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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Jul 27. 2022

S1. 코로나 일지

#8. 핫 웜 쿨

#. 2020년 01월 말


 우당탕탕 뚝닥거리던 격리 구역진료가 드디어 안정적으로 궤도에 정착했다. 지금이야 하얀 전신방호복 레벨디가 비 의료인에게도 익숙하지만, 2020년 초에는 당장 근무하면서 접촉할 가능성이 높은 응급 의료진에게도 교육 자료에서나 마주한 낯선 방호복이었다. 병원 내 장비가 확보되고나서,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응급실 의료진이 교육 대상자 1순위로 분류되어 재난교육센터에서 레벨디 환복법을 교육 받았다. 옷 하나 입고 벗는데 안(감염이 안된 부분)과 밖(감염이 된 부분)을 구별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곡예와 같은 몸동작을 보이며 옷을 입고 벗는 연습을 했다. 제대로 하려니 옷 하나 벗는데 5분쯤 걸렸다.


 “어! 손에 머리카락 닿으시면 컨타(오염, contamination) 된거에요. 재시(재시험) 보셔야해요.”


 나름 정규 교육이어서 실습 시험도 있었다. 시험은 방호복을 입은 뒤 보이지 않는 야광 물질을 바르고 탈의를 하게 한 후 특수 불빛을 비추어서 몸이나 손에 야광물질이 남아있는 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시간 쪼개어 교육도 듣고 시험도 쳐야하니 우울해졌다. 게다가 떨어지면 재시도 봐야했다. 큰맘먹고 가장 가까운 오프날 교육을 신청하며 꿍시렁대었지만 실상 의료진 중 하층민에 속하는 위치였기 때문에 입밖으로 실은 티를 내진 못했다. 어차피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시험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의식하여 옷을 입은 적이 없었는데, 의식하여 옷을 입으라니 나도 모르게 방호복에 속살이 닿았다. 세상에 한발로 서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두어 번 환복했을 뿐인데 숨이 차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런 피폐한 몰골의 우리가 딱해보였는 지, 교육 강사님들이 거의 장님과 같은 시야로 실수를 눈 감아주셨다. 무사히 시험을 통과하고 나서 교육은 꼭 생각하고 탈의할 것을 거듭 강조하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에 우리는 강아지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네,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고 재빨리 교육센터를 벗어났다. 물론 구비되었던 과자를 주머니 속에 한웅큼 쑤셔넣는 걸 잊지 않았다.

 

교육을 받았지만 실전은 역시 달랐다. 당장 급하게 되니, 내 몸에 오염원이 묻고 안묻고를 생각해서 환복하는 것보다 일단 모든 걸 갖추어 착용하고 빠르게 벗어 제끼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이론상으로 어떤 부분이라도 오염이 된 방호복은 그 보호 능력을 잃고 입으나 마나한 존재지만 실제로는 큰 도움이 되었는데, 비말은 다 거르지 못하겠지만 기침하면서 뱉어내는 가래 정도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 최소한으로 나를 보호하는 선에서 타협하고 진료 스피드를 올리지 않으면 밀려들어오는 환자와 죽음 앞에 있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평소 입는 근무복을 착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컷이다. 드라마에서 멋지게 나오는 의사의 근무복은 배우들의 기럭지의 덕택이지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면 하늘색 근무복도 매우 맵시나 보인다) 현실은 포대자루같은  몸통 가리개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신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신체를 가리는 기능을 부각시켜 만든 남색 근무복은 입는 데 1분? 머리 구멍이 작아서 애쓰는 시간 빼면 정말로 1분도 안걸린다. 그랬는데 코로나 의심 환자를 볼 때마다 탈착에 시간 소요가 많이되는 레벨디를 하루에도 몇 번 입고 있자니 시간도 시간이고, 체력 소모가 극심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저 쓰러질거 같아요.”

“어, 왜요! 괜찮아요?”
“아 저 신콥(실신, syncope), 신콥!”

“아이고. 잠시 앉아있어요. 곧 나갈 수 있어요. 쌤이 먼저 나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저 잠시만 앉아있을게요."


 확진자 접촉자 진료를 위해 격리 구역에 출동한 때였다. 환자가 위급한 상태여서 기관 삽관이 필요했고, 술기를 하기 위해서 레벨디에 휴대용 공기정화기인 PAPR까지 등에 메고 있었다(영화 마션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우주복 위에 공기 정화 헬멧을 또 쓴다). 삽관 후 환자를 중환자실로 이송한 다음, 정리를 마치고 다시 격리 구역 밖으로 나오려는데 갑자기 구역감이 올라왔다. 눈앞이 새하얘지면서 어질했는데 십중팔구 미주신경성 실신이었다. 나는 가끔 몸이 피로하면 실신할 것 같은 느낌이 있어 그때마다 쉬곤 했는데, 이번엔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그런 지 갑자기 구역감이 올라오며 눕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마 보호복을 입으니 산소도 부족한데 삽관하느라 힘과 정신을 쏟고나니 땀도 나고 더워서 그랬을 것이다. 일단 바닥에 드러누웠다. 편히 숨도 쉬고 싶었지만 격리 구역에서 방호복을 벗을 수 없어서 일단 눕는 것으로 버텨보기로 했다. 바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것은 옷을 차례로 벗어야 하기 때문인데, 왜? 여긴 아직 핫 존이기 때문이었다.


 감염 진료 구역은 크게 ‘핫’, ‘웜’ 그리고 ‘쿨’ 존으로 나뉜다. 핫은 감염원이 존재하는 곳, 감염구역으로 방호복을 입고 활동해야하는 곳이고 반대로 쿨 존은 감염원에서 해방된 청정구역으로 깨끗한 곳이다. 그 중간이 웜 존인데 감염원이 묻어있는 옷을 조심조심 탈의하고, 감염원이 퍼지지 않게 해야하는 부분 감염 구역이다. 격리실이라고 구비되어있는 응급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 완전 바깥과 격리실 사이에 자그마한 공간이 있고 이중 유리문으로 구분되어있는 걸 볼 수 있었을텐데, 바로 이 공간이 웜 존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우리 병원 격리실(핫 존)에 딸려있는 웜 존은 공간적 여유가 없어 1명 밖에 들어갈 수 없었다. 작은 공간에서 무리해서 탈의하다가 서로에게 오염원을 묻일 수 있기 때문에 핫 존에서 쿨 존으로 탈출하려면 차례로 줄을 서서 웜 존에 들어가서 옷을 벗어야 했고, 골골거리며 우웩거리고 있는 나를 안쓰럽게 여겨주신 간호사 선생님들의 배려 덕분에 나는 첫번 째로 쿨 존으로 탈출 할 수 있었다. 환자보다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고 진심으로 생각한 몇 안되는 경험중 당당히 한자리 차지했다. 탈의복을 벗고 쿨존에 들어서자마자 폐부 깊숙히 공기를 들어마시며 조금쉬니 금세 활기를 되찾아 무사히 근무를 마무리 했지만, 문제는 코로나가 이제 시작이라는 점, 앞으로 레벨디 방호복을 입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서른 넘으면 살기 위해 운동한다고 하더니, 죽지 않기 위해 무조건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P.S

 예방의학을 배우긴 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일하면서 이론적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감염 관리를 확실하게 해아하며, 그러기 위해서 생각보다 많은 인력 및 시설이 필요하고, 이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걸 다시한번 몸소 느꼈다. 병원 안밖의 의료 폐기물통 마다 쌓여있는 비닐 가운과 각종 일회용품을 보면서 '자원 낭비, 불쌍한 지구' 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코로나 확산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영화 '괴물'을 보면 방호복을 입은 주인공들과 의료진, 정부 요원들이 보이는데, 역시 말짱 꽝이다.) 기회비용면에서 어쩔 수 없는 처사임을 다시한번 곱씹는다. 다만 나중에는 이런 것도 함께 고려한 의료용품이 발명될 것이다.

 지금이야 코로나 전담 병동과 중환자실이 거의 대부분의 대학 병원에 설치되면서 의료진을 포함한 일반인의 격리구역 사용에 대한 이해도 및 순응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족한 점 천지이며, 사람의 오류(man’s error)를 보완할 수 있는 예방 장치들이 2중 3중으로 필요하다. 물론 거기에는 기본 예방의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를 높이는 교육이 어렸을 때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점과 의료진을 대상으로한 심화 교육이 이뤄져야한다는 점이 포함되어야 한다. 중세의 유럽을 보더라도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들의 위생 개념이 현저히 낮았는데, 결국 흑사병과 같은 치명적인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을 감안하면 대중의 전반적인 위생 개념 증진이 최우선 아닐까싶다. 이번의 경험으로 얻어진 위생 관념이 한번 지나가고 마는 단기 기억처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보존되었으면 한다.


[ 사진 출처 : Photo by Leohoho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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