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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Jul 24. 2022

S1. 코로나 일지

#7.내안에 코로나가 스며들다

#. 2020년 01월 29일


 우한 교민들이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고, 격리조치 되었다가 퇴소하였다. 청도에 격리되었는데, 청도라고 하니 칭따오 맥주가 생각났다. 칭따오도 중국 발인데. 마시고 싶은데 괜히 찔려서 타이거 맥주를 마셨다.

 코로나 환자 진료를 시작한 지 2개월이 지났다. 근무가 늘어서 힘들지만, 다행인 점이 있다면 2월 초부터 응급의료센터 내에서 자체 검사를 하기 시작한 점이었다. 적어도 환자에 대해 ‘의료진의 판단’에 도움이 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생겼다. 2020년 2월 16일 부터 인플루엔자 감시체계에 코로나-19가 포함되었다. 본격적으로 장기화에 대한 대비였다. 다만, 당시 진료실에서는 인플루엔자 검사를 할 정신이 없었다. 적어도 나는 단 한번도 인플루엔자 검사를 하지 않았다. 급한 건 코로나였다.


 ‘나도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대중에 퍼지면서 병원이 코로나의 원발원으로 손꼽히게 되었고, 응급의료센터의 경환자 비율이 줄어 들었다. 생각보다 코로나 방어가 잘되어서 환자 수가 더디게 번졌고, K-방역이 성공사례로 꼽히며 곧 코로나가 종식될 수도 있겠다는 말이 돌았다 (물로 교수님들은 상상회로라고 콧웃음쳤다). 그랬는데 결국 2020년 2월 중순, 감염 경로를 모르는 환자 29, 30호가 확인되었고, 대구 경북지역에 7명이 추가적으로 코로나 확진이 되면서 판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정부는 2월 21일 서둘러 대구-경북을 ‘특별관리 지역’으로 선정했지만, 바로 다음 날 22일 신천지 교민을 중심으로 1차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했다. 계란껍질에 금 가듯, 희망사항이었던 코로나 종식에 대한 염원이 바스라졌다. 이 과정에서 종교에 대한 적대감이 굉장히 높아졌다. 특정 종교가 표면에 드러났지만 단체 의식을 진행하는 종교에 대한 대중의 적대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개인적으로 나도 종교가 있고,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지지하지만 대중의 화는 타당했다.

 

  23일 정부는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상향 조절했다. 중국 발 입국자에게 맞춰졌던 초점이 이스라엘 성지순례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서도 발생하면서 모든 ‘해외 입국자' 에 대한 시선이 적대적으로 변했다. 응급의료센터도 마찬가지였다. 센터를 방문하는 의심 환자가 두자리 수 이상을 꼬박 채우면서 특히 저녁에, 보건소가 문을 닫을 시간에 목이 칼칼하다고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이 꽤 있었는데, 물어보면 상당 수가 해외 입국자였다.


“원래 안 물어보는데 코로나 때문에요. 혹시 어디 다녀오셨어요?”
“...동남아요.”
“...동남아 어디?”
“...중국이요.”


 오 마이 갓. 출장 등으로 불가피한 해외입국자도 있었지만, 코로나 전에 예약해둔 여행을 갔다온 사람들도 많았다. 자기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다녀왔을테지만, 여독인지 코로나인지 모를 살짝 나쁜 컨디션에 겁이나 다음 날 보건소 방문을 기다리지 못하고 밤에 응급실을 찾는 사람이 꽤 되었다. 코로나 감염 여부를 빠르게 알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확진이 된다면 '코로나 확진 00번 환자'로 꼬리표가 붙으며 전국적으로 뭇매를 맞을게 뻔하니 보건소를 기피한 경향도 없지 않았다. 이렇게 의학적 ‘응급’은 아니지만 사회적 ‘응급’인 환자들이 응급실을 방문하기 시작하며 응급실은 과부하가 걸렸다. 처음 몇 명에겐 관대했으나 점점 해당 환자가 많아지니 인내심이 바닥났다. 짬을 내어 해외 여행다녀온 환자들을 마주하면 그렇게 심술이 났다. 우린 여행이 뭐야, 어쩌다 정시 퇴근하는게 삶의 낛인데. 비상 근무 2개월만에 집-버스-병원이 생활 반경의 전부인 사람앞에 은근히 탄(겨울이었다) 얼굴에 머쓱한 표정을 띄우며 PCR 검사때문에 왔다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 검사 진행하겠습니다.~’ 하고 곱게 말이 나갈 수 없었다.


 초중고등학교 개학이 1주일 연기되었다. 마스크를 구할 수 없어서 웃돈주고 구입하기도 한다고 했다. 우리는 병원에 마스크가 넉넉히 구비되어 있어서 모자라진 않았다. 다만 예전에 근무 중 더러워지면 몇 개씩 갈아쓰고 그랬는데 요즘엔 하나 쓰는 것도 눈치보였다.


 확진자가 왕창나온 경북 지역으로 의료진 자원봉사팀이 꾸려졌다. 과장님이랑 졸업 후 군입대 해야하는 선배가 자원했다. 잔다르크 같이 멋있고 부러웠다. 나도 병원에 메인 몸만 아니면 가고 싶었는데, 국가 지원금 규모를 듣고 더 가고 싶어졌다. 어차피 여기서도 코로나 환자 진료하니, 이왕이면 금융치료도 함께 받고 싶다는 희망 사항이 머리를 떠나지 않을 무렵 병원 근처에서 일이 터졌다.


“헐. 야, 뉴스봐봐. 지금 스벅에 119가 레벨D(우주복처럼 생긴 하얀 방호복 그 것) 입고 출동했다는데?!”

“엥? 왜?”
“확진자가 숨어 있었대.”

“헐. 진짜? 미쳤네.”
“어 지금 폐쇄한다는데?”

"어디? 스벅?"
"어! 스벅."

"헐. 망했네."


 수도권에 퍼지면 망한다는 과장님의 말씀이 머리를 스쳤다. 인구 밀도가 남다른 수도권은 퍼지기 시작하면 손쓰기 어려울 것이라는 여러 전문가의 소견을 뒷받침할 사례가 내 코앞에서 일어났다. 웬만하면 말 잘듣고 준법정신 투철한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인데, 격리를 잘못 이해한 사람들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스타벅스 사건’은 확진자가 카페 구석에 숨어 있다 걸린 사건이었다. 어떻게 그 사람을 발견했는 지 모르겠으나 정말 하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와서 카페 거리를 뛰어 다닌 모습이 SNS 에 올랐고, 한동안 스벅이 폐쇄되었다. 그때까지도 실제 확진자를 대면한 적이 없었는데, 진짜 눈 앞에 나타났다니 긴장감이 물밀듯 올랐다. 수영하기 전 레일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릴 때 발가락에 찰랑찰랑 닿아오는 물결이 가슴까지 찰박거리는 느낌이었다. 두려움에 속이 울렁거렸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린다고 해도 실전은 다를것이다. 긴장감에 메스꺼운 속을 다스리고 있는데 이와중에 몇몇 어린애들이 하얀 방호복을 챙겨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장난을 쳐 대중의 눈총을 받았다. 미친놈들이라고 생각하면서 근데 어떻게 저걸 구했지, 나도 병원에 구비된 레벨디나 N95 마스크(지금 우리가 쓰는 K94 보다 더 강력한 마스크. 대형견 입마개처럼 생겼다)라도 몇 개 집에 쟁여놔야 하나 고민했다.


 정말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눈 앞에 코로나가 다가왔었다.


P.S

 아직도 종교(이게 가장 이슈를 몰고 왔기 때문에 지칭한다)를 비롯한 모임에 대해서 좋은 시선이 가질 않는다. 종교의 자유에 있어, 대규모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강제로 금할 수 없고, 비의료인의 마스크 착용 및 격리 개념 및 중요성이 의료인만큼 확립되어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보건 당국에 의도적으로 ‘대규모 모임’을 은폐하려고 한 점은 집단 이기주의라고 생각한다.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결국 어떤 집회가 시발점이 되었던 간에 민중 집회가 대규모 전염의 강력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곧이어 이스라엘 성지 순례에서 들어온 확진자 전파사례만 보아도 시간의 문제였다). 이번 일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국가 주도의 확진자 동선 파악을 통한 개인자유의 억압과 개인자유의지로 인한 대규모 감염병 확산에 대해 인류, 사회, 정치 분야에서 양단으로 나눠져 설전을 벌였다. 나는 통제 측의 입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이쪽으로 기울었는데, 무분별한 집담 감염에 대해 '종교'라는 배경이 섞여있고, 이것이 면죄부인 것처럼 행동했던 일부의 행동이 2년 여 간의 코로나 진료 기간 중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작게는 몰래 먹는 회식과 술자리, 연수강좌, 세미나, 단합대회, 동아리, 미사와 예배까지 각종 모임이 제한적으로 허용되어 모두들 모임이라는 것에 갈증을 느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타인과의 교류가 필요하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서 MZ세대를 필두로 단체로 하는 운동 경기나 동호회가 활성화되는 것, 학생들이 학교에 가서 친구를 만나고 싶어하는 점 등이 단적인 예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교류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비대면 화상 모임 등)이 조금 더 다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계가 익숙한 우리야 비대면 채팅이나 AR, VR에 더 접근이 쉬움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부재를 느끼고 있는데, 이런 기술의 접근이 다소 걸리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란 어쩌면 오히려 인간의 본능을 저해한다는 느낌으로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발달한 과학 기술만큼 다양하고 쉽고 현실감있는 비대면 기술이 빠르게 상용화되길 바란다. 니즈(needs)는 충분히 확인되었다.


[사진 출처 : Photo by Rafal Jachimczyk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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