1910년 동북 지역의 페스트에 대해 완전 통제 및 봉쇄로 종식한 경험을 토대로 우한 지역을 완전 통제하는 방법을 선택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한 폐렴은 계속 퍼져나가서 국가별 우한 폐렴에 대한 방역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은 중국으로 여행 자제 권유를 발표하였고 이는 임시방편임을 언급했지만 누구든 이 임시방편이 상향 조절될 수 있음을 뜻하는 걸 알았다.

 정부의 움직임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만큼 병원에는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나는 당시 치프로 주중 오전에 진행되는 회진에 항상 참석했다. 회진은 미시적으로는 현재 응급의료센터 상황에서부터 거시적으로는 병원 내 정책 및 관련 뉴스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는데, 당연히 회진의 단골 주제는 우한 폐렴, 그날은 '코로나 첫 확진자의 국내 입국'이 주요 논의 주제로 이야기꽃이 피었다.


"우리 응급실은 어떻게 하죠?"
“우리는 어디까지 통제해야 할까요?”

“우한 발 입국자의 주변인은 어디까지 통제해야 하나요?”
“1339(보건 당국)는 뭐라고 하는지 아직 연락 없지요?”


오늘의 응급실은 당일의 회진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하루 다르게 바뀌는 정부의 방향과 이에 대한 현실적인 임상 적용에 대해 의견을 모으는 것이 그날 회진에서 해야 할 일이었지만 당장 정하기 불가한 것들도 있었다.


"안 그래도 오전에 회의가 잡혀있습니다. 확인 후 알려드리겠습니다."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과장님이 회진을 정리하셨다. 하루에도 수시로 우한 폐렴에 대해 회의가 열리는 듯했고, 회의가 끝날 때마다 변경사항이 카톡방에 공지가 되었다. 응급의학과 특성상 24시간 의료센터를 유지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24시간 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프로토콜이 수시로 업데이트되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로 갈수록 과장님의 살이 쪽쪽 빠지는 걸로 보아, 상부 회의의 분위기가 썩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럴 때 치프가 해야 할 일은 최대한 사고 치지 않고 문제 일으키지 않는 것이었다.


"치프, 뭐 보고할 환자 있니?"
"아니요, 없습니다."
"그래, 그럼 회진 여기까지 하지."


 정말 중대 사고가 아닌 이상(보통 이럴 경우, 다이렉트로 과장님께 보고가 되기 때문에 회진에서 굳이 먼저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보고 드려야 할 환자는 있어도 없었고, 없어도 없었다. 그만큼 우한 폐렴은 무겁게 다뤄지며 우리의 숨통을 눅눅하게 만들었으며 응급의료센터와 감염관리실을 중점으로 본격적인 '코로나 프로토콜'이 만들어졌다.


 애초에 우리 응급의료센터는 정부에서 지정한 우한보다 넓은 범위인 우한 및 중국 츠난 시 입국자를 코로나 감염 가능환자로 정하고, 진료를 진행했다. 하루 2 ~ 3명 정도 꼬박 해당 환자들이 응급실을 방문했는데, 격리 구역(음압 시설이 설치된 구역) 진료 후 근육 주사나 약 처방이 진료 대부분이었으며, 이마저도 최소한의 의료 인력만으로 해결하도록 애썼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환이 응급실에 온 적은 없었지만(그 정도 되면 미리 보건 당국에서 알고 지정 병원으로 안내하였다), 혹시라도 '코로나 중환자'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 '일반 코로나 의심환자 진료 프로토콜' 외 '중환 코로나 의심환자 진료 프로토콜'과 같이 세부 가이드라인도 속속 만들어졌다. 정부의 지침보다 과한 프로토콜을 진행한 것은 응급의료센터에서 쓰일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공지되기 전이기도 했지만, 메르스를 겪어본 교수님 세대의 기억을 토대로 설마 했던 환자가 새어나가 더 큰 감염 집단으로 이어졌던 과거를 다시 답습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점점 오전 회진이 길어졌다. 나이트 근무 직후에 회진에 들어갈 땐 한층 느려진 눈을 꿈뻑이며 개발로 회의록을 작성하다가 꾸벅꾸벅 졸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날은 코로나 진료 체계 수립 과정을 직관할 수 있어서 꽤 흥미로웠다. 회의에는 별별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한 발 입국자와 길에서 스쳤다는 사람의 가족이나 친구도 확진자 접촉자로 분류해야 하느냐 마느냐로 회의했던 적도 있었고, 생각보다 기상천외한 내용들이 많아서 나중에 회진을 복기하며 킥 하고 웃기도 했다.


 회진이 거듭되며 어느 정도 우리 병원의 프로토콜이 골격을 드러내고 정리가 되어가자 '다른 병원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하는 궁금점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 병원만 이렇게 과하나? 다른 병원은 어떻게 하지? 애초에 응급실의 진료 플로우(flow)가 병원마다 상이하니, 코로나 진료 프로토콜도 다를 것이다. 친한 교수님 피셜로는 '대부분의 응급의료센터에 아직 메르스 근무 의료진이 의료 현장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을 토대로 전염병에 대처 시스템에 대한 큰 틀을 갖추고 있다.'라고 하셨던 걸로 보아, "최대한 감염원에서 다른 사람을 격리하자"라는 스탠스는 우리와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았다. 당시 응급의료센터에서 코로나 의심 환자 진료에서 문제가 되었던 점은 정부 제공 프로토콜의 세부 임상 적용(정부에서 배포한 초기 프로토콜은 응급의료에 적용하기에 허점이 많았다)과 느린 피드백 적용이었는데, 각 응급의료센터의 수뇌부는 여러 루트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며 이를 해결하는 듯했다. 그때 응급실 전공의인 우리의 목표는 프로토콜을 빠짐없이 숙지하여 ‘해당 환자가 응급의료센터를 방문했을 때 허둥대서 환자를 놓치는 일이 없기’였다. 미리 겪어보지 못한 환자의 경우 어떤 경환이라도 떨리기 마련인데, 이런 중요한 환자를 마주한다면 십중팔구 긴장할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준비를 거듭 보강하면서 병원 내 '첫 빌런'이 들어왔을 때 다리가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해 만전을 기했다.


 몇 달 전의 우리는 우한 폐렴에 대해, 우한에 놀러 가고 싶네 마네, 박쥐고기를 먹네 마네 하고 있었다. 그랬던 우리가 지금은 어떤 보호복을 입고 진료를 해야하는 지, 환자 진료는 어디까지 해야하는 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코로나 현상에 대해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고 익히고 무장하고 있었다. 모든 게 지나간 지금이야 그땐 그렇게 준비하고 그랬지하며 웃고 넘어가지만, 그동안의 전적을 미뤄보아, 보나 마나 국내 첫 환자의 출현부터 본원 첫 환자의 출현까지의 기간이 예민 초절정의 나날들이었다.


P.S

 생각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코로나에 노출되며 전염병과 감염, 병원균, 병원체 등을 필두로 전반적인 감염학 및 예방의학에 대한 관심과 대중의 이해도가 많이 올랐다. 손 씻기, 마스크 끼기 등을 안 하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염병을 100% 피할 수 없는데 매년 되풀이되는 인플루엔자, 독감이 그 예이다. 그만큼 어떤 병원균을 완전히 지구 상에서 없애기는 어렵다. 감염병이 돌기 전, 최대한 공공위생과 개인위생에 만전을 기울여야 하는 게 그 이유이다. 일반 대중도 마찬가지겠지만 의료진으로써 하루가 다르게 고개를 드는 각양각색의 전염병을 다 알고 피할 순 없다. 다만, 전염병과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만큼 최대한 빠르게 최신 의료동향을 파악하는 습관과 무엇보다 초심을 잃지 않고 지치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겠다. ‘설마 이번 한 번 장갑 안 꼈다고 걸리겠어?’, ‘설마 저 환자가 확진자겠어?’ 이러다 감염되는 거 한순간이다.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기 이전에 우리 모두가 전문가라 생각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게 환자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 사진 출처 : Photo by Clay Banks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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