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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Jul 20. 2022

S1. 코로나 일지

#6. 환자는 누가 보나

#. 2020년 01월 29일


 어렸을 때 유행했던 혈액형 별 성격점이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며 심심풀이 정도로 여겼는데 점점 나이가 들수록 단순 심리테스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이것이야 말로 빅데이터베이스의 산물 아닐까.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MBTI를 이야기하는 걸 주의 깊게 듣는데, 특히 의사들의 과 선택과 MBTI와의 관계는 상당히 흥미롭다. 조용하고 침착하며 계획적이다? 내과 계열이나 서비스 계열. 임기응변 대처가 빠르나 성격이 급하다? 메이저 외과나 인터벤션(intervention) 계열.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같은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전공과를 모르더라도 해당과 전공의의 성격으로 과를 얼추 짐작할 수 있는데, 들어갈 때는 다르더라도 나올 땐 꼭 그 과의 이미지를 닮아 있다. 그래서 내가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아 진짜? 안 어울리진 않는데... 근데 네가 목소리가 컸던가'라는 애매모호한 반응이 많았다. 안 어울린다는 뜻이었다. 흔히 떠오르는 응급실의 이미지와 내가 맞지 않았던 것일 테다. 어플라이(apply, 학과에 전공의 지원하는 것)할 때 당시 치프 선생님도 "너 오면 좋지(당시 우리 과가 경쟁이 세지는 않아서 어플라이 후보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다), 근데 잘할 수 있겠어?" 하며 우려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전공의 지원 경쟁이 심했다면 떨어졌을 것이다. 평소 조용한 걸 성호하고,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하고, 져도 좋으니 싸우고 싶지 않고. 시끄럽고 소리가 난무한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것보다는 비 임상과가 어울렸을 수도 있겠다(실제로 응급의학과 다음으로 생각했던 과가 진단검사의학과였다). 이만큼 응급의학과의 이미지와 상이했던 나도 4년 차가 끝날 무렵에는 스스로 자각할 만큼 변했다.


"잠시만요! 비켜주세요, 환자 지나갈게요"

 전공의 초반에는 급한 환자가 실린 카트를 끌고 갈 때 나름 소리친다고 했지만, 사람들이 길을 터주는데 미지근해서 선배한테 혼난 뒤로 환자 카트를 마트 카트처럼 거칠게 끌고 가면서,


"비키세요!!!!!!! 나오라고요!!!!!!"

하며 빠르게 길을 텄다. 효과 만점이었다. 이 외에도 협진 건으로 타과에 연락할 때,


 "안녕하세요, 응급의학과 OO입니다. 통화 가능하세요? 네, 지금 XX번 베드(bed) 환자 호흡기 내과로 협진을 걸려고 하는데요.." 하며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응급의학과 OO인데요, XX 환자 폐렴 입원 협진이요"

로 간결 무심하게 말하게 되었다. 과격 과감해졌고, 점점 응급의학과를 닮아갔다.


 따라서 4년 차 초반의 나는 순도 100%의 응급의학과 전공의 이미지를 형상화 한 모습이었다. 항상 기민하게 반응하며 매시간 긴장이 서려 있었다. 좋게 말하면 순간 결정 능력이 빠른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막무가내인 것이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지는 건 썩 기분 좋진 않지만 살아남으려면 그래야만 했다. 간혹 타과들이 부르는 응급의학과 별명이 '미친 X', '또라X' 등등인 게 이해가 됐는데, 그들의 눈에는 예민하고 성내고 싸우자고 덤벼드는 모습이 우리를 대표하는 모습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발병 이후 응급의학과에게 치명적이었던 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이전까지 응급의학과의 지랄견 같은 이미지가 원내가 아니라 원외에도 비쳐진 점이었다. 국가 관리 전염병으로 지정되고 난 뒤 공무원을 비롯해 다른 집단과 많은 접촉이 있었는데, 옛말 하나 틀린 것 없이 안에서 세던 바가지 바깥에서 안 셀 리 없다.


 나의 처음은 공무원과의 언쟁이었다. 코로나와 함께 늘어난 근무는 감당할 수 있었다. 비상 터져서 야근하는 회사원과 다를 바 없이 월급 받는 입장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지 뭐, 하는 생각이었다. 근데 감당 못하는 것은 명확하지 않은 질병청의 지시였다. 일단 명확하게 내려온 게 없는 상황에서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의심 환자의 진료는 해야 하니 정신 차릴 수 없었다. 임시로 세워둔 병원 내 방침을 따라 무너질까 둑 틀어막듯이 진료가 이어졌는데, 의심 환자를 1339에 신고하기 시작하면서 둑이 아닌 억장이 터지며 예민함이 분출되었다.

 당시 응급실에 감염 의심 환자가 오면 진료 후 1339에 모두 유선 신고를 하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환자를 격리시킬지, 집에 보낼지 어쩔지, 입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지시가 내려오는 시스템이었다. 문제는 환자 진료 이후 지시를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어마어마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나중에 옆으로 들어보니 당시 서울 시내에 1339 코로나 본부에 배정된 인력이 20여 명 내외밖에 안된다고 했다. 진실인지 확실하지 않았으나 합리적 소문이었고, 일단 적은 숫자의 공무원에게 과한 노동이 주어졌단 건 확실했다. 하지만 우리도 급했기 때문에 이성적인 사고를 유지하며 기다릴 수 없었다. 지시가 내려오지 않으면 함부로 귀가시킬 수 없었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들은 성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에서 '의심되는 증상이 있을 경우 즉시 병원 방문할 것'이라고 해서 목이 좀 간지럽길래 병원 왔더니 정작 약 주고 퇴원하는데 두세 시간씩이나 걸리니까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 불만을 달래는 건 눈앞의 의료진인 우리의 몫이었고 그동안의 환자 어르고 달랬던 짬빱으로 열심히 입을 터는 수밖에 없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실제로 '정부의 방침 = 병원'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중환이었다. 기다리다 화난 채로 귀가하는 환자들이야 내가 욕 좀 먹고 기분 좀 나쁘면 됐지만,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경우는 신고 후 국가 지정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다. 당연히 경환보다 더 오래 걸렸다. 이게 길어지다 보니 응급의료센터도 극도로 예민해졌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진료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는 기약 없는 기다림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특히 1339와 통화를 하면 담당자가 의료진이 아닌 게 티가 났다. 병원에서, 특히 응급의료센터나 전원센터에서 일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일반 전원 프로세스도 잘 모를 텐데, 몇 번 1339와 통화해보니 아직 질병청 내에서도 전원에 대해 정확한 가이드라인이나 예외 환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정해지지 않은 듯한 눈치였다. 뭐만 신고하면 ‘서울시 중앙본부에 연락해보겠다.’라는 답변이 내려왔다. 중요한 건 알겠지만, 모든 환자 케이스를  하나하나 따지기엔 환자 수 증가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하는 입장으로서 이런 테스크가 답답했다. 그래서 1339와 통화할 일이 생길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렸다 했다.

 야간 시간 대도 문제였다. 원래도 1차 의료기관이 문을 닫는 오후 6시부터 10시 정도까지가 응급의료센터의 환자가 많은 시간이다. 그런데 1339는 공공기관이므로, 오후 6시가 넘어가면 감감무소식인 경우들이 생겼다. 당직 공무원이 계시는 것 같았으나 응급의료센터의 환자를 소화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응급의료센터는 마비가 되었다. 코로나가 퍼지고 초반에 1339가 전화를 받지 않는 야간에는 정말이지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어쩔 수 없이 야간에 신고하지 못한 경환은 ‘의사 판단 하’ 퇴원시키기 시작했지만, 중환이나 정부의 지시가 꼭 필요한 환자가 있을 때는 어떻게든 담당자와 연락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모름지기 응급의학과에게 콜 페일(call fail, 유선 연락 실패)란 있을 수 없었기에 협진걸 때 타과에 집요하게 연락했던 실력으로 보건소 근무자를 어떻게든 찾아내었다(나중에는 보건소 근무자의 개인 전화번호가 병원마다 뿌려졌는데, 아마 근로 시간 준수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불쌍한 공무원).


“여보세요.”

“네 코로나 담당자님 번호 맞나요(이미 화나 있고 싸울 준비가 되었다).”

“아.. 맞긴 한데요..”

“1339 랑 보건소에 전화가 안돼서요. 환자 하나가 있는데..”


 겨우 이어진 전화 연결에서 상대방이 코로나 담당임을 확인하자마자 말을 이었다. 수화기 저편으로  지하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퇴근 중이었던 것 같았다. 퇴근하는데 일로 전화하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나도 내 일을 해야 하니 철판 깔고 죽죽 환자에 대한 사항을 전달했다.


“네….(매우 깊은 한숨) 제가 알아보고 알려드릴게요. 이 번호로 다시 전화드리면 되죠?”
“네,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 정도면 양호했다. 우리야 밤샘 야근 연장근무가 익숙하지만 상대는 밤샘근무가 익숙하지 않은 공무원이니 약간의 딜레이를 기다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환자에 대해서 만족할 만한 시간 안에 일이 해결되었지만 일이 가중되다 보니 그러지 못할 때가 발생했다. 점점 더 1339의 연결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담당자와 연락이 되어도 콜백(call back, 연락 후 답장을 주는 것)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웬만하면 다른 분야 사람들에게 화내지 않기로 했는데 결국 폭발했다.


“아니 관련 환자에 대해서 보고하라면서요, 삼십 분 내내 전화 몇 통을 돌렸는지 아세요? 겨우 연락되었더니 지침 내려오는 데 몇 시간이나 걸리는 거예요!(진짜 몇 시간 걸렸다)”

“아, 저희도 지금 막 구성된 본부라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아서..”
“그런데요, 해지면(진짜 18시 되면 전화가 안됐다) 전화는 안 되는 거 하루 이틀이 아닌 거 아시죠? 지금 이 환자 때문에 응급실 마비된 건 아세요? 야간에는 응급실 가라고 하면서 대책을 안 주시면 어떻게 일하라는 거죠?”
“아, 그건 죄송하고요, 저희도 지금 막 중앙본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진료 의사 판단에 따라 후속 조치를 하라고..”

"... 그러니까 저희가 알아서 해라 이거네요."
"네 일단 그렇게 하라고 하시네요."
"근데 그러다 환자 잘못되면 제가 책임지는 건가요?"
"그건 일단 일이 발생하면 상부에서 다시 논의를 해야겠.. 죠?"
"..."

"..."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수화기 들 때부터 벼르고 별렸던 화를, 이제 막 뚜껑이 열고 뿜어내려고 했는데 저런 반응이니 와사삭 식는다. 화낼 기운도 화낼 의욕도 없어졌다. 서로 기분 나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의료진의 판단에 맞기겠다라. 격리 안 했다가 코로나 퍼지면, 퇴원해서 집에 갔는데 더 나빠지면 어쩌지. 남은 건 방어 진료뿐이었다. 내가 퇴원시킨 환자 때문에 코로나가 이곳저곳으로 퍼지는 걸 상상하면 어떤 의사라도 함부로 격리 해제할 수 없다. 격리로 결정을 내려도 결국 보건소에 연락을 해야하는데 연락이 안 되면 어쩌지. 이러나저러나 고난길이었다. 머릿속에 생각이 돌아 돌아 결국 멈추는 곳은 '이럴 거면 애초에 유선 신고하라고 하질 말지'였다.

 전화 통화 이후 얻은 소득 ‘0’에 기분 상한 것까지 하면 전체적으로 이 전투에서 얻은 실적은 마이너스였다. 기다리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막막한 일들만 남았으니, 한숨만 나왔다.

 


P.S

 돌이켜보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코로나에 비해 응급의료센터에게 내려온 정부의 방침 및 지침은 너무 동 떨어져 있었다. 오늘 당장 대처할 방법이 필요한데 오늘의 나를 경험으로 내일 대처 방법이 나오는 식이었다. 특히 '모든 환자에 대해 신고하고 후속조치를 위해 대기'하라고 한 것이 굉장히 크리티컬한 단점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모든 의심환자에 대해서 1339에 신고'하라는 지침과 '의사 판단 하에 격리여부 결정' 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는 지침이다. 인과관계식으로 이어졌던 초기 감염대응 방법은 굉장히 혼잡했지만 결국 지금은 신고와 치료가 별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법정감염병 역시 그렇게 진행되었다). 우리에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접한 법정 감염병이 아닌 이상, 기존 감염병에 대한 대책 및 프로토콜을 십분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정감염병의 국가 관리와 치료에 있어 모두가 동일한 목표를 지향함을 짚고 넘어가며 서로의 자율성을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포함된 지침이 제때 불가할 바에는 응급 의료 진료 지침 목표를 '코로나 확산 방지에 대해 적극적인 대처'등으로 공지하고 신고는 모두 하되, 치료 및 격리에 있어서는 각 병원에 맞추어 유연하게 대처하라는 방침이 나았을 수도 있었겠다. 실제로도 임시로 만든 병원 별 응급의료 가이드라인을 매일매일 수정하여 실질적인 지침으로 사용했다. 이는 추후 병원 별 가이드라인이 차이 발생의 원인이 되었으며, 당시 정부의 지침과 실제 의료와 간격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추후 공지된 지침에 결국 ‘의사의 판단 하에’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는데, 아마 무수한 병원에서 각기 다른 환자들이 보고 됨에 따라 그랬으리라 싶다.


[ 사진 출처 : Photo by Nate Isaac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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