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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Jul 30. 2022

S1. 코로나 일지

#9. 차라리 투명 방울에  날 가둬줘

#. 2020년 03월


 2001년 개봉한 '버블 보이'라는 영화 속 주인공 지미는 질병에 매우 취약한 소년으로 평생을 '대형 버블'안에서 산다. 어릴 땐 집 안, 아니 방 안에서 매일을 지내지만 옆집 소녀를 만나고 바깥 생활에 대한 욕구를 조금씩 키워나가고, 결국에는 '이동용 대형 버블'을 타고 집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영화다. 알고리즘을 타고 우연찮게 본 영화 소개 영상이었는데, 영화를 다 보진 못했지만(요즘 유튜브는 편집이 길어서 내용 대부분과 결말도 알 수 있다) 내용이 꽤 정교해 기억에 남았다. 영화의 분류는 코미디지만, 지금 개봉했다면 다큐멘터리로 분류되었을 법도 하다.


 2020년 1월 말부터 아침 회진에 코로나 관련 내용이 공식적으로 추가되었다. 전에는 '어제 저녁엔 별일 없었지?' , '어제 클럽 갔다 온 사람이 왔는데 옆 테이블에 확진자가 지나갔었대요~' 정도로 회진 중 사담 겸 그날의 진료지침 가이드용이었지만, 응급의료센터로의 침투가 가시화된 이상 본격적인 대비책 마련을 위한 준비 절차였다. 각 잡고 회의록에  'COVID-19  의심환자 / 관련 환자' 란이 추가되었고, 하루에 2-3명, 중국 특히 청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 입국자 및 확진자 접촉자 위주로 보고가 되었다. 본인이 확진자일까 걱정되어서 방문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코로나 검사 후 약 처방으로 진료를 끝나는 경우가 보통이었고, 그 사이에 찔끔 중환이 섞여있는 정도였다. 회진은 휴일이 아닌 주중 오전에 항상 진행되며 전공의 중 치프만 회진에 참가했다 (전공의 로딩(loading)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치프인 기간에는 매일 오전 출근 전 혹은 나이트 근무 후 회의에 꼬박 참석해야 하므로 다크서클이 한층 진해지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접촉을 한 사람들이 보고를 듣는 게 제법 재밌어서 은근 회진을 즐기기도 했다. 건너 건너 술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동선이 겹쳤-아니 겹쳤던 것 같거나, 대형 마트에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시간대에 확진자가 마트에 있었다는 이유 등이 보고되었다. 확진자를 마주친 게 아니라 뇌리에 스치기만 했어도 병원에 내원하는 정도였는데, 이들은 예외 없이 확진자 접촉자로 분류되었다 [1]. 지금이야 인정되지 않는 접촉에 해당되는 예시들도 당시에는 모든 경우에 대해 배제하지 않고 토론이 열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재감염률이나 치사율은 고사하고 전파 방법, 밀접 접촉에 대한 정의 등 확실하지 않은 것이 굉장히 많았으며 정부에서 모든 동선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병원이 폐쇄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재미는 재미였고, 만약 지금 코로나가 응급실에 침투하게 된다면 된통 당할 것이 뻔했기에 매일 각종 감염 대비 장비와 방침들이 새로 생겼다. 문제는 의외의 점에서 두드러졌는데, 감염 의심환자가 비감염환자의 수를 상회하면서 격리 구역의 포화가 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한쪽은 자리가 비어 여유로운데 다른 한쪽은 초진조차 보지 못하고 환자들이 대기하는 비균형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료 공간의 재구성이 필요했다. 제일 이상적인 방법은 응급실을 동일한 크기로 2개(격리 구역/비 격리 구역)를 증축하는 방법이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차라리 지금 있는 응급의료센터를 뜯어고쳐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현실적이었는데 최대한 두 군의 환자의 동선이 겹치지 않으면서도 현존하는 기기 및 설비를 남김없이 사용하도록 진료 구역 및 시스템 개편이 진행되었다 [2].

 첫 번째로 ‘감염 의심자’와 ‘비감염 의심자’로 환자군을 나누어 따로 수용하는 진료 구역에 대한 개편이 시작되었다. 완전 음압 구역인 'I 구역' 이 격리 진료의 구심으로, 이곳에서 코로나 검사를 진행하였고 음성이 확인된 환자 중 다른 검사(예: 피검사, 영상 검사 등)나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 한 해 비 감염환자만 있는 일반 진료 구역으로 입실하도록 했다. 이때에도 두 군의 환자가 섞이지 않도록 일반 진료구역 마련한 임시 공간에 배정하였다. 이는 바이러스 발현의 잠복기를 고려한 것으로 오늘의 코로나 검사가 음성이라고 내일도 코로나 확진자가 아니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식으로 만성 기침'이 있는 골절 환자를 '기침'때문에 격리 구역에서 진료하는 것은 굉장히 비 효율적이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우회 진료 시스템이었다. 또한 감염 의심자 중 진짜 중환이어서 여러 장비의 도입이 필요한 경우는 I구역의 진료 시설로 커버가 되지 않는데,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일반 진료구역 내 격리구역은 필요했다. 최종적으로 우리 응급의료센터는 다음과 같이 재구성되었다.

 일반 구역은 원래  '중증-중등도-경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집중과 선택이 이뤄지기 위해 중증도 별 구역이 나뉘어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 이 각각의 구역을 나눠 일부분을 격리 구역으로 사용하였다. 즉 중증, 중증도 구역을 각각 Red(감염 의심환자)-일반(일반 환자), 그리고 Red(감염 의심환자)-Grey(Mix zone, 감염력이 매우 낮을 것으로 생각되는 환자)-Orange(일반 환자)으로 나누었다. 경환은 일반 환자로만 구성되어있었고, 경환 중 격리환자는 중등도의 Red 혹은 Grey zone으로 구분되었다. 특히 Red 구역은 코로나 의심이 강력히 의심되는 환자들로, 정황 상 감염 가능성이 높거나 호흡기 증상이 심할 경우 이 구역에서 환자를 진료하였다. Red 구역의 각 병상의 벽에는 간이 음압시설(circulation이라고 부르며 공기를 빨아들여 밖으로 흐르지 못하게 하는 시설)이 설치되었고 병상 사이사이에 기존의 커튼이 아니라 패널이 시공되었다. 해당 환자 진료 시에는 모든 보호 장비를 착용해야만 했다. 격리병실이 아닌 응급실 근무자들은 저 모든 구역을 커버(cover) 해야 했기 때문에 보호복의 착탈의 하 하루에도 십 수 번씩 일어났다 [3].

 

"나 그냥 레벨이 입고 진료하고 싶다."
"그거 엄청 더워, 땀 쩔껄."
"그 안에 선풍기 넣어두면 안 될까. 벗고 입고하는 거 너무 귀찮아."


벌써 몇 번 째인지 모르겠다. 익숙해져서 이제 5분은 안 걸리는 레벨디를 입었다. 키가 작아서 발을 옷 끝까지 다 넣으면 끌리기도 하고, 벗기도 힘들어서 발을 다 안 넣는 방법으로 옷을 입는 팁도 생겼다. 그래도 덥고 오래 걸렸다. 모름지기 응급실은 이렇게 복잡한 곳이 안 어울리는데 말이다.


"일단, 입어. 입고 생각해."
"졸국하면 진짜 이런 거 개발해서 팔고 싶다, 탈착 빠른 레벨이 만들면 잘 팔리겠지?"
"병원 필수로 채택되면 안 써도 구비해야 하니까. 잘만 하면 엄청 잘 팔릴 거 같은데?"
"기다려라, 나 사업한다."
"잘되면 밥"


 아예 안 벗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아님 입고 그냥 촥 찢어서 버리는 것은? 재료가 좀만 시원한 거면 오래 입을 수 있을 텐데. 아님 동그란 버블 속에 들어가는 건 어떨까. 그건 좀 재밌긴 하겠는데 진료는 못 보겠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버텼다. 버블 안에 들어가서 진료를 볼 수는 없지만 그게 더 좋겠다 싶을 정도로 응급의료센터의 모든 게 감염 환자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변했다. 응급의료센터 근무자 외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레벨디 장착 교육이 진행되었다. 그래도 익숙하지 않은 타과 의료진은 보호장구를 입는 것에 거리감을 느끼곤 했고 그런 의료진의 뒷목을 잡고 '선생님 그냥 들어가시면 안돼요!' 하면서 보호장구를 손에 쥐어주는 것 까지가 응급실 의료진이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구역마다 방호복을 채워 넣고 간호사 선생님이 그냥 들어가려는 전공의들 뒷덜미를 잡아채어 손에 방호복 쥐어주어도 감염 규정을 모르는 환자들이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걸 막는 것까지는 역부족이었다.

  

"환자분 나오시면 안 된다니까요?"

"화장실도 맘대로 못가?"

"그쪽 화장실 안되시고요, 환자분은 격리환자분이라 안에서 보셔야 해요."
"아니, 병 고치러 왔는데 병나게 생겼네!!!!!!!!!! 아 몰라, 화장실 갈 거야!"
"환자분, 나가시면 안돼요!!"


 '아니, 나는 간호하러 왔는데 왜 걸을 수 있는 환자 나오지 말라고 하고, 똥오줌 치우고 있는지 모르겠어' 하고 언젠가 한탄하듯 한숨을 흘리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한숨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의료진을 보호하고자 데스크와 환자 대기실 등 투명 아크릴판이 곳곳이 세워졌다. 파란색 부직포 옷과 고글 착용이 필수화 되었고, 개인위생에 대해 더 신경을 쓰도록 교육과 감시가 거듭되었으며 매우 자잘한 것들에 대한 규칙들이 고지되었다. 이 정도가 되니 진짜 버블 안에 들어가서 살고 싶었다.


 시스템과 장비, 감염환자 대비 규칙들은 매일 윗선의 회의를 거듭하면서 개선되었지만 시스템을 돌아가게 할 재원 부족은 만성적 문제였다. 의료인력 부족이 피부로 느껴지다 못해 뚫고 나왔다. 보호자 출입이 제한되다 보니 그 역할을 대신할 간병인력이 필요했으나 감염 교육을 받은 간병인은 적었고, 따라서 휠체어 밀어주는 일, 옷 갈아입히는 일, 화장실 가는 것 확인하는 일까지 일단 응급 간호 인력이 커버하다 보니 곳곳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겼다. 보지 못하는 사이에 발생하는 낙상 사고는 예상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심리적인 문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이러려고 들어온 게 아니라는 신규 간호사 선생님들의 동반 사퇴를 시작으로 소위 좋게 말해서는 물갈이, 나쁘게 말해서는 탈주가 계속되다 보니 새로운 간호사 교육에도 배로 힘이 들고, 그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아 차지(charge, 담당자)를 봐야 할 고년차 간호사 선생님들이 액팅을 뛰기 시작했다.


“야, 너 안 힘들어?”

 “그니까.. 그만둬야지 내가 진짜.”

 “그거 나 4년째 듣는 거 같아..”

 “그니까..”

 “우리 빨리 그만두자.”


친한 간호사 선생님들하고 누가 먼저 퇴사하느냐가 안부인사가 되었고, 퇴사나 이직하면 아쉬움보다는 축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 이 힘든 곳에서 너 하나라도 탈출하라며 전우애를 다독였다. 이 와중에 2020년 03월 06일. 드디어 본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생겼다.


P.S.

 의료 용품에 있어서 환자를 지속적으로 접촉해야 하는 이상, 물품을 재활용하거나 한번 이상 쓰는 것은 감염을 퍼뜨리는 지름길이기에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같은 바늘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한번 쓴 장갑은 버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전염균의 크기는 상상 이상으로 작기 때문에 통기성을 가진 재질로 방호복을 만드는 것 또한 제약이 크다. 하루에도 상상 이상의 소모성 용품들이 의료 폐기물로 버려지고 있으며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살균력이 뛰어난 소독용제 및 기기를 사용한 의료기기의 재활용, 환경친화적인 신소재 개발 등의 방향을 생각할 수 있지만 진료 및 의료 방법에서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환자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또다른 방향이 될 수 있겠다. 최첨단 로봇이나 최신기기와 같은 하이테크(High-tech) 는 정확도는 높고 환자와의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청진기의 발명 이후 환자의 입 안이나 숨소리를 직접 듣지 않아도 여러 호흡기 및 순환기 질환을 파악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점을 볼 때 잘 된 로우테크(low-tech) 개발이 하이테크 못지 않게 중요할 수 있다. 환자를 볼 때 기계적으로 진료를 하기보다는 생각하고 조그만 것에도 적용시키며 조금씩 발전시키는 것이 임상에서 일하는 의료진이, 의료진만이 해야할 일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주석:

[1] 추후 본원 감염관리실에서 지정한 '밀접접촉자'의 정의는 2m 이내에서 5분 이상 대화하거나 직접 접촉이 있었을 경우라고 하였지만, 마스크나 보안경 등의 유무, 진행한 진료 내용 등 당시 상황에 따라 밀접접촉자로 분류가 되지 않기도 했다. 이 제외 기준은 '의료진 부족'이라는 항목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어서 제법 탄력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이를 이용해서 매우 짧은 시간 환자를 진료하는 요령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2] 의료 장비는 생각보다 매우 비싸다. 초음파 프루브(proove) 1줄에 1천만 원은 거뜬하다. 그렇기 때문에 감염 지역만을 위하여 CT, MRI 같은 기계를 증축시키는 것이 쉽지 않고,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영상 기사들이나 의료진의 수를 늘리는 것도 현실적으로 굉장한 비용이 드는 작업들이다. 또한 저런 장비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신설한다는 것은 천정부지의 땅값을 가지고 있는 서울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즉, 있는 장비의 한도 내에서 동선 설계 및 시간제한을 통하여 쉴 새 없이 장비 가동률을 높이는 것이 늘어난 환자를 수용하는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3] ‘코로나 전담 병동’, ‘코로나 전담 병원’의 경우 모든 환자가 격리 대상이기 때문에 이 환자들을 접촉해야 하는 의료진들은 레벨 티를 입고 근무한다. 다만 레벨디를 입고 진료를 하는 것이 굉장히 체력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2시간 이상 연달아 근무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으며, 보호구도 30분 이상 입는 것을 지양하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해당 부서가 아닌 응급실에서는 도입될 수 없었고 따라서 우리들은 감염환자를 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었다. 초반에는 이런 응급실 의료진에게 ‘감염 수당’이 지급되지 않기도 해, 문제가 있기도 했다.


[ 사진 출처 : Photo by Lanju Fotografie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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